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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오렌지(혹은 어륀지), 사수마, 탠저린, 감귤.
 왼쪽부터 오렌지(혹은 어륀지), 사수마, 탠저린, 감귤.


미국에서 '오렌지' 했더니 못 알아듣고 '어륀지'라고 말해야 알아듣더라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의 기사를 읽고 내가 사는 영국의 동네 슈퍼마켓에 가서 '오렌지'를 사보기로 했다.

슈퍼마켓에 들어서자마자 당당하게 "오렌지 있어요?"하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웬걸. 난 분명히 '오렌지'를 달라고 했는데 점원이 알아서 '어륀지'를 집어주는 것이 아닌가.

여기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라서 그런가? 점원을 붙잡고 "너, 내가 '오렌지' 달라고 했지, 언제 '어륀지' 달라고 했냐"고 따져볼까도 생각했지만 경찰을 부를지 몰라 그냥 조용히 '어륀지'만 집어 들고 나왔다.

그런데 정작 영국 사람들이 더 즐겨먹는 오렌지류의 과일은 '어륀지'도 아니고 '오렌지'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영국에 둥지를 틀고 나서도 시간이 꽤 흐르고 난 다음이었다.

이 사람들은 오히려 '사수마(Satsuma)'나 '탠저린(tangerine)'이라고 부르는 귤 종류를 더 즐겨 먹는다. 그 후로 나는 방부제 투성이일 것이 분명한 캘리포니아산 '오렌지' 또는 '어륀지'를 더 이상 사먹지 않는다. 그 대신 이보다도 훨씬 맛있고 잘만 고르면 제주감귤과도 맛이 비슷한 '사수마'나 '탠저린'을 주로 사먹는다. 물론 그건 내가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발음하지 못해서는 결코 아니다.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발음하지 못해도 먹고 싶은 걸 사먹는 데는 그리 큰 지장이 없다. 오렌지를 집어 들고 점원에게 계산해 달라거나 자율계산대의 액정화면에서 오렌지를 입력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수마'나 '탠저린'이라는 감귤 종류를 애당초 몰랐다면 정작 내게 익숙한 과일을 제쳐두고 '어륀지'만 찾느라고 법석을 떨었을 것이 분명하다.

빈곤한 생각+어설픈 발음 흉내=무용지물

 다보스 포럼에 참석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월 24일 연설에서 "세계가 물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고 경고하고 있다.
 다보스 포럼에 참석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월 24일 연설에서 "세계가 물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고 경고하고 있다.
ⓒ W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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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영어는 발음의 문제라기보다는 지식의 문제라는 말이다.

발음이 좀, 아니 많이 서툴더라도 어떤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으면 영어로 먹고사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발음이 아무리 미국 사람들의 그것에 가까워도 그 멋들어진 발음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자신의 생각이 빈곤하면 본토 발음이 아니라 본토 할아버지 발음이라도 그건 무용지물이라는 말이다.

최근 들어 나는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 뉴스를 틀어놓고 있다가 흠칫흠칫 놀랄 때가 있다. 내가 24시간 뉴스채널인 'BBC 뉴스 24'에 채널을 고정시켜놓고 있을 때는 대부분 눈으로는 아이들 숙제를 봐주거나 딴청을 피우면서 귀로만 TV 뉴스를 듣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BBC 뉴스 중간중간에 느닷없이 등장해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한국인이 한 명 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짐작하시겠지만 바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유창한 본토영어를 구사하던 BBC 기자의 리포트 중간에 느닷없이 내 귀에 너무도 익숙한 '한국식' 영어가 들릴 때마다 나는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리곤 한다.

