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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상 차리기는 가가례라 할 만큼 각양각색이다. 사진은 스님의 영결식장에 차려진 제상으로 일반 가정의 제상 차리기와는 다르다.
 제상 차리기는 가가례라 할 만큼 각양각색이다. 사진은 스님의 영결식장에 차려진 제상으로 일반 가정의 제상 차리기와는 다르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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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상을 차려야 하는 설날이 멀지 않았다. 제아무리 바빠도 제사에는 참석해야 하는 게 한국인의 정서며 가치다. 제사라는 게 평소와는 달리 이런저런 음식을 준비해야 하니 번거롭기도 하지만 요렇게 저렇게 격식을 따지니 제사상 차리기는 헷갈리고도 어렵기만 하다.

제상 차리기가 얼마나 횡설수설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있다. 대표적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국어사전에 조율이시를 검색하면 ‘제사의 제물을 진설할 때, 왼쪽부터 대추·밤·배·감의 차례로 차리라는 격식’으로 나오고 같은 포털 한자사전에서 같은 棗栗梨柿(조율이시)를 검색하면 ‘제사(祭祀)의 제물(祭物)을 진설(陳設)할 때, 동편에서부터 대추·밤·배·감 순으로 놓으며 그 외의 과일은 순서(順序)가 없음’으로 나온다.

신빙성을 둘 수밖에 없는 사전들, 국어사전에서는 왼쪽부터, 한자사전에서는 동편(오른쪽)에서부터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뒤죽박죽인 게 제상 차리기의 현주소이다.

음식 장만에 대한 수고와 정성은 차치하더라도 제상 차리기가 왜 이렇게 어렵고 헷갈리는 걸까? 엄청난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차원의 수학 방정식이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십중팔구는 어려워하고 헷갈려 하는 게 현실이다.

차려진 제상을 보고 ‘왜 이렇게 차렸느냐’고 물으면 시원한 대답보다는 이때는 이랬다 저때는 저랬다 하는 우왕좌왕, 뒤죽박죽인 설명을 듣기 일쑤니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 어렵고 헷갈리게 만드는 게 제상이다.

‘남의 제사에 밤 놔라 대추 놔라’하는 오지랖 넓은 짓이라며 쉽게 말하지 않으려는 상장풍연구가 김진태(49)씨를 만나 제사상에 감춰진 비밀, 어떻게 차리는 것이 합리적인 제설법인지에 대해 들어 보았다.

제상 차리기가 어려운 이유들

제상 차리기가 헷갈리고 어려운 첫째 이유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상 차리기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반복되는 일이라도 누구나 낯설지 않게 척척 진설할 것이다. 그러나 제사라는 게 일 년에 서너 번, 많아 봐야 예닐곱 번 정도가 대부분인데다가 그나마 맏이가 아니면 차려진 제상에 꾸벅 절만 하면 되니 진득하게 익힐 이유도 없고, 꼭 알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건성건성 넘기다 보니 생소하고도 헷갈리기 마련이다.

상장풍 연구가 김진태씨가 제상에 담긴 음양오행을 설명하고 있다.
 상장풍 연구가 김진태씨가 제상에 담긴 음양오행을 설명하고 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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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유는 정설 없는 가풍과 애매모호한 기준(위치) 때문이다. 제상 차리기는 가가례(家家禮)라 할 만큼 집집마다, 문중마다 다르니 ‘이건 이렇게’ 라는 정설이 있을 수 없고, 정설이 없다 보니 제각각인듯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제상 차리기에 대해 조금만 신경을 쓰면 홍동백서, 두동미서, 좌포우혜, 좌반우갱이니 하는 말들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붉은색 과일은 동쪽, 흰색 과일은 서쪽에 놓으라는 홍동백서, 머리가 있는 생선을 진설할 때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놓으라는 두동미서, 북어와 같은 포는 제상의 좌측에 굴비나 자반과 같은 식혜(食醢)는 우측에 놓으라는 좌포우혜, 밥은 좌측에 국은 동쪽에 놓으라는 좌반우갱 외에도 음식을 놓을 위치를 ‘동서’와 ‘좌우’를 붙여 설명한 게 수두룩하다.

