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 일곱 시 반. 뒷간에 다녀온 옆지기가 말합니다. “밖에 눈 와요. 길에도 많이 쌓였어요.” 그제부터 퍽 추워지고 엊저녁은 그제보다 조금은 따뜻했는데, 하늘이 뿌옇더니 그예 눈이 내리는군요. 요사이는 하늘에 하도 먼지띠가 짙고 넓게 퍼져 있어서, 저게 구름인지 아닌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엊저녁 올려다본 뿌연 하늘은 먼지띠가 아닌 구름이었군요.

아침 아홉 시 십 분. 도서관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가 이내 일어납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도서관 문을 열어 놓기보다는 사진기 들고 골목길 모습을 담는 편이 낫겠구나 싶어서.

살림집 옥상마당에서 철길을 내다봅니다. 철컹철컹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전철이 지나갑니다.
▲ 살림집 옥상마당 살림집 옥상마당에서 철길을 내다봅니다. 철컹철컹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전철이 지나갑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배다리 한길에 섭니다. 사진기를 고쳐멥니다. 손이 시립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헌책방 앞모습을 몇 장 담습니다. 동인천우체국 쪽으로 걷습니다. 산업도로 닦는다며 골목집 밀어낸 빈터가 쓸쓸했는데, 눈으로 소복히 덮여 하얗습니다.

공사터에 바로 맞닿은 구멍가게 앞에 섭니다. 구멍가게 앞 텃밭도 눈이 함초롬히 덮였습니다. 진눈깨비가 날립니다. 얼굴이 따갑고 사진기 든 손이 따갑습니다. 등을 돌리고 한동안 손을 녹입니다. 산업도로 예정터를 빙 둘러서 막아 놓은 울타리를 따라 걷습니다. 조그마한 빗자루가 문간에 하나 서 있고 둘 놓여 있습니다. 골목집 어르신은 어느새 집 앞 눈을 쓸어 놓으셨습니다. 집 옆으로 죽 이어진 골목길도 쓸어 놓으셨습니다. 빗질 자국으로 보아서는 벌써 두 번 나와서 쓸으셨는데, 두 번 빗질한 위로 새로 온 눈이 덮였습니다.

가만히 보면, 비질을 몇 번 했는지 보입니다.
▲ 비질 자국 가만히 보면, 비질을 몇 번 했는지 보입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아침저녁으로는 골목길 쓰는 빗자루. 눈이 올 때는 눈 빗자루.
▲ 눈 빗자루 아침저녁으로는 골목길 쓰는 빗자루. 눈이 올 때는 눈 빗자루.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사람 발자국 옆으로 사람 아닌 짐승 발자국이 보입니다. 비둘기일까요. 눈오고 추운 겨울날, 비둘기들은 어떻게 지낼는지. 눈이 녹을 때까지 먹이는 어떻게 얻을는지. 골목길 고양이들은 또 어디에들 숨어 있는지. 다른 짐승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고양이들은 이 눈밭에서 어떻게 살아남을는지.

잠깐 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녹입니다. 주머니에 넣어도 그닥 녹지는 않으나 밖에 꺼내어 사진기 들 생각을 해서라도 조금이나마 녹입니다. 골목집 벽에 붙은 동호수 알림패를 봅니다. 길이름패에는 ‘서해로’라고 적혀 있습니다.

어른 키보다 높은 울타리를 따라 걷다가, 개구멍이 살짝 드러나 있는 곳을 찾아냅니다.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갑니다. 서울로 오가는 전철길 옆으로 해서, 송림초등학교 큰길 건너편까지 200미터 조금 못 되게, 너비 50∼70미터로 밀어버린 빈터가 휑뎅그렁합니다. 이 휑뎅그렁한 곳에도 눈은 소복소복 덮입니다. 눈 맞으며 부들부들 떨면서, 어릴 적 이 골목길을 동무들과 뛰놀았던 일을 더듬어 봅니다. 이제는 싸그리 사라져 버렸지만, 그때 그 조그마한 집들이 어떤 모양이었고 누가 살았던가를 가만가만 되짚습니다.

