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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골짜기를 걸어 나가는 여행자들. 길에서 나를 찾는다.
▲ 떠남.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골짜기를 걸어 나가는 여행자들. 길에서 나를 찾는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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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골짜기를 휩쓸고 지나갔다. 날리는 눈발과 함께 골짜기를 빠져나간 두 사람. 그들은 남쪽 마을 부산에서 온 젊은이들이었다. 눈 구경 한지 3년이 되었다는 그들을 처음 만난 건 어제(20일) 오후 3시경 정선읍 용탄리 용탄대교 다릿목이었다.

일주일 가량 진행된 강추위로 집으로 들어오던 수도관을 막고 있던 잠금장치가 드디어 얼어 터졌다. 올해 들어 두번째, 겨울 들어 네번째 있는 일이다. 그들을 만난 것은 읍내의 철물점에서 잠금장치를 사들고 오는 길이었다.

무전여행자들과의 만남 우연인가, 인연인가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두 개. 만약이지만 다른 길로 왔으면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 또한 조금만 일찍 왔거나 늦게 왔어도 그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들은 눈 덮인 가리왕산을 마주 보는 길에서 내 차를 세웠다. 세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여행용 가방을 멘 상태였고, 한 사람은 작은 무비카메라를 들고 두 사람의 행동을 찍고 있었다.

"무전여행 중인데예. 어디 하룻밤 잘 만한 곳이 없을까예?"

이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두 사람. 둘 다 스물일곱이었지만 학교로는 선후배 사이였다. 선배되는 사람이 차창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다. 파랗게 얼어붙은 입술, 추운 기색이 역력했다.

"잘 데가 있소만, 잠자리가 편치는 않을 것 같은데…."
"바람과 눈만 피할 수 있다면 헛간이라도 괜찮습니다."

으휴, 힘들다. 톱질 몇 번만에 비명을 지른 여행자들. 톱과 나무만 덩그러이 남았다.
▲ 으휴, 힘들다. 톱질 몇 번만에 비명을 지른 여행자들. 톱과 나무만 덩그러이 남았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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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한 목소리, 시골집의 헛간을 알 나이는 아니겠지만 그 정도 마음이면 집에 데리고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젊은 시절 여러 차례 무전여행을 해본 경험이 있었 터라 흔쾌히 그들을 차에 태웠다. 그들은 차에 오르고도 내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어디서 왔어요?"
"부산서 왔어예." 
"그 먼데서 정선까진 어쩐 일로 왔어요?"
"무전여행이라예. 속상한 일도 있고 해서 무작정 떠났어예."

카메라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붙은 스티커를 보니 MBC 부산문화방송에서 이들의 여행을 따라붙은 모양이었다. 프로그램은 사람 사는 모습을 담아내는 '사이, 사이'란다.

"며칠째인가요?"
"오늘이 사흘 쨉니더."
"그동안엔 어디에서 머물렀어요?"
"부산서 기차 타고 태백까지 갔어예. 새벽 3시 넘어 도착했고예. 대합실에서 아침을 맞았어예. 어제 밤엔 태백의 한 폐교 마당에서 텐트 치고 잤고예."

통나무. 산에서 해 온 나무를 들고 집으로 오는 여행자들. 이마엔 땀이 맺혔다.
▲ 통나무. 산에서 해 온 나무를 들고 집으로 오는 여행자들. 이마엔 땀이 맺혔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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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역 대합실에서 밤을 보냈고, 둘째날은 텐트 안에서 잠을 잤단다. 그리고 어젠 태백산 일출을 보려고 눈 덮인 산을 올랐고, 그 덕분에 운동화가 젖어 발이 무척 시렵다고 했다.

"천제단에서 하늘을 향해 소망을 빌면 들어준다던데, 빌었어요?"
"아직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예. 길을 걸어도 정리가 안 되네예."
"부산에서 있었던 일은 잊어요. 그런 걸 잊자고 여행 떠난 거 아닌가요?"
"그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예."