제상 차리는 방법에 대한 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음에도 제상 차리기가 헷갈리고 어려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음식을 차릴 위치가 ‘동서’와 ‘좌우’로 혼용되었기 때문이다. ‘동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좌우’는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설사 동서와 좌우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있다고 해도 거기에 따른 확고한 기준이 없으니 마냥 애매하고 모호하다. 

‘동서’는 신위 기준 ‘좌우’는 제주 기준

제상은 대부분이 장방형의 교자상이다. 교자상 안쪽에 신위(지방)를 모시고 준비한 음식들을 그 앞쪽으로 차리게 된다. 제상을 차릴 때 사용되는 ‘동서’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자연방위의 동서(東西)를 말하는 게 아니라 제상 안쪽에 모셔놓은 신위(지방)를 기준으로 말한 것이다.

자연방위(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와 상관없이 신위를 모셔 놓는 방향(쪽)이 북쪽으로 간주되고 있으니, 제상 안쪽에 모셔진 신위를 기준으로 하면 신위의 좌측은 동쪽이 되고, 우측은 서쪽이 된다. 신위를 모신 방향을 북쪽으로 간주하는 것은 ‘북망산천’ 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옛날부터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는 곳이 북쪽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 있을 때 서로의 좌우가 반대이듯 제상의 어느 위치(앞, 뒤)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좌우는 서로가 반대되고, 어느 위치를 기준으로 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고 서로 ‘좌우’라고 말하면 어느 쪽을 말하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고, 제상을 차릴 때도 마찬가지다.

제상 안쪽에 모셔진 신위의 기준에서도 ‘좌우’를 말하고, 제상 바깥쪽인 제주의 입장에서도 ‘좌우’를 말한다면 제주를 기준으로 하는 좌측(서쪽)이 신위를 기준으로 한 좌측으로는 동쪽이 되니 서로 상반된다. 즉, 제주를 기준으로 한 오른쪽(서쪽)이 신위를 기준으로 하면 왼쪽이 되니 서로 상반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러한 모순을 피하기 위해 신위를 기준으로 해 위치를 가름 할 때는 ‘동서’로, 제주의 입장에서 위치를 가름 할 때는 ‘좌우’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홍동백서란 신위를 기준으로 하여 동쪽(좌측)에 붉은 색 과일을, 서쪽에 흰색 과일을 놓으라는 말이니, 제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측(동쪽)에 붉은 색 과일을 놓고, 좌측(서쪽)에 흰색 과일을 놓으라는 것이다.

반면에 좌포우혜란 제주를 기준으로 하여 포는 왼쪽에 자반은 오른쪽에 차리라는 진설법을 설명한 것이니, 신위의 입장에서 본다면 포가 제상의 오른쪽인 서쪽에 놓이고, 자반이 왼쪽인 동쪽에 놓이게 되어 이것을 곧이곧대로 동서로 표시한다면 ‘혜동포서’가 된다.

'동서'와 '좌우'는 음양에서 출발

여기서 ‘동서’와 ‘좌우’는 무엇인가? 단순히 위치를 가름하기 위한 기준이며 수단인가? 아니다. ‘동서’와 ‘좌우’는 동양정서의 기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음양’에서 출발한다. 음양에서 ‘동’과 ‘좌’는 양이고 ‘서’와 ‘우’는 음이다.

제상 차리기가 헷갈리고 어려운 것은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상 차리기가 헷갈리고 어려운 것은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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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동서’와 ‘좌우’가 충돌한다는 것은 음양이 충돌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일례로 홍동백서와 조율시이를 놓고 생각해 보자. 홍동백서란 색깔 음양에서 붉은색이 양이니 붉은색 과일은 신위를 기준으로 하여 양(陽) 방향에 해당하는 동쪽(왼쪽)에, 음에 해당하는 흰색 과일은 음 방향에 해당하는 서쪽(오른쪽)에 놓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좌측으로부터 대추, 밤, 감(곶감), 배를 놓으라는 조율시이의 진설법을 따르면 제주의 입장에서는 붉은 색을 띠는 대추를 양 방향인 좌측에 놓게 되지만, 신위의 입장에서 본다면 양에 해당하는 대추를 음의 방향인 우측(서쪽)에 놓게 되니 음양의 질서에 혼란이 오는 것이다.

