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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무려 8년여 만에 새로운 앨범을 발표한 가수 남화용씨를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개인 통산 5집인 이번 앨범은 타이틀곡 ‘이젠’을 비롯해 그의 대표작이 된 ‘홀로 가는 길’, ‘사랑하는 그대에게’가 수록되어 있다. 타이틀곡 ‘이젠’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아쉬움과 그리움을 담고 있는데 바이올린과 첼로 같은 현악기가 주는 유려한 선율이 아름다운 곡이다.

 

남화용 5집은 통기타와 포크음악을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추억과 낭만을 되돌려주는 음악이 많다. 시대는 가파르게 스피드와 디지털을 향해 가는데 남화용은 지난 시절의 향수와 사랑, 이별을 아날로그적 감수성으로 다가서고 있다. 그러면서 점점 더 획일화돼가는 대중음악의 문제점을 격정적이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남화용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대중문화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면서 현재의 우리 대중음악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성인음악으로 대변되는 트로트와 십 대와 이십 대가 주류를 형성하는 댄스음악으로 양분된 현재의 대중음악 판 자체에 냉소적이면서, 대중음악의 품격에 대해 깊은 속내를 털어놨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어떤 경로로 가수가 되었나?

"듀엣 유심초에 의해 픽업되면서 83년 자작곡 ‘가버린 추억’으로 데뷔했다. 83년 '사랑하는 그대에게'를 타이틀곡으로 하려고 했는데, 좀 이상한 이유로 ‘가버린 추억’으로 데뷔했다. 자세한 사항은 노코멘트다."

 

- 노래는 아는데, 그 노래를 부른 가수는 모를 때가 있다. 남화용의 ‘홀로 가는 길’이 그 유형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TV 방송을 별로 안했다.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만 좋아했지, 소위 끼가 별로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데뷔 당시에도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이 좀 불편했다."(웃음)

 

- ‘홀로 가는 길’은 87년에 발표되었는데, 92년에 KBS 드라마 <사랑을 위하여>에 삽입된 이유는?

"내가 <사랑을 위하여>란 드라마에 가수 역으로 출연했다. 그런 와중에 PD가 음악이 필요하다고 해서 동명 타이틀곡인 ‘사랑을 위하여’를 만들었다. 그런데 PD가 ‘사랑을 위하여’는 드라마 분위기하고 잘 맞지 않는다고 하던 차에, 하루는 같은 방향에 사는 PD와 함께 내 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87년에 발표는 했지만 별로 홍보하지 않았던 ‘홀로 가는 길’을 우연히 들었다. PD가 “바로 이 음악이다”라고 해서 다음 회부터 ‘홀로 가는 길’을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는데, 다음날 폭발적인 반응이 왔다. 한마디로 대박 난 거다."(웃음)

 

- ‘홀로 가는 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그 당시 사귀던 여자하고 헤어진 후에 만든 노래다. 실연의 아픔을 노래로 만들면서 ‘인생은 홀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는데 반응이 그토록 폭발적일 줄 정말 몰랐다."

 

- 음악은 감미로움과 외로움이 공존하는 것 같은데, 작곡은 주로 어느 때에 하나?

"젊을 때(데뷔 당시)는 음악을 작곡하고 노래하는 것이 거의 일상생활이었다. 그때는 여행을 하고,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아서 감수성이 풍부했었다. 요즘엔 시적인 감수성보다는 인생 전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음악에 대해 깊이 인식하지만 감수성은 많이 약해진 면이 있다."

 

- 가수 활동을 하면서 96년부터 드라마 음악으로 선회한 이유는?

"KBS 드라마 <사랑을 위하여>를 만든 PD와의 인연이 다음 작품으로 연결된 것이 계기인데, 아무래도 ‘홀로 가는 길’이 히트한 게 주요 원인이 아닌가 싶다. 드라마 음악을 만들 땐 정말 바빴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곡을 선곡해서 드라마에 삽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96년만 하더라도 드라마 음악을 전부 창작했다. 드라마 방송에 맞춰 빠른 시간 안에 작곡하랴 녹음하랴 정신이 없었다. 일주일에 세 번은 밤샘 작업을 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는데, 차츰 드라마음악 비중이 작아지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돼 98년에 그만두었다."

