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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교수, 독자들의 커뮤니티에 로그인하다

 

우리가 헤어진 시각은 새벽 3시였다. 그런데도 김상봉 씨는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1월 29일 저녁 7시 30분 홍대 앞 KT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주최한 독자간담회. 두 교수는 거침없이 사자후를 토해냈고, 독자들은 때로는 좌절하며 한숨을 쉬기도 하고, 때로는 행복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30석 규모의 조그마한 강의실에서 행사를 진행한 것은 저자의 강력한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되도록 독자와 가까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그런데 예비 좌석도 모자라 많은 독자들이 서서 간담회에 참여해야 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여한 독자만 100명에 이르렀다.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독자들의 열의였다. 연사들은 비교적 짧게 책에 대한 소개를 언급했을 뿐 대부분의 시간은 독자들과의 문답으로 채워졌다. 독자들의 질문은 진지하다 못해 처절했고 연사들 또한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예정된 시간을 한참 넘겨 밤 10시가 되어서야 간담회가 끝났지만, 대화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근처의 호프집으로 이동해 다시 뜨거운 논의가 이어졌다.

 

서경식씨는 알라딘이라는 인터넷 도서 커뮤니티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일본의 블로그에는 악의적인 내용들이 자주 눈에 띄기 때문에 외면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인터넷 환경에 대해서 매우 흥미로운 듯 자주 질문했다. 그는 강연 내내 한국말을 또박또박 구사했지만 '인따넷'(인터넷)이나 '레뷰'(리뷰)처럼 일본어 발음이 튀어나왔고, 그런 모습이 재밌었다.

 

기자는 두 교수에게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 즉석에서 아이디를 만들어 달라고 '깜짝제안'을 했다. 지난 1월 17일 종로의 영풍문고 세미나실에서 열렸던 강연회에서 서경석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넷 난민이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인터넷 회원가입을 할 수 없다. 주민등록번호가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세계가 아니라 감옥이라고 생각한다."(1월 17일, 인사회 강연회에서)

 

서경식씨의 이 같은 생각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아이디'를 꼭 하나 주고 싶었다. 서경식씨는 '토끼'라는 아이디를 만들었고, 우리들은 서경식 교수라는 호칭 대신 '토끼 님'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했다.

 

'희망'이라는 말 대신 내뱉은 사자후

 

독자들이 해법을 구하자 그들은 해법이란 없으며 오직 독자가 내딛는 발만 있을 뿐이라고 하였고, 독자들이 가치, 의미, 희망이 없음을 개탄하자 그들은 오히려 그런 것은 애초에 없었다고 타박했다. 서경식씨는 '우리는 모두 디아스포라'라고 말했다.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은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키는데, 서경식씨에 의하면 이들뿐 아니라 지천에 깔린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보통명사라고 한다. (<디아스포라 기행> 13쪽)

 

그는 평생 디아스포라에 처했으며 지금은 디아스포라가 정체성이 되었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는 우리 모두가 디아스포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서경식씨는 우리가 품고 있는 여러 가지 '환상'을 우선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독자가 우리들은 개별적인 존재에만 머무르고 있으며 386세대가 지난날 보였던 집단행동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파편화되고 가장 친밀하고 연대해야 할 사람들이 더욱 멀어지고 있다고 걱정스런 질문을 던졌다.

 

서경식씨는 자신은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면서 집단의식을 느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것을 '국민주의'라고 하는데, 이런 집단성의 환상에 기대지 않고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가지고 새로운 집단성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사명에 주의하라는 충고를 덧붙였다.

 

개인들은 운명의 우연성과 유한성으로부터 도망갈 수가 없다. 종교 사상도 이미 의지할 게 못 된다면,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 죽음이라는 궁극의 숙명성을 견뎌내야 하는가. 거기서 영원불사의 존재로서의 '국민'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 '나'는 유한하지만, '국가'나 '국민'은 무한하다. 따라서 '국가'나 '국민'을 위해 죽으면, 그 '나'는 불사의 존재가 된다.

<디아스포라 기행> 61쪽

 

대안을 제시해 달라는 독자의 질문에 그는 오히려 '구체적인 대안이라는 게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들의 전형적인 수사에 불과하다'고 내리쳤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끈질기게 증언하고 문제제기를 하다 보면 자연히 가능성은 열린다는 것이다.