‘동서’와 ‘좌우’를 혼용하여 사용하다보니 신위를 기준으로 하였을 때 어떤 양 음식은 양 방향인 동쪽에 놓이지만 어떤 양 음식은 음 방향인 서쪽에 진설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입장이라면 신위를 기준으로 한 ‘홍동백서’가 제주를 기준으로 할 때는 ‘좌백우홍’으로 진설한 꼴이 되어 하나의 제상에 음양이 뒤범벅되어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혼란스런 상태다.

육식은 신위 기준, 채식은 제주기준이라는 어떤 뚜렷한 기준이라도 있다면 그에 따라 동서와 좌우를 구분하여 사용하면 되겠지만 아무런 근거나 기준 없이 어떤 것은 동서로, 어떤 것은 좌우로 하라는 말만 돌아다니니 뒤범벅에 횡설수설이다.     

제상 차리기, 산해진미를 '음양오행'에 맞춰라

이처럼 뒤죽박죽인 제사상 차리기를 어떻게 바로 세울 수 있을까? 누군가가 ‘왜?’하고 물었을 때 헷갈리지 않고 일관성 있는 설명을 할 수 있는 제사상 차리기는 신위가 기준이 되는 ‘동서’이든, 제주가 기준이 되는 ‘좌우’든 한 가지 기준을 가풍의 기준으로 잡으면 될 듯하다.

기준이 분명하고 뚜렷하다면 누군가가 ‘이것은 왜 여기에 놨어?’하고 물을 때 분명하게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홍동백시와 상충되는 조율시이가 동조서율(대추는 동쪽, 밤은 서쪽)로 정리되듯 질서 있게 정리될 수 있다.

신위를 기준으로 하는 홍동백서로 진설을 하고자하는 집안이라면 홍동백서, 두동미서, 생동숙서에 일치시켜 좌포우혜가 아니라 포동혜서(포는 동쪽, 혜는 서쪽), 건동습서(마른 것은 동쪽, 습한 것은 서쪽), 갱동반서(국은 동쪽, 밥은 서쪽)로 진설하면 동서, 좌우의 혼용에 따른 헷갈림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같은 제상에서 발생하는 음양충돌도 발생치 않으니 문제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 ‘동서’나 ‘좌우’ 한 가지만을 기준으로 하면 헷갈릴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 음양에 따라 양에 해당하는 음식은 양방향인 동쪽에, 음에 해당하는 음식은 음 방향인 서쪽에 진설하였다고 하면 분명한 설명이 되고, 또렷하게 이해될 것이다.

제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산해진미가 다 들어가 있다.
 제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산해진미가 다 들어가 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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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남아 있는 숙제는 과연 어떤 것이 ‘양’이고 어떤 것이 ‘음’이냐를 구분하는 것이지만 그 정도는 어른이 되면서 공부하고 숙지해야 할 정서에 대한 기본이다. 아울러 제주와 신위 중 무엇을 우선(기준)으로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필자의 생각에 제주보다는 제주가 모시는 신위를 기준으로 진설을 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게 함으로 동서로 나뉘는 방위 음양, 좌우로 구분되는 위치음양이 동좌는 양, 서우는 음으로 일치를 이룬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정성

제사상 차리기만큼 어렵고 헷갈리는 게 제사음식 준비다.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음식을 조리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제사음식이야 말로 산해진미에 진수성찬이다. 제상에 차려지는 음식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산 짐승으로 구분되는 소고기, 들짐승으로 구분되는 돼지고기, 집에서 기르는 닭고기는 물론 바다에서 잡는 생선까지 빠지지 않고 진설되니 이야말로 대표적인 산해진미다.

산해진미란 의미가 담겨 있는 제상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성이다. 상다리가 휘청거리도록 이것저것을 챙겨 진수성찬으로 차렸을지라도 그냥 의례적인 집안일쯤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제수로서의 의미는 없어지거나 반감된다.

제수 마련과 제상 차리기의 진정한 가치는 조상을 기리고자 하는 갸륵한 정성에 있다는 것만을 명심한다면 진수성찬이 아니고, 설사 진설법이 조금 틀렸더라도 흉도 아니고 허물도 아니 될 것이다.

냉수 한 그릇을 올리더라도 정성만 지극하다면 효성이 진수고, 정성이 성찬이니 산해진미의 성찬이 정성 속에 다 들어 있다.

덧붙이는 글 | 눈으로 보는 제상 차리기, 음양오행으로 분석해 본 제상이 이어집니다.



태그:#제상 차리기, #진설, #음양오행, #산해진미, #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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