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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으로 컴백. 나는 다시 이천 사람이 되었다. 이천을 떠난 지 3년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천에 참사가 일어났다. 한 열흘간 두문불출 집에만 있다가 눈이 온 다음날 기지개를 켰다. 불현듯 이천의 겨울풍경도 보고 싶고 참사 현장도 둘러보고 싶어서다.

 

시작은 참사현장이었다. 이천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참사 현장부터 둘러보고 시작하고 싶었던 것. 내가 사는 곳은 하이닉스 쪽인데, 참사현장은 서쪽에서 국도를 타고 오다 보면 이천시내로 진입하기 직전에 있다.

 

참사 현장은 그 날의 악몽을 고스란히 되살려 놓았다. 사고 수습이 끝나지 않은듯 소방차나 앰뷸런스도 그대로였고, 시커멓게 그으른 건물 안팎에 사람들도 있었다. 매일 언론을 통해서만 접하다 직접 와보니, 정말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만큼 참혹했다.

 

참사현장에서 나와 산수유마을이 있는 백사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금은 산수유 꽃도 열매도 볼 수 없는 겨울. 산수유 마을 바로 곁에 있는 반룡송(천연기념물 제 381호)을 보기 위해서다. 신라말 풍수의 대가였던 승려 도선이 명당으로 지목한 5곳에 나무를 심었는데, 그 중 하나라는 전설이 있다.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이천 백송(천연기념물 제 253호)을 찾아갔다. 백송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수로 중국이 원산지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희귀종이라고 한다. 전국에 모두 8그루가 있는데, 이곳(백사면 신대리) 백송의 수령은 220년으로 추정. 높이는 16m 정도되며 밑둥에서부터 갈라져 나온 잔가지가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고 흰색이 도드라져 있는 게 특이했다.

 

다시 시내로 나와 설봉산으로 갔다. 설봉산은 설봉호수를 안고 있다. 또 설봉호수 주변으로 조성된 설봉공원은 이천시민의 휴식처이며 도자기 엑스포를 비롯한 모든 행사가 치러지는 이천의 중심지다. 사시사철, 또 하루 24시간, 어느 때나 찾아와도 좋은 산책 명소이기도 하다.

 

설봉산은 이천의 주산으로 이천 시민을 위한 몸과 마음의 안식처이다. 그래서 산 정상을 이천 시민의 꿈과 희망을 간직한 곳이라 하여 ‘희망봉’이라 부르고 있다. 설봉산은 많은 설화를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영월암을 비롯하여 설봉산성 등 신라시대 역사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높지는 않지만 편안하고 숲이 우거진 산으로 등산로가 여러 갈래로 나 있어 이천 시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지만 실제적으로는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절 안에는 마애여래입상(보물 제822호)을 비롯하여 보호수인 은행나무가 있어 절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노거수인 은행나무는 고려 말에 나옹화상이 심은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영월암에서 정상쪽으로 계단을 걸어 올라가 좌측으로 다시 내려가면 삼형제 바위가 있다. 눈이 와서 미끄러웠지만 조심조심 걸어내려갔다. 나무로 된 계단이 놓아져 있고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눈도 군데군데 녹아 있었다.

 

삼형제 바위에는 효심어린 전설이 있다. 효심이 지극한 삼형제가 어머니를 찾으러 나갔다가 호랑이를 만난 어머니를 보고 셋이 똑같이 절벽을 뛰어 내렸고 순간 세덩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길이 미끄러운데도 산밑에서부터 걸어올라온 가족이 있었다. 바위를 보면서 아이에게 전설을 이야기해주면 아이에게도 효심이 전달될까? 아이와 온 가족을 보면서 새삼스러운 생각을 해보았다.

 

설봉산을 내려와 마지막으로 이천 시민공원으로 향했다. 이번 참사 합동분향소가 있는 곳이다. 가까이 갈수록 슬픔이 짙게 다가왔다. 유가족과 사망자를 위로하는 현수막 때문이었다. 분향을 하고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사진은 찍지 못했다. 오열하는 조문객들을 보면서 도저히 사진을 찍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늘 처연하게 제자리에 서서 몇 백년을 버티는 자연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고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고 자연은 그저 묵묵히 우리를 바라보며 무언의 깨달음을 주는 것 같아서. 아무리 힘들다 해도 우리는 예전보다 휠씬 살기가 나아졌고 편리해졌다. 이제 더 이상 서두르기보다 느리더라도 모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 가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태그:#이천 참사, #설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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