 

이는 김상봉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70~80년대에 보였던 집단행동의 추억에 머무르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그 돌멩이를 아직도 쥐고 있으면 되겠는가?"라는 함석헌 선생의 말을 덧붙였다. 옳지 않은 권력이 짓누르니까 떨쳐 일어나려 했던 당시의 현상을 '즉자적'이라고 해석하고 현재의 상황은 이런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문득 나는 기형도의 '안개'라는 시를 보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더욱 심하게 뒤흔든 경우도 있었다. 철학을 전공하는 독자가 정신적으로 움켜쥘 수 있는 가치나 희망이 없다고 개탄하자 그는 희망 자체가 원래 없는 거라고 단언했다. 하느님이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빛이 있으라고 말한 것처럼 희망을 끌어내려는 것이 사람이며, 함석헌 선생이 아무 뜻도 없는 조선의 역사에서 뜻을 찾으려고 애썼던 대목에 주목하라고 충고했다. 없는 희망을 찾는다는 것은 마치 '인간에게 꼬리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서경식 씨는 이 질문에 대해 좀더 잔인하게 받아쳤다.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한 최근의 설문조사 자료에 따르면 일본인의 93%가 자기 나라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일본은 현재 최대의 양극화이며 자살이나 강간, 강도사건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수치는 좀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는 '설령 그곳이 천국이라고 하더라도 주민들이 자기 나라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면 이런 수치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독자들은 좌절하고 또 좌절했다. 연사들은 독자들이 좌절하기를 바랐고, 좌절을 강요했다. 그들은 좀더 체계적으로 절망하고 철저히 좌절할 것을 간청하고 있는 듯했다.

 

처절한 좌절 이후에 만나게 되는 것들

 

평생 디아스포라와 주변인에 머물렀던 서경식씨가 디아스포라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은 한편 아이러니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는 바로 이 아이러니 속에 길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를 지배했던 일본은 오늘날에도 천황제, 국민주의 사고의 감옥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분열이나 식민지배 등의 고통들을 겪어왔으므로 일본하고 정반대로 가장 열린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것이 비록 역설적인 일일지라도 우리의 역사, 민족, 공간 안의 사람들, 즉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출발해서 그런 공동체를 향해 걸어갈 수 있다고 그는 결론맺었다.

 

그 길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과연 어떤 동력으로 그 길을 찾아갈 수 있을까? 서경식씨는 전날 만났던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모임에 갔던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주장하듯) 경쟁과 대결 없는 세상은 분명 아름다운 꿈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꿈이 아닐까 하는 것이 그의 의문이다. 그것은 쉽게 오지 않는다. 희망이나 나아가는 길이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다 보면 길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가고 싶다는 열망과 의지가 관건이라는 이야기다.

 

김상봉씨는 본인이 평생 함석헌 선생의 사도 바울 역할을 하겠노라고 선언했다. 평생 만난 적도 없고 영원히 만나지도 못하지만 그 뜻을 전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도 바울에 자신을 기탁했던 이유는 우리 말과 우리의 정신으로 철학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언어를 지키고 성숙시키는 것은 철학자의 임무이며, 그것은 한국어를 아름답게 깊게 명징하게 하는 행위 속에서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욕망과 서로주체성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 최고의 욕구는 만남이며, 자신의 최고의 욕망은 참된 만남이라고 말했다. 만남 속에서 내가 희생되거나 소멸해서는 안 되며 치열하게 살아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항상 다른 사람을 통해야 가능하다. '내가 칭찬받지 못한다면 돈이나 권력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말로 그는 이 주장을 설명했다. 만약 우리들이 개별화되고 파편화된다면, 오히려 그럴수록 참된 만남에 대한 욕구도 강해질 거라는 믿음을 덧붙였다.

 

그의 또다른 믿음인 '서로주체성'은 수동성으로부터 능동성으로 나아가며 이 특징들이 공존하고 있다. 수동성이란 같이 고통을 나눠야 타인의 고통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같이 싸워야 한다. 이것은 함께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에서 개별적 주체는 서로주체성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에 대한 증거로 그는 우리 역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인 광주민중항쟁을 예로 들었다. 그는 홀로코스트와 광주항쟁을 비교하며, 홀로코스트가 고통에 머물렀다면, 광주항쟁은 저항하고 함께 총질하고 싸우다가 죽었다고 말했다. 우리 민족은 이런 의미에서 르상티망에 갇혀 있지 않은 존재이며, 이 경험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결국 두 사람의 논의는 의지나 믿음으로 수렴되는데, 이것이 너무 위태롭지 않은가 하고 나는 의심했다. 김상봉씨는 역시 함석헌의 말로 의심을 거둬들이며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우리가 서로를 믿어야 한다. 신을 믿는 것은 아무나 하지만, 마주선 너를 믿고 나를 믿는 것만이 진짜다."


태그:#서경식, #김상봉,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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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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