산업도로 예정터 울타리 둘레. 가을까지 무럭무럭 싱싱한 남새를 기르던 꽃그릇에 눈이 담뿍 덮였습니다.
▲ 울타리 둘레 산업도로 예정터 울타리 둘레. 가을까지 무럭무럭 싱싱한 남새를 기르던 꽃그릇에 눈이 담뿍 덮였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휑뎅그렁해진 터에 자꾸만 찻길을 놓으려 하지 말고, 도시농업을 북돋우면서, "동네 주민이 만들어 가는 생태공원"으로 가꾸어 본다면 참으로 좋겠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 휑뎅그렁한 터 이렇게 휑뎅그렁해진 터에 자꾸만 찻길을 놓으려 하지 말고, 도시농업을 북돋우면서, "동네 주민이 만들어 가는 생태공원"으로 가꾸어 본다면 참으로 좋겠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개구멍으로 해서 밖으로 나옵니다. 울타리에서 50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로 창영초등학교 건물이 보입니다. 건물 역사가 100년이 되는 창영초등학교. 시에서 문화재로 지정해 두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건물로 백 해가 넘는 곳이 우리 나라에 몇 군데 남았을까요.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둘레 50미터 안쪽에 ‘위험시설’이 있으면 안 된다는 조례가 있다는데, 50미터가 아니라 100미터 안쪽에도 위험시설은 없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50미터라는 거리는 길지 않습니다. 더욱이 산업도로는 길너비를 50미터에서 70미터로 맞춘다고 하는데, 고작 길너비밖에 안 떨어져 있다면, 저 초등학교에 다닐 아이들, 또 저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이 살아가는 이 동네는 어찌 될까요.

보상금 몇 푼 받고 고향 동네를 떠나면 모든 일이 풀릴까요. 보상금으로는 전세는커녕 월세 얻기도 빠듯한데, 고향 아닌 곳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얼마나 빨리 잘 찾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자꾸만 낯선 학교 낯선 동네로 내보내며 살가운 동무들하고 멀어지게 하는 막개발을 우리 어른들은 왜 자꾸자꾸 해대고 있을까요.

이곳, 창영초등학교, 또 바로 옆에 있는 영화초등학교, 또 조금 옆에 이웃해 있는 서림초등학교, 또 산업도로가 바로 10미터 옆에 자리하게 될 송림초등학교에 자기네 아이들을 보내지 않으니, 이런 길을 놓든 말든 공사업체와 공무원들은 아무 상관이 없을까요.

겨울 나는 꽃그릇. 골목집 아주머니가 따뜻하게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새벽에도 쓸고 이른아침에도 쓸고, 또 한 번 쓴 다음 담벽에 기대 놓은 빗자루도 옆에 서고.
▲ 겨울 나는 꽃그릇 겨울 나는 꽃그릇. 골목집 아주머니가 따뜻하게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새벽에도 쓸고 이른아침에도 쓸고, 또 한 번 쓴 다음 담벽에 기대 놓은 빗자루도 옆에 서고.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어쩌면, 아무 생각이 없는지 모릅니다. 만석초등학교 옆에는 두산중공업, 동일방직, 동국제강, 인천제철, 또 이제는 옮겨간 유리공장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중고등학교와 울타리 하나만큼만 떨어져 있던 용현남초등학교 둘레에는 동양화학, 대우중공업, 폐수처리장, 원목처리장이 있었고요.

조례든 법이든, 이런 것이 있건 없건 어른들은 아이들 교육권과 생활권을 한 번도 제대로 살핀 적이 없었지 싶어요. 그러고 보니, 제가 다닌 신광초등학교 옆에는 연탄공장과 제일제당과 옐로우하우스가 있었군요.

