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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의 대표적인 서민경제공약인 통신비 인하 정책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특히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당초 약속한 통신비 20% 인하를 철회하고, 통신비 인가제 등 규제 완화를 통해 경쟁을 유도하기로 방향을 잡으면서 시민사회단체와 이동사업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쪽에선 "인수위가 과중한 통신요금의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독과점 업체의 이익을 불려줄 뿐 소비자들이 느끼는 인하 효과는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이동통신업체들 사이에서도 인수위의 통신비 정책이 공정한 시장경쟁을 저해하고, 오히려 업체 간 격차만 더 확대시키는 등 시장만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많다.

 

인수위, 통신 규제 완화를 통한 경쟁유도로 통신비 절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31일 통신비 인하 공약과 관련해, 업체간 자율적인 요금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통신비 인가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통신비 인하는 업계의 자율적인 경쟁을 통해 추진한다는 것이 큰 방향"이라며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풀어야 할 통신규제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풀어나가는 시장친화적인 방법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환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도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나서서 몇% 내리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업체 간 경쟁촉진과 규제완화를 통해 통신요금을 내리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수위는 우선 업체간 자율적인 요금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통신비 인가제를 폐지할 예정이다.

 

'통신비 인가제'는 요금 인하 여력이 큰 SK텔레콤이나 KT와 같은 통신시장의 지배적인 사업자가 요금을 내릴 경우 사전에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정책이다. 이는 선발 업체와 후발사업자 간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수위는 또 통신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를 허용할 방침이다. 이밖에 약정 할인요금제나 장기가입자 할인요금제 등을 도입할 예정이다.

 

"경쟁시키겠다는 정책으로 경쟁만 없어질 것"

 

인수위의 이같은 방침을 둘러싸고 통신업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특히 통신비 인가제 폐지에 대해 SKT는 찬성한 반면 후발사업자들은 "대안없는 갑작스러운 인가제 폐지는 위험하다"며 반발했다.

 

SKT 쪽 관계자는 "이제 통신비를 자유롭게 내릴 수 있게 됐다"면서도 "내리든 올리든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SKT 쪽에서 당장 요금을 내릴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A사 관계자는 "'경쟁 활성화'라는 정부 정책과는 달리 경쟁이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SK텔레콤이 요금을 과도하게 내려 경쟁력이 약한 후발 사업자를 퇴출시킬 수 있다"며 "결국 독과점으로 고객의 혜택이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B사 관계자는 "인가제 폐지는 맞는 방향이지만 대안이 없고 너무 성급하다"면서 "어차피 이동통신 환경이 3세대로 전환되는 3년 후 인가제가 폐지될 예정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2세대 환경에선 원가가 적게 드는 800㎒ 저대역 주파수를 SK텔레콤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규제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독과점을 우려했다. 추선희 서울YMCA 시민중계실 간사는 "전파라는 공공재 자원을 사용하면서, 건전하지 않은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에서 완전히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또 하나의 담합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주파수 독점하는 업체의 이익만 불려줄 가능성 커"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를 허용하는 방안도 통신비 인하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란 의견이 많다. MVNO는 통신망 없는 회사가 통신망을 빌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KT의 KTF PCS 재판매도 이와 비슷하지만 요금 인하효과는 거의 없다.

 

MVNO 허용 역시 선·후발사업자 간에 온도 차가 존재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새 사업자들이 들어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금을 내놓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새 사업자의 시장 진입과 기존 사업자의 퇴출이 쉬워질 것"이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후발 사업자들은 MVNO의 성공 여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한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포화상태라 타사 가입자를 빼앗아 와야 하는데, 마케팅할 자금력, 인력, 유통망 등을 마련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인수위의 통신비 인하 정책에 대해선 선·후발사업자 간의 입장이 엇갈렸지만 '20% 통신 인하는 불가능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제 20% 인하는 의미 없는 얘기 아니냐"고 반문했다.

 

시민사회단체 "인수위, 통신요금 문제 전혀 모르고 있다"

 

결국 통신비 20% 인하 공약은 구호로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인수위가 이동통신의 요금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며 "결국 소비자와 심각한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녹색시민권리센터 정책위원은 "인가제 폐지와 MVNO 도입은 요금 인하와 전혀 상관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인수위의 정책 방향은 독과점 친화적으로 보인다"며 "고객들의 서비스 이용 악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YMCA도 "인수위가 중심을 제대로 못보고 있다"고 말했다. 추선희 간사는 "통신비를 인하하려면 가입비나 기본료를 내려야 하지만 그 부분이 빠졌다. 20% 할인은 물 건너 갔다"고 말했다.

 

추 간사는 망내 할인, 결합상품 등 인수위의 또 다른 통신비 인하 정책도 비판했다. 그는 "망내 할인의 경우 기본료가 2500원 올랐다"며 "망내 할인은 또 하나의 요금제일 뿐 실질적인 할인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합상품 역시 할인이 별로 없고 약관상 문제도 많다"고 말했다.


태그:#인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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