유엔 사무총장까지 오른 정상급 외교관의 영어 발음이 어쩌면 나이 마흔이 다 되어 늦깎이로 외국생활을 시작해 서툴기 이를 데 없는 내 영어발음과 저리도 유사한지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스위스에서 열렸던 다보스 포럼. 유엔이 제3세계 빈곤 퇴치를 위해 벌이고 있는 새천년 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를 홍보하기 위해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이 돌아가며 연단에 섰을 때도 그랬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세계적 가수에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한 록 스타 보노가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더니 마지막으로 반기문 총장이 유엔을 대표해 연단에 올라 연설을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또 한 번 '허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영어발음에 깜짝 놀라다

건국 이래 국제사회에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가장 높여준 반기문 사무총장의 영어 발음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게 그러한 능력이 있을 리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한국인인 나는 반기문 총장의 영어를 들으면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정작 영국인들 중에 그의 영어 발음을 문제삼는 사람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영국은 문화적 다양성을 국가 브랜드로 내세울 정도로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중요시하는 나라이다. 당연히 영국의 정치·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는 아프리카 영어나 남미 영어, 그리고 인도 등 남아시아계 영어 등이 한데 뒤섞여 서로 다른 영어 발음의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 들어 BBC 뉴스에서 연일 톱기사를 차지하고 있는 케냐의 폭력사태나 짐바브웨 정권의 인권유린, 그리고 버마 군부정권의 민주화 시위 탄압 뉴스 등을 보면 또 어떤가. 국제적 뉴스메이커인 케냐, 짐바브웨의 야당 지도자들이 TV화면에서 구사하는 영어를 '어륀지'적 시각으로 본다면 후진국 영어, 선무당 영어, 날림 영어라야 마땅하다.

요즘 케냐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연일 국제 지도자들을 설득하고 다니는 두 사람, 즉 가나 출신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나 남아공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몬드 투투 주교의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여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다니는 이런 인사들의 영어 발음은 내가 보기에 미국식 영어와는 천지 차이이고 영국식 영어와도 큰 거리가 있지만, 이런 투박한 영어 발음이 이들의 활동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미국식 발음은 '바이블'이 아니다

고백하자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많은 외국인들, 특히 나 같은 아시아인들을 괴롭히는 영어는 오히려 같은 아시아권인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 사람들이 구사하는 영어인 경우가 많다. 수백 년 간에 걸쳐 토착화된 남아시아 영어는 내가 보기에 영국 사람들의 표준발음과는 이미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져 있다. 영어 환경에 노출된 경험이 아직도 짧은 나 같은 사람들이 이들과 대화할 때는 영국인과 대화할 때보다 훨씬 더 긴장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중요한 대목을 놓치기 십상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얼마 전 태국 출신의 동료, 그리고 중국에서 온 교수 한 분과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대화 중에 남아시아 사람들이 쓰는 영어 발음이 도마에 올랐다. 각종 국제회의 참석 경험이 많았던 이 중국 교수는 자신이 참석했던 한 국제회의에서 경험했던 일화 한 도막을 들려주었다. 그는 영어를 중국어로 통역해야 하는 이 국제회의 통역을 맡았던 통역사가 '인도 사람이 발표자로 등장할 때마다 내가 어디로 숨어버리거나 아니면 당장 뛰어나가 저 발표자 입을 막아버리고 싶더라'고 하소연하던 일화를 들려주며 좌중을 웃겼다.

태국에서 온 동료는 기다렸다는 듯 그 말을 받아 은행이나 보험회사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 때마다 '수화기를 집어던지고 싶더라'며 또 불만을 터뜨렸다. 영국에서는 남아시아계 출신들이 대부분 고객센터의 전화상담원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웃나라인 동남아시아 사람들조차 이들의 영어발음을 온전히 알아듣고 전화로 무언가 갑론을박해야할 때는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영국에 살다보면 남아시아계의 영어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그리고 여기서 유래한 남미 계통의 영어도 나 같은 아시아인들을 괴롭히는 건 마찬가지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토착화한 영어를 구사하는 이들의 말은 간혹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이들이 나보다 영어로 더 많이 사고하고 영어로 더 많이 대화한 덕에 영어 의사표현에 나보다 능숙한 걸. 내가 그들의 발음에 주의해 듣는 수밖에.