선배인 박순우씨가 말했다. 답답한 일이 많았나 보다. 그는 친한 후배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여행길에 올랐다고 했다. '배신'이라는 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후배에게 큰 상처를 입은 듯싶었다. 더 이상 묻기가 뭐해 "정선 와본 적 있어요?"하고 화제를 돌렸다. 그는 "강원도를 첨 왔어예"라며 눈이 가득한 골짜기를 신기해했다.

나를 찾아 떠난 사람들, 인생은 톱질 같은 거야

함께 사는 어머니는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들을 보며 놀라는 표정은 지었다. 어머니께 여행 중인 사람들이라고 소개하며 하룻밤 묵어갈 것이라고 했다. 무전여행 중인 이들이니 하룻밤을 공짜로 재워줄 수는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수도관 고치는 일을 알려주며 직접 해보라고 했다.

그들은 서툰 솜씨로 내가 시키는 일을 했다. 두 사람 중 후배인 윤정용씨는 군대생활을 인제군 원통에서 했다며 제법 강원도의 겨울 생활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제야 선배 박순우씨가 집에서 뒹굴던 윤정용씨를 여행 동반자로 삼은 이유가 짐작되었다.    

톱질. 톱질하는 이가 박순우씨. 자세가 엉성하다. 톱질을 힘으로만 하면 허리 다친다.
▲ 톱질. 톱질하는 이가 박순우씨. 자세가 엉성하다. 톱질을 힘으로만 하면 허리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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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를 고친 이후에야 방에다 여행 가방을 풀었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 어둠이 깔리기 전에 땔나무를 해야 했다. 집에 준비된 장작은 있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본인들이 자야 할 방에 땔 나무는 손수 해와야 한다고 나름의 규칙을 전했다.

그들은 알았다며 젖은 신발을 끌고 산으로 올라갔다. 두 사람은 산을 해매다 쓰러진 통나무 하나씩을 끌고, 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이 힘들었던지 나무를 내려놓는 그들의 이마엔 땀이 송송 배어 있었다.

나는 톱을 건네주며 아궁이에 들어갈 정도의 길이로 자르라고 했다. 그러나 톱질이 그렇게 쉽던가. 두 사람은 서툰 톱질을 하며 더 많은 땀을 흘렸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인생이 톱질과 같습니다. 아무리 힘이 좋은 사람이라도 한 번에 자를 수는 없거든요. 톱은 밀 때보다 잡아당길 때 힘을 주어야 나무가 잘 잘라져요."


나는 두 사람에게 톱질하는 법을 일러주었다. 두 사람 중 선배인 박순우씨. 도시를 떠나본 적 없다는 그는 톱질도 더딘 편이었다. 그는 군생활 할 때 엔진톱으로 나무를 잘라본 적은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톱질을 통해 삶이라는 게 단숨에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일러주었다.

"나무는 일곱 토막 정도 넣으면 됩니다. 구들장은 두어 시간 지나야 뎁혀지기 시작하니 당장 춥다고 해서 많이 때면 밤에 뜨거워서 잠을 못 잡니다."

힘들다니까요. 톱질이 얼마나 힘든데요. 직접 해보실래요?
▲ 힘들다니까요. 톱질이 얼마나 힘든데요. 직접 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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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아궁이가 있는 우리 집. 그 중에서 하나의 아궁이를 지정해주었다. 나무에 불을 붙이는 것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각자의 길이 따로 있듯 주인으로서 지나친 참견은 여행자에게 도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 그들은 자신들이 해온 나무로 방을 데우기 시작했다.

