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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관문 한옥형태로 참으로 아름답다
▲ 의령관문 한옥형태로 참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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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머리가 복잡하고 골치가 아플 때 주변의 명소로 떠나는 짧은 시간의 드라이브가 아닌, 집으로부터 약간 멀리 떨어진 지역을 혼자서 여행하기란 분명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나가는 일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참으로 세월이 유수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혼자만의 역사기행에 발길을 옮겨 놓았다. 차를 몰고 어디를 갈까 망설이다 의령으로 향했다. 무작정 떠난 여행이라 여행정보는 더더욱 알 리가 없다. 군청에 전화로 물어 가 볼 만한 곳이 어디냐고 물었고, 몇 군데 관광안내 정보를 듣고서야 읍내에 있는 충익사에 가 보기로 했다.

의령관문 야경 야간에 이곳을 통과하는 운전자들에게 또 다른 감흥을 주고 있다
▲ 의령관문 야경 야간에 이곳을 통과하는 운전자들에게 또 다른 감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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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고속도로 군북 IC를 빠져 나와 의령읍 방향으로 십 여분 지나니 전통 한옥양식으로 된 기와지붕 모습의 의령관문이 쓸쓸히 방랑객을 맞이한다. 의령관문, 서부경남과 북부호남을 연결하여 주는 위치에 있는 문으로, 남강변에 우뚝 서 있어 자연경관과도 조화로움을 이룬다.

밤이면 화려한 조명 불빛으로 자태가 더욱 아름답게 빛나면서, 이 곳을 지나는 운전자에게 또 다른 감흥을 준다. 이 관문은 임진란 때 정암진 전투로 유명한 전적지에 세워져 있어 그 역사적 의미도 다시 한번 되새겨볼 만한 곳이기도 하다. 남강은 겨울의 외로움을 몽땅 안고 흘러가고 있다. 흐르는 저 강물이 어찌 홀로 떠나는 이내 마음과도 같을까 하는 심정이다.

사람들은 의령을 일컬어 충의의 고장 또는 충절의 고장이라 부른다. 임진왜란 시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렸던 망우당 곽재우가 태어난 곳인 데다가 당시, 전국 최초로 의병들의 봉기에 불씨를 붙여 왜적을 막아내고 나라를 구한 인물의 고장이라는 의미에서 의령을 그렇게 부른다. 선조 25년(1592년) 4월, 섬나라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자 곽재우는 임란 발발일로부터 아홉째 되는 날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왜놈과 맞서 싸운다.

왜군이 조선을 침략해 오자 평민들 위에 군림하던, 소위 양반이라고 행세한 사대부 기득권 세력들은 임금과 나라를 버리고 도망치고 만다. 이 때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세력은 국록을 먹던 조정의 신하와 관군이나 지배계층이 아닌 그저 땅을 갈고 열심히 조세를 바치던 평범한 백성이었던 것이다. 그 선봉에 홍의장군이 있었고, 지금까지 의령을 상징하는 인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의병탑 충익사 입구에 있는 탑이다. 곽재우 장군과 17명의 의병장의 혼을 기리고 있다.
▲ 의병탑 충익사 입구에 있는 탑이다. 곽재우 장군과 17명의 의병장의 혼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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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천 다리를 건너니 정면으로 보이는 탑 중간에 열여덟 개의 둥근 고리를 한 의병탑이 읍내를 내려다보며 침묵한 채 서 있다. 이 열여덟 개의 둥근 고리는 곽재우 장군과 장수 17명의 혼을 기린다는 뜻이다. 충익사의 정문인 충의문을 들어서니 공원보다 더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마당에 겨울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아 조용히 쉬고 있다.

겨울연못 충익사내 있는 작은 연못으로 겨울하늘과 겨울바람을 안고 조용히 침묵하고 있다
▲ 겨울연못 충익사내 있는 작은 연못으로 겨울하늘과 겨울바람을 안고 조용히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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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감주나무 충익사내 정원에 심겨져 있는 수령 280년이 된 모감주나무
▲ 모감주나무 충익사내 정원에 심겨져 있는 수령 280년이 된 모감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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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충익사의 모과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83호)는 높이 12m이고, 수령이 약 280년 된 것으로 지금까지 조사된 모과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는 수관이 옆으로 퍼져 절이나 연못가에 심으면 운치가 더욱 살아나는 나무로 충익사 내에 있는 작은 연못과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중년의 두 남녀가 손을 꼭 잡은 채 속삭이며 호숫가를 거닐고 있다.