폐지를 모으는 어르신이 사는 집. 일장갑이 담벽 빨랫줄에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 폐지 모으는 집 폐지를 모으는 어르신이 사는 집. 일장갑이 담벽 빨랫줄에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슬픈 생각은 그만하자고, 씁쓸한 생각은 접어두자고, 눈 구경을 나왔으면 눈이나 보자고, 발걸음을 돌립니다. 창영동과 금곡동 골목을 지나 숭의동 골목으로 옮겨 갑니다. 숭의동 안쪽으로 이어지는 한길에서 공무원과 동네 어른들이 눈치우기를 합니다. 짐차 한 대를 끌고 다니면서 길바닥에 염화나트륨을 뿌립니다. 염화나트륨 세례를 받은 눈은 금세 녹으면서 질척질척한 잿빛으로 바뀝니다. 염화나트륨이 섞인 얼음조각이 길에 얼어붙지 않도록 길가 골목집에 바짝 밀어붙입니다.

사진기를 든 저는, 눈치우는 무리 앞으로 얼른 넘어갑니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섭니다. 담벼락에 기대어 사진을 담습니다. 사람 기척을 느꼈는지 담벼락 안쪽에 있는 개가 컹컹 짖습니다. 얼럴럴 얼럴럴. 쪼매만 기달려 주오. 곧 간당께.

골목길을 거닐며, 동네 아이는 두 번 만납니다. 그런데 두 번 다 혼자서 노는 아이였습니다. 혼자서 눈을 뭉쳐서 자동차에 맞히고 이웃집 담벼락에 맞히고 하면서......
▲ 눈 뭉치기 놀이 골목길을 거닐며, 동네 아이는 두 번 만납니다. 그런데 두 번 다 혼자서 노는 아이였습니다. 혼자서 눈을 뭉쳐서 자동차에 맞히고 이웃집 담벼락에 맞히고 하면서......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담벼락에 내려앉은 눈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담벼락에 얹힌 꽃그릇에 내려앉은 눈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담벼락에 붙어 있는 크고작은 꽃그릇들, 스티로폼이기도 하고 낡은 프라스틱 통이기도 한 꽃그릇에 얌전하게 앉은 눈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차는 올라갈 수 없고, 자전거도 웬만해서는 오를 수 없는, 사람이 두 다리로 걸어도 미끄러질까 힘겨운 숭의동 109번지 비탈길 앞에 섭니다. 109번지 비탈 골목길 맨꼭대기에 예배당 뾰족탑이 보입니다. 히야. 저 예배당은 어쩜 저렇게 꼭대기에 지을 수 있었을까. 참 오래된 예배당인데, 저 예배당 짓느라 많은 사람들 무던히고 애먹었겠구나.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비탈을 올라갑니다. 비탈 골목에 자리잡은 집들은 비탈에 맞게 집이 기우뚱합니다. 그래도 이 기우뚱 집에서 쉰 해 예순 해를 살았고, 일흔 해 백 해를 살았지요. 개화기 때에도 살았지만 조선시대에도 살았고 고려시대에도 살았고 삼국시대, 옛조선 때에도 살았겠지요. 지난날에는 풀과 흙으로 이은 집이라면, 이제는 시멘트와 기와나 슬레이트로 이은 집으로 바뀐 채.

인천 숭의동 109번지 비탈 골목. 이런 비탈 골목을 잘 살려놓기만 해도, 옛날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며 연속극이며 뮤직비디오며...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데에 한몫 단단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숭의동 109번지 인천 숭의동 109번지 비탈 골목. 이런 비탈 골목을 잘 살려놓기만 해도, 옛날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며 연속극이며 뮤직비디오며...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데에 한몫 단단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눈이 안 와도 걸어서 올라가기 힘든 비탈길. 눈이 오니 한결 미끄럽고 힘든 비탈길.
▲ 비탈길을 올라와서 눈이 안 와도 걸어서 올라가기 힘든 비탈길. 눈이 오니 한결 미끄럽고 힘든 비탈길.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손이 많이 시립니다. 끙끙 앓으면서 걷습니다. 십 초쯤 주머니에 넣었다가 삼십 초나 일 분 동안 사진기를 들고, 다시 십 초나 오 초쯤 주머니에 넣었다가 이십 초나 이 분 동안 사진기를 들고. 콧물까지 훌쩍훌쩍 어기적어기적 걸으며 도원역 뒷길로 나옵니다. 전철역 울타리를 끼고 텃밭농사를 짓는 아주머니네 앞에 섭니다. 텃밭에는 허수아비 하나 서 있고, 허수아비 모자며 옷이며 기둥이며 옴팡 눈을 뒤집어썼습니다. 몽당빗자루로 눈을 쓰는 아주머니를 보며, “고생하십니다” 하고 꾸벅 절을 합니다.