나는 한국인의 영어 발음이 열등하고 영어를 한국처럼 '외국어(foreign language)'가 아닌 '제2언어(second language)'로 쓰는 이 나라 사람들의 영어 구사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미국어가 아닌 국제어로서 영어를 말하는 데는 미국식 발음이 바이블이 아닐 뿐더러 국내 일부 인사들이 갖고 있는 이러한 천박한 인식이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국제적 지도자를 키워내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더욱 엄중한 사실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넥타이에서 런닝셔츠로, 영어의식 갈아입다

 31일 오전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장실에서 이경숙 인수위원장과 비센테 곤살레스 로세르탈레스 국제박람회기구(BIE) 사무총장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31일 오전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장실에서 이경숙 인수위원장과 비센테 곤살레스 로세르탈레스 국제박람회기구(BIE) 사무총장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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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고백하자면 나는 한국에 살면서도 공연히 한국말에 영어 단어를 슬쩍슬쩍 끼워넣어 사용함으로써 나의 지식이나 논리를 좀 더 그럴듯한 것으로 포장하는 데 익숙했던 속물형 인간에 가까웠다. 물론 내 나름대로는 적절한 영어 단어를 끊임없이 일상생활에서 구사해봄으로써 영어 단어 구사 능력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한, 구차하면서도 눈물 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점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당시 외국 유학파도 아닌 나의 '영어 끼워팔기'에 대놓고 코웃음을 친 사람도 적지 않았으리라.

사실 그 당시 내게 영어는 일종의 패션 액세서리 같은 것이었다. 근사한 넥타이나 멋진 손목시계처럼 보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악센트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런 패션 소품 같은 것들이야 적당히 화려하기도 하고 디자인도 고급스러우면서 품위도 갖추는 게 제격이다.  '오렌지'가 아닌 '어륀지'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제 내게 영어는 헐렁한 팬티나 '런닝셔츠'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패션 액세서리가 아니라, 말하자면 남들이 보든 안보든 늘 몸에 걸치고 있어야 하는 속옷 같은 것이다. 영어와 친해지지 않고서는 슈퍼마켓에 가서 우유 한 병을 살 수도 없고 영어와 친해지지 않고서는 아이의 담임선생 앞에서 아이보다 더 얼굴을 붉혀야 하는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들이다. 이제 나는 영어와 친해지지 않고서는, 말썽꾸러기 네 살짜리 아들 녀석을 '속시원하게' 혼내주지도 못하는 불행한 가장 신세가 돼버렸다. '침대 위에서 뛰지 말라'고 소리를 '빽' 지르면 '아이 디든 런, 아임 저슷 점핑(I didn’t  run. I’m just jumping!)'하면서 이해 못할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이 녀석을 어찌하란 말인가.

이렇게 영어가 패셔너블한 넥타이나 손목시계가 아닌, 헐렁한 팬티나 '런닝셔츠'가 된 마당에 굳이 패션 액세서리들처럼 번쩍거려야 할 이유가 뭐가 있으랴. 바람이 잘 통하고 땀만 잘 흡수하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주변에서 누가 영어 발음에 대해 물어도 나는 마찬가지로 대답한다. 영국 사람들 발음 흉내 내려다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를 놓치기보다는 '소신껏' 발음하더라도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해가면서 차근차근 말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얼마나 아느냐의 문제지, 얼마나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냐"

지난해던가. 국내 학자들 중 영어로 따지자면 가장 유창한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연세대 문정인 교수가 런던에 왔을 때였다. 런던의 한 대학에서 영국 학생들과 열정적인 토론을 마치고 난 문 교수는 늦깎이 공부에 나선 내가 영어 때문에 고생깨나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물론 그의 영어발음도 내가 기억하기에 '어륀지'과는 아니었다).

"성 기자! 영어를 잘하는 건 자기 분야를 얼마나 잘 아느냐의 문제지, 단순히 어학을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냐. 기죽을 필요 없어."

나는 이 말을 지금도 영어 학습의 금과옥조처럼 생각하고 있다. 팬티와 '런닝셔츠'는 번쩍거릴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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