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삼성 크레인 보니 괴물 같네요."
 
31일 경남 거제 앞바다에서 '원유유출사고' 항의 해상시위를 벌이던 구희숙(59)씨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대형 크레인을 본 뒤 한 말이다. 충남 안면도에 사는 구씨는 하루 전날 거제에 내려와 이날 해상시위에 참석했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위원장 구자상)는 이날 거제 바다에서 삼성을 항의하기 위해 해상시위를 벌였다. 서울과 부산․마산창원․통영거제환경연합 소속 회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해상시위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30분 삼성중공업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환경연합 회원들은 태안에서 기름제거작업을 벌이며 입는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기자회견에 앞서 기자를 만난 구희숙씨는 "지금 태안 사람들은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우울증이 깊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분노할 힘조차 없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서해안의 생태계가 복원되는 그날까지 삼성중공업은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와 '기름재앙, 삼성원유유출사고로 불러주세요'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나왔다.
 
 
기자회견 때 구희숙씨는 태안의 정서를 전했다. 그녀는 "태안 사람들은 몸도 마음도 죽어가고 있다. 유령도시 같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사는 것 같다. 공상상태다. 주머니에는 1000원 짜리 만져본 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마을도 사람도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연합은 '삼성은 원유유출사고의 실질적 가해자로써 성실하고 구체적인 책임 방안을 제시하고 이행해야'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환경연합은 "이번 사태를 '태안기름유출사고'라고 명명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이는 슬픔에 빠진 태안주민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이번 원유유출사고는 정확하게 '삼성원유유출사고'다. 우리는 사고 유발 당사자를 정확하게 지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삼성은 구체적인 물적, 정신적, 생태환경적 피해 조사를 앞장서서 약속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실제적인 가해자로서 무한 연대책임을 실천할 것을 오늘날 서해어민과 우려의 눈길로 삼성을 바라보고 있는 전 국민들 앞에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또 이들은 "망가진 생태계와 더불어 절단 난 주민들의 삶이 복원․복구되는 그날까지 전력을 다할 것임을, 무한한 책임을 질 것임을 선포하기 바란다"며 "그 길만이 상처 깊은 바다와 피멍 든 저들의 가슴을 위안하는 유일한 방법이다"고 덧붙였다.
 
사고 낸 해상크레인은 삼성중공업에 없어
 
기자회견을 마친 회원들은 곧장 5분여 거리에 있는 고현여객터미널로 이동해 해상시위에 나섰다. 이곳에는 회원들과 취재진을 태울 선박이 정박해 있었다. 환경연합 바다위원회 회원들은 거제 사곡리 선착장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삼성중공업 앞으로 향했다.
 
일부 회원과 취재진 등 20여명은 4.46톤급 연안통발어선을 이용했다. 어선이 삼성중공업 앞을 지날 때 거대한 크레인과 한창 건조 중인 유조선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중공업은 10대 이상의 유조선 등 대형 선박을 건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태안에서 사고를 낸 해상크레인선(삼성1)은 보이지 않았다. 김일환 통영거제환경연합 사무국장은 "해상시위를 한다는 정보가 알려진 모양이다. 오늘 아침에 다른 곳으로 피항시켰다고 한다"고 말했다.
 
고무보트 3대를 타고 해상시위에 나섰던 회원들은 없어진 해상크레인을 찾아 나섰다. 크레인은 경남 고성 소재 안정공단 앞에 정박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그곳까지 고무보트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다.
 
해상크레인은 경남 고성 안정공단 앞에 정박
 
일부 회원과 취재진이 탄 어선은 삼성중공업 주변 바다에서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 지 20여분이 지나 통영해양경찰 소속의 경비정이 나타났다. 해양경찰은 "신고가 들어왔고, 정보 파악 차원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해양경찰은 어선을 경비정에 묶은 뒤 간단한 조사를 벌였다. 해경은 "지금 바람이 심하기에 이대로 더 먼 바다로 나갈 수는 없다. 인원도 정원 초과다"면서 상부 기관과 전화통화를 한 뒤 돌아갔다.
 
