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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얼었다. 겨울의 시린 바람이 점령해 버린 월명 공원(전북 군산 소재)은 고요하다.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노라면 억새들의 여운이 배어든다. 지난 가을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여 그 자리에 굳어버린 모습이 왠지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리움이 크면 저런 모습일까? 원래의 모습을 간직한 채로 그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회색빛 억새들의 모습에는 중년 나이의 향이 배어 있다. 고즈넉한 공원에서 외로움과 기꺼이 친구 하면서 고요를 즐기는 모습이 그렇게 매혹적일 수가 없다.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내 나이 또한 지천명을 넘어 이순으로 향하고 있는데, 넉넉한 마음으로 여류를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

 

중년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때이다. 열정과 패기가 넘치던 젊었을 때에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여 격정적으로 살았다. 남을 배려하거나 존중하는 일에는 그렇게 관심을 둘 수 없었다.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여 불타는 야망을 채우는데, 급급하였을 뿐이다. 가지고 싶다고 욕심을 부린다고 하여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었다.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였다. 초록의 싱그러움을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언제나 허덕이고 있었다. 채워지지 않는 욕심으로 인해 고통 받았고 깊은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실패하면서 배우고 이루지 못하는 것을 체험하면서 체념을 익혀왔다.

 

힘이 넘쳤지만 욕심이 앞섬으로 인해 고통을 받으면서 터널을 통과하여 들어선 세상이 바로 중년의 우주다. 중년은 체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힘으로 인해 순리의 중요성을 아는 나이다. 무작정 욕심을 부린다고 하여 모두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중년이 되었다면 중년의 향을 배어내야 한다. 중년이 되었어도 청년의 열정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세상을 관조할 수 있어야 하고 음미를 통해서 지혜롭게 행동해야 중년의 향이 배어날 수 있다. 서두른다고 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이를 온 몸으로 실천할 때 향이 배어날 수 있는 것이다.

 

중년의 향.

월명 공원의 물이 얼어서 하얗게 변한 모습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때 삶의 향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겨울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서 은은한 그리움으로 재생산해버리는 억새처럼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향이 배어날 수 있다. 입으로 세상을 말하는 것보다는 눈으로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하다. 가슴으로 우주를 안아줄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에도 분홍추억을 꺼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중년이다. 중년은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고 정신적으로도 편안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급변하는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함으로 인해 예상하지 못한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중년의 향을 배출하기는커녕 발에 떨어진 현실적인 문제들은 아주 심각하다. 평생학습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게 사회 구조가 바꿔지고 있다. 급격한 노령사회로 진입함으로써 중년의 책임을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중년이 설 자리가 자꾸만 좁아지는 것이다.

 

부모님들을 모시는 일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실천하였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잘 키우는 것이 삶의 보람이었기에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다름 세대들은 부모들의 인생은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 자기 자신의 인생마저도 버거운데, 부모 세대까지 책임을 질 수는 없는 것이다.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다. 억새들의 모습이 쓸쓸하게 보이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아무리 사면초가의 현실이라고 하여도 극복할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 아닌가. 어려운 현실에 눈물을 흘릴 지라고 삶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한 번뿐인 내 인생이니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소중한 나의 인생이니 중년의 향이 배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초록의 꿈을 되살리는 억새의 모습처럼 내 삶을 여유로 채워야 한다. 살아온 삶의 지혜를 동원하면 하지 못할 것이 없다. 아름다운 추억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창출하는 삶을 창조해 가야 하겠다. 중년의 향이 온 누리에 번져날 수 있도록.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군산시 월명 공원에서


태그:#억새, #중년, #향,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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