충의각 의병장들의 시호가 새겨진 명패를 보관하고 있는 건물이다.
▲ 충의각 의병장들의 시호가 새겨진 명패를 보관하고 있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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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들의 시호가 새겨진 명판을 보관하고 있는 충의각, 화려한 단청이 아름다우며, 건물의 지붕만 들어낸다면 옛 전통 상여의 모습 그대로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의도를 잘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홍의장군 이름을 딴 솟을대문의 홍의문을 들어서면 야트막한 산기슭에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열일곱 명의 의병장과 의병 용사들의 위패를 모신 충익사당이 있다.

홍의문과 충익사 솟을대문의 홍의문과 충익사당
▲ 홍의문과 충익사 솟을대문의 홍의문과 충익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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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 일만 원의 성금을 내고 경건한 마음으로 향을 사른 후 묵념을 올렸다. 찡한 기운이 감돌며, 임란 당시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임전무퇴 정신이 느껴져 오는 것만 같다. 기념관에는 망우당의 전투 장면을 그린 다섯 폭의 그림과 말안장 장검 화살촉 등이 보물 제671호로 보존되고 있으며, 학생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근심을 잊는다는 망우당, 곽재우의 호다. 망우당은 아버지 정암 곽월과 어머니 진양 강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나 영남 유학의 최고봉인 퇴계와 쌍벽을 이루는 남명 조식의 제자가 돼 학문에 심취하여 남명의 외손녀 상산 김씨와 혼인하게 된다. 도학에 빠진 망우당은 자굴산 중턱에 위치한 백련암에서 일천여 권의 책을 읽으며 은둔을 원한다. 그러나 국란은 그를 전장터로 내 보내고 만다.

곽재우는 붉은 색의 옷을 입고 대외적으로 자신의 강한 존재를 나타낸다. 붉은 색은 적을 흥분시켜 이성을 마비시키고 유인하는데 적격인 셈. 이름 그대로 홍의장군이 입었던 붉은 비단 옷은 27세 때 부친을 따라 명나라로 갔을 때 조정으로부터 받았던 것으로 붉은 색은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정암교와 솥바위 의령으로 들어가는 정암교 너머 솥바위가 보인다. 임란당시 정암진 전투로 유명한 곳이다.
▲ 정암교와 솥바위 의령으로 들어가는 정암교 너머 솥바위가 보인다. 임란당시 정암진 전투로 유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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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가 용맹을 떨쳤던 곳은 정암진 전투로서, 정암진 나루는 왜군이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 부산이나 마산에서 전라도 곡창지대로 가기 위해 건너야 했던 중요한 요충지였다. 왜군의 장수는 초병을 보내 강물 깊이를 재 얕은 곳에 말뚝을 쳐 표시를 해 놓았는데, 곽재우는 이 말뚝을 몰래 빼 진흙 밭으로 옮겨 박아 놓았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왜군은 강을 건너기 위해 말뚝을 따라 들어가다 진흙에 빠졌다. 곽장군이 배치한 의병들이 왜군을 향해 활을 쏘자 허둥대는 왜군은 도망을 치려했지만 진흙에 빠져 나오지 못해 거의 전멸한다. 이로 인하여 전라도 곡창지대를 손에 넣지 못한 왜군은 군량미 부족으로 전술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전쟁은 끝났어도 백성을 돌보지 않는 무능한 정치와 변하지 않는 세상은 그대로였다. 한때 모함과 역적에도 몰렸지만, 나라를 지켜낸 망우정. 전쟁이 끝난 뒤 24년간 29번의 관직을 제수 받았지만, 거부하였거나 바로 사직하였다.

망우정이라는 호와는 달리 세상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곽재우. 두 아들과 패랭이를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가야만 했고, 세상과 단절하고자 속세의 음식도 먹지 않았다. 솔잎만 먹고 사는 벽곡(辟穀)을 해야만 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의령 소싸움 벽화 의령공설운동장 벽면에 의령을 상징하는 민속놀이 소싸움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의령 소싸움 벽화 의령공설운동장 벽면에 의령을 상징하는 민속놀이 소싸움 그림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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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을 상징하는 또 하나는 민속놀이로 지정된 소싸움이다. 의령천 모래사장에서 매년 열리는 소싸움 대회그림이 실제모습보다 더 실감나게 의령공설운동장 벽면에 그려져 있어 잠시 발길을 머물게 한다.

기지개 펴는 목련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목련이 봄을 알리고 있다
▲ 기지개 펴는 목련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목련이 봄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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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변하지 않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려고 하건만, 봄은 그렇게 순순히 겨울을 그냥 놔두지 않을 모양이다. 겨울의 무게를 느끼는 얼어붙은 땅 속에서 밖으로 치솟아 오르는 강렬한 봄의 기운은 추웠던 지나간 겨울을 잊도록 하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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