그 시간 나는 여행자들을 위해 거실 아궁이에 불을 넣었고, 벽난로에도 나무를 넣었다. 좀처럼 불을 넣지 않던 벽난로에 불을 넣은 것은 그들을 조금이라도 따듯하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나는 그들에게 식사도 직접 차리고 설거지도 하라고 했다. 야속하다 싶겠지만 그 정도는 해야 무전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했다. 산촌이라 술안주가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벽난로에다 감자를 구웠고, 옥수수를 삶았다. 감자와 옥수수만으로 술안주를 만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손님을 최상으로 대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궁이로. 자른 나무를 들고 아궁이로 들어가는 여행자.
▲ 아궁이로. 자른 나무를 들고 아궁이로 들어가는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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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인 박순우씨는 3년 차 기업체 행사나 학교 등의 축제에서 MC 보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직업이 사회자인 셈이다. 나는 그에게 유능한 사회자가 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후배인 윤정용씨는 당구장 사업을 꿈꾸고 있었다. 당구장 체인점을 해보고 싶다는 그에게 "미래 산업이 될 수 있는지, 또는 당구장의 대중화가 가능하지 치밀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군감자가 동이 나고 옥수수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다시 옥수수를 삶았다. 나무를 더 넣기 위해 아궁이에 나갔던 촬영팀이 머쓱한 표정을 하고 돌아왔다.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아궁이 앞에 놓아두었는데, 나무가 타면서 내는 열기로 신발 밑창이 일그러졌다는 것이다.

"부산 촌사람들 드디어 일을 저지르는군요. 장작이 타면서 내는 화력이 얼마나 센데, 그걸 그냥 두고 들어오다니요. 못 신을 정돈가요?"
"억지로 신으면 됩니더."

촬영팀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운동복 차림으로 여행을 왔다는 여행자나 신발을 눌려 먹는 촬영팀이나 시골살이를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나는 여행자들에게 시골 생활이라는 게 생각하는 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고 배워야 할 것 천지인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기엔 어느 정도의 상처가 필요한 법이다.

장작불. 여행자를 위해 벽난로에 장작을 지폈다. 장작불 같이만 뜨거워도 삶은 행복하다.
▲ 장작불. 여행자를 위해 벽난로에 장작을 지폈다. 장작불 같이만 뜨거워도 삶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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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많이 먹어 둬요, 언제 먹을지 모르니까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그들은 눕자마자 코를 골았다. 나를 만나기까지 몇 집을 돌아다니며 묵을 곳을 찾아보았지만 번번이 발길을 돌려야 했던 여행자들. 오늘도 눈밭에 텐트를 쳐야 하나, 하고 낙담했던 그들은 내게 생명의 은인이라고까지 말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게도 그런 은인들이 참 많으니 이렇게라도 보답을 하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보라 했더니만 그들이 눈을 뜬 것은 오전 8시가 훨씬 넘어서였다. 사흘 만에 따듯한 방에서 몸을 눕힌 탓에 몰려온 피곤을 견디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긴 나도 지난해 연말 지방의회의 의정비 인상과 관련해 천막농성을 하며 보름 넘게 찬 바닥에서 밤을 보낸 전력이 있었던 터라 그들을 억지로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간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아침이 되자 더욱 굵어졌고 눈보라까지 휘몰아쳤다. 험악한 날씨가 부산에서 온 이들에겐 그것이 신기한 듯, 그들은 눈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여행자들을 산으로 올려 보내야겠다는 지난밤의 마음을 접고 마당의 눈이나 쓸라고 했다. 밤새 겨우 말린 신발을 아침부터 젖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여행자들은 어제 저녁에도 그랬지만 아침식사도 꿀맛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언제 먹을지 모르니 밥을 많이 먹어 두라고 했다. 눈길을 다니면 배고픔 또한 빨리 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약 없는 식사가 여행자들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니 나는 그들에게 고봉의 밥을 먹도록 했다.

눈. 밖으로 나가는 길이라도 내야 했다. 눈을 쓸고 있는 여행자들.
▲ 눈. 밖으로 나가는 길이라도 내야 했다. 눈을 쓸고 있는 여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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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후 여행자들은 침낭과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눈보라는 골짜기를 휩쓸었고, 모처럼 사람 구경을 한 개는 눈발을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펴낸 소설책 한 권을 선물하면서 그 책에다 이렇게 썼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여행을 끝내는 날, 길에서 만난 인연들이 두 분의 삶에 있어 작은 부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책 속 표지에 쓴 글

여행자들은 날아드는 눈발을 맞으며 5km나 되는 가리왕산 골짜기를 걸어나갔다. 오늘 그들은 어디에서 어떤 인연을 만나 인생을 배우게 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 떠나는 젊은이들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고독하면서도 아름다워 보였다.


태그:#무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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