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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부신 햇살이 학교의 모든 공간을 점령한다. 침실과 사무실, 멀티미디어실, 커튼을 내린 강당 창틀까지 환한 입자를 쏟아내며 겨울 햇살이 침투한다.
▲ 오마이스쿨 눈 부신 햇살이 학교의 모든 공간을 점령한다. 침실과 사무실, 멀티미디어실, 커튼을 내린 강당 창틀까지 환한 입자를 쏟아내며 겨울 햇살이 침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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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 문을 빠끔 열자, 지중해처럼 강렬한 햇살이 방안에 가득하다. 햇살은 폐교의 눈 덮인 운동장을 뒹굴다 침실 창으로 들어와 방 전체를 메우고 순백의 이불 위로 부서져 내린다. 포근한 이불이며 베개, 햇살이 이미 살균을 끝냈음인지 순백으로 정갈해 보인다.

더운 여름에도 포랑 포랑한 솜이불을 좋아하는 나는 저 구름 속에 파묻혀 곰처럼 푸욱 겨울잠을 자고 싶은 충동이 든다. 호텔이 부럽지 않다. '아빠방'에서 한숨 자고 나면 더욱 착한 아빠가 되어 있을까?

햇살은 눈 덮인 운동장을 뒹굴다 교실 안으로 튕겨오른다.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햇살 속을 점처럼 걷는다.
 햇살은 눈 덮인 운동장을 뒹굴다 교실 안으로 튕겨오른다.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햇살 속을 점처럼 걷는다.
ⓒ 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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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가족뉴스 만들기 1일 캠프'가 지난 22일부터 3회에 걸쳐 강화도에 있는 시민기자학교 '오마이스쿨'에서 있었다. 우리는 아빠가 아들과 참여한 유일한 팀이라서 처음엔 좀 멋쩍었으나,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달려든 겨울 햇살에 이런 느낌마저 녹아버렸다.

'오마이스쿨'은 폐교였던 강화도의 신성초등학교를 다시 꾸며서 만들었다. 창고로 사용하던 강당의 천정은 대못이 퉁퉁 튀어나온 채 울퉁불퉁한 옛날 목재 그대로다. 목재로 다듬어진 학교의 창문은 눈부신 겨울 햇살과도 잘 어울렸다.

침실에 드는 순백의 햇살이 하도 좋아서 '1일 캠프가 아니라 하루 묵고 여기서 아침을 맞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한 선생님이 '정남향이라서 햇살이 좋다'고 알려준다. 남향의 집이 좋다는 말은 들어왔지만, 정남향의 겨울 햇살을 몸 깊숙이 느낀 것은 처음이다.

아이들이 강당의 서고에서 창으로 드는 겨울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는다.
 아이들이 강당의 서고에서 창으로 드는 겨울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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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점심시간. 햇살도 밥 먹으러 왔는지 조명등을 켜지 않아도 식당이 훤하다. 강화 순무, 두부조림…, 모두가 햇살을 듬뿍 받고 자란 강화의 먹거리들이다. 화학조미료가 전혀 없는 자연 그대로의 맛이다. 이 햇살 같은 밥맛이 그리워서 일부러 밥 때를 맞추어 오는 이도 있다고 한다.

조명등을 켜지 않아도 환한 식당 내부, 햇살도 밥 먹으러 왔다.
▲ 카페테리아 조명등을 켜지 않아도 환한 식당 내부, 햇살도 밥 먹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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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겨울 햇살 속에서 도란거린다.(왼쪽) 모자(帽子)를 쓴 모자(母子)가 햇살 드는 창가에서 세상이야기를 나눈다.(오른쪽)
▲ 비밀이야기 모녀가 겨울 햇살 속에서 도란거린다.(왼쪽) 모자(帽子)를 쓴 모자(母子)가 햇살 드는 창가에서 세상이야기를 나눈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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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과 그네가 있는 학교 뒷마당은 아이들에게 추억 그 자체이기도 하다.
▲ 창밖의 아이들 모닥불과 그네가 있는 학교 뒷마당은 아이들에게 추억 그 자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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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만감을 느낀 아이들은 따스한 햇볕이 드는 학교 뒷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그네를 타며 추억을 만든다. '밤에 오줌 싼다'고 해도 불장난을 재밌어 한다. 불 속엔 고구마가 들어 있다. 가을 햇살만 신의 선물이 아니었다. 겨울 햇살은 마음씨가 더욱 따스한 여신의 체온이다.

지필 군불이 충분한 사람에게 햇살은 느낌조차 없지만, 추운 사람에게 겨울 햇살은 무한한 혜택이다. 햇살을 받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상대적이지만 햇살 자체는 굴절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비추어준다.

언론도 햇살처럼 추운 사람에게 온기를 주고 힘이 되어야 한다. 굴절되지 않고 왜곡되지 않은 뉴스로 세상을 비추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언론이 군불을 때 준 편에서 잉크를 녹일 뿐 없는 편에게는 한없이 차갑다. 그리고는 자신이 세상의 가장 공평한 등대인 양 내세우기 위해 굴절과 왜곡을 본업으로 한다.

언론인지 사보인지 분간을 못할 어떤 신문은 별지까지 만들어 아이들에게 논술교육을 하겠단다. 언론이 바르면 일부러 논술교육을 하지 않아도 논술적인 세상이 된다. 방송인지 사교클럽인지 분간이 어려운 어떤 방송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며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모금을 한다. 언론이 공평하면 그들이 말하는 어려운(?) 이웃도 줄어들 것이다.

언론이 정직하면 그러지 말라 해도 세상이 정직해진다. 온갖 거짓말을 다 꾸며대는 일부 언론매체가 민족과 양심을 이야기하며 거짓말을 합리화한다.

1일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이 짧은 시간에 기사 잘 쓰는 일을 배우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표현하고 올바른 대상에게 전달하는 것이 '뉴스의 참가치'란 것을 서서히 깨우쳐갈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어떤 기사를 쓸까?  햇살같은 기사?
 어떤 기사를 쓸까? 햇살같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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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군고구마에서도 고구마를 살찌운 햇살이 묻어난다.
 따끈한 군고구마에서도 고구마를 살찌운 햇살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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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신이 기자가 되어 인터뷰하는 일이 흥미로운 모양이다. 어떤 아이는 겨울방학에 다녀온 가족여행을 정리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아이는 새 대통령에 대한 엄마의 생각을 취재하기도 한다. 아들은 내게 아주 곤혹스런 인터뷰를 했다. "흡연을 왜 하십니까?"

기사를 갈무리하고 편집하는 멀티미디어실에 들어서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창문에 걸린 마지막 햇살이 마무리할 시간임을 알려준다.

갑자기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에러가 났다. 때문에 이메일로 기사를 보낸 아이들이 장작불에 넣어두었던 고구마를 꺼내먹는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기자공부는 지루했지만 고구마가 있어서 제일 좋단다. 나도 아들에게 한마디 한다.

"뉴스도 이렇게 따끈따끈해야 맛있는 거야!"

해 저무는 눈 덮인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차에 오르기 싫다며 앙탈이다. 나 역시 1일 캠프인 것이 참으로 아쉬운 하루였다. 다음에는…, 순백의 솜이불 속에서 아침 눈을 부비며 다시 부서져 내릴 겨울 햇살을 맛보고 싶다.

낙서판도 그림자 기우는 겨울햇살을 아쉬워 하는 듯하다.
 낙서판도 그림자 기우는 겨울햇살을 아쉬워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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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마이스쿨, #기자학교, #강화도, #햇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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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부일보 기자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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