 

- 이 시대에 가수란 무엇이고, 음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음악이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순수하게 지친 영혼을 위무하는 기능이고, 두 번째는 현실에서 가질 수 없는 낭만을 문학과 접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의 음악은 트로트와 댄스 음악으로 양분돼서 다른 장르의 음악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한 영화 평론가가 한 말이 생각난다. '관객 천 만 명이 본 영화가 한 편 있는 것보다 십만 명이 볼 수 있는 영화 백 편이 공존하는 나라가 좋다'고 했는데 음악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공존해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고, 음악을 통해 생각을 키워나갔으면 한다.

 

현재 우리나라 음악은 너무 일방적이고 획일화되어 있어 문화의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이 문화의 자양이 되어 사람들에게 향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심하게 말하면 독이 되는 시대다. 이런 현실이 걱정스럽다.

 

음반 시장의 구도가 바뀌고 있다. 성인음악(트로트)과 아이돌 댄스음악만 있지. 다른 장르의 음악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문화가 정체성을 상실하고 대중문화가 저질화 되어 가고 있다. 예를 들어 전문 영역이랄 수 있는 방송 DJ도 개그맨이나 지명도 있는 MC가 차지하고 있어, 전문적인 방송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

 

- 이번에 새로 나온 5집은 어떤 앨범인가?

"4~5년 전에 이미 만들어진 곡도 있고 최근에 만든 곡도 있다. 자작곡이 많은데 후배들에게 받은 곡도 있다. 아주 완벽하게 완성도 있는 앨범이라고 말하긴 쑥스럽지만 공을 많이 들인 앨범이다. 나와 같은 중년세대에게 희망을 주고, 때론 아픔을 공유하는 그런 앨범이다. 트로트와 댄스 음악으로 양분된 현실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이 배인 앨범이다."

 

- 70~80년대 통기타 가수들이 생계형 라이브로만 활동하면서 신곡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거칠게 말하면 예전의 명성으로만 음악 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차적으로 가수들의 나태함에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더 큰 이유는 가수들이 활동할 판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한마디로 한바탕 놀 판이 없는데 어떻게 새로운 앨범을 발표할 수 있겠는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일말의 틈새시장도 없는 상황에서 음악을 소개할 방송이나 신문 등도 획일화되고, 웃기는 것만 요구하니 난감하다. 또 그것을 즐기는 대중들도 문제가 있다. 그러면서 음악적 수준을 따지니 신곡 내놓기가 겁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판 자체가 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도 CBS FM은 군계일학이다. 음악프로그램으로써 FM 본연의 임무에 가장 충실한 방송이다. 앞으로 이런 음악적이고 전문적인 방송국이 많아졌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장인정신이 없다. 20~30년 음악만한 사람이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면 '쟤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앨범을 발표하냐'는 힐난의 눈초리가 있는데 이래서는 진정한 장인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대중음악은 설익은 가수만 득세하고 진정한 예술가는 움츠러들게 돼 있다. 구조적 문제다."

 

- 추억과 감성이 있는 음악이 그립다고 했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추억이란 무엇인가?

"추억이란 지나간 순간의 기록이고 그것이 또 개인의 역사가 된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은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행해질 수 있다. 너무 돈 돈 하지 말고 개인의 소중한 순간을 잘 간직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 음악 활동 이외에 정치에도 관심 있는가?

"관심 있다. 나는 정치와 문화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가 지금하고는 좀 다르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현재의 집권세력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폄하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정치세력을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김구 세력과 또 하나는 이승만 세력. 이 둘 가운데 김구 세력, 즉 민주화 세력의 집권이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아쉽다.

 

지난해에 대통령선거가 있었지만 이른바 ‘시대정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21세기인 지금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못살겠다 갈아보자, 잘먹고 잘살자' 같은 선거구호가 등장하는 걸 보고 60년대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돈만 따지지 말고 품격 있는 문화의 향기가 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백범 김구 선생이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를 자주 보는가,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지난 선거 땐 자주 봤다. <오마이뉴스>가 진정한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민심이 가장 잘 담겨 있고 또 그것을 발판으로 아주 독특한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치적으로 너무 진보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데 그건 고쳐나가면 좋겠다. 문화나 사회면이 새롭게 바뀌었으면 좋겠고, 다른 보수 언론과는 차별된 가치를 계속 추구하기 바란다. 오마이뉴스 독자들은 다양한 문화를 즐겼으면 좋겠다."


태그:#홀로 가는 길, #남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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