취재진이 탄 어선은 삼성중공업 앞 바다에서만 맴돌다가 고무보트가 오기를 기다렸다. 30여분 뒤 3대의 고무보트가 나타났다. 삼성 크레인선이 고성 안정공단 앞에 정박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온 것이다.
 
환경연합 회원들은 삼성중공업을 배경으로 해상시위를 벌였다. 고무보트 3대는 원을 그리기도 했다. 회원들은 대형현수막을 들고 "바다 죽이고 사람을 죽인 삼성을 규탄한다"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선장은 취재진이 탄 어선으로는 안정공단까지 갈 수가 없다고 밝혔다. 환경연합 회원들은 사고를 낸 크레인선과 비슷한 선박을 찾아 점거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회원들은 '삼성2'인 크레인선 앞으로 가서 구호를 외치고 시위를 벌였다.
 
회원들은 '삼성2거제' 크레인선에 올라가 대형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다. 20여분 뒤 삼성중공업 직원과 엑스텍시스템 소속 경비원 10여명이 작은 배를 타고 나타났다. 이들은 "위험하다, 다른 데 가서 해라, 배 안에 타면 안된다"며 환경연합 회원들을 몰아냈다.
 
사고 낸 '삼성1' 크레인 올라 시위 벌여
 
환경연합 회원 10명은 고무보트 1대를 이용해 고성 안정공단 앞으로 향했다. '삼성2거제' 크레인선의 해상시위 장면을 취재하던 언론사 기자들은 어선을 타고 돌아갔다. 태안에서 사고를 낸 크레인선에 대한 항의시위는 <오마이뉴스> 소속 기자 3명이 유일하게 취재했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피해 머리를 숙여 가면서 30분이 지나 도착하니,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바다에서 본 대형 크레인선박이 나왔다. 그 크레인에는 '삼성중공업'이란 대형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선박 중앙에 '삼성1'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환경연합 회원들은 선박 위에 올라가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사고 선박 위에서 10분 동안 머물렀다. 이들이 선박에 올라 구호를 외치자 작업자들이 나와 "위험하다"며 내려갈 것을 요구했다. 일부 작업자는 무전기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있다가 언제 이곳으로 왔느냐"는 질문에, 한 작업자는 "오늘 아침에 왔다"고 말했다. "무슨 작업을 하느냐" 묻자 "보면 모르냐, 선박 구조물을 들어 올리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삼성1' 크레인선은 안정공단 내 가야중공업의 조선 구조물을 이동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작업하느냐"는 질문에, 그 작업자는 "우리는 모른다, 선장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고 대답했다.
 
환경연합 회원들은 '삼성1' 크레인선이 태안에서 사고를 냈을 때 부딪친 부분을 찾아 나섰다. 회원들은 한 모서리 부분에서 보트를 세워놓고 "완전복구, 무한책임"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고무보트는 크레인선을 한 바퀴 돌아 나왔다.
 
구자상 위원장은 "이번 사고의 원인은 해상크레인이라고 명백히 밝혀졌다, 그로 인해 수많은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다, 서해 바다가 완전복구 될 때까지 삼성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더 큰 저항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환 사무국장은 "거제에서 삼성중공업의 영향이 크다보니 이번 사고에 대해 지역민들은 말을 잘 안한다, 하지만 환경연합에서는 그동안 네 차례 태안에서 기름제거작업을 해왔고, 거제시에서도 해왔다"고 말했다.
 
해상크레인에서 항의 해상시위를 벌이고 선착장으로 돌아온 시각은 이날 오후 2시30분경.
 
태안에서 온 구희숙씨는 "갑자기 닥치니 경제적, 정신적 충격이 크다, 이런데 삼성은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한다, 이것은 불을 내기 위해 성냥을 긋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태그:#태안사태, #삼성원유유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