계단을 내려온 뒤 찻길 밑으로 움푹 파인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처음부터 움푹 땅밑으로 들어간 골목집은 아닙니다. 전철역을 새로 마련하고 전철역 둘레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게 길을 닦느라 사람들 살림집이 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도원역 옆에 바짝 붙은 골목집 텃밭. 텃밭 한켠에는 허수아비 하나 서 있습니다.
▲ 텃밭농사와 허수아비 도원역 옆에 바짝 붙은 골목집 텃밭. 텃밭 한켠에는 허수아비 하나 서 있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한창 사진을 찍고 있자니, 뒤에서, “거, 뭐하는 거요?” 하는 앙칼진 소리가 들립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우산을 받고 걸어가다가 저를 부릅니다.

“보면 모르십니까? 눈이 오니까 눈 사진 찍고 있잖아요.”
“…….”
“…….”
“사람도 없는 집을 왜 찍어?”
“여기에 사람이 왜 없어요? 바로 조 앞에도 눈 쓰는 아주머니가 있는데.”
“자꾸 이상한 사람이 와서 뭐를 하니까…….”
“사진 찍는 게 이상한 일입니까? 이상한 일을 한 사람이 누구인데요?”
“아니, 자네가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다른 동네 사람들이 와서 …….”
“저도 이 동네 사람이거든요? 제가 제 동네 사진을 찍는데 뭐가 이상하지요? 다 아는 동네사람들이고, 눈이 오니까, 아이들은 눈싸움을 하는 것처럼 저는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잖아요. 삼십사 년을 살아온 동네에서 사진 찍는 게 뭐가 이상하지요?”
“…….”

우산 든 아저씨는 헛기침 몇 번을 하더니 뒤돌아 갑니다.

다시 걷습니다. 계단을 타고 안쪽 오르막 골목으로 들어섭니다. 이 자리에 서면 숭의동운동장(야구장)과 인천공설운동장(종합경기장)이 코앞에 내다보입니다. 인천사람들한테는 오래도록 여러 가지 추억과 이야기가 담긴 야구장과 축구장.

인천시장은 이 오래된 야구장을 올 2월에 허물어 버린 다음, 이 자리에 축구전용구장을 짓겠다고 말합니다. 야구장 허물고 축구장 짓는 데 들어가는 돈이 모자라기에, 축구장 옆에 있는 오래된 집들을 한꺼번에 허물고(재개발) 51층짜리 ㅎ건설사 아파트를 올려세워서, 모자라는 돈을 채운다고 말합니다.

지난 2002년 월드컵을 할 때, 인천에도 ‘세계 수준 축구 전용구장’을 수천 억을 들여서 지었습니다. 그 축구장은 인천유나이티드 축구단이 잘 쓰고 있습니다(새로 지을 이 축구장은 인천유나이티드 축구단이 쓰도록 한다는데, 2002년에 지은 월드컵경기장이 벌써 낡았기 때문일까요? 알쏭달쏭입니다).

인천에 새로운 축구단을 만들지도 않으면서, 또 하나 있는 큰 축구장으로도 넉넉하면서, 굳이 새 축구장을 크게 다시 지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아시아경기대회를 2014년에 치른다고 한다면, 축구전용구장이 아니라 종합경기장이 있어야 할 텐데, 종합경기장으로 잘 써 오고 있던 공설운동장(야구장 옆에 붙어 있습니다)까지 허물어야 할 까닭이란 무엇일까요.

골목길 빨래집게. 뒤편으로 숭의동운동장이 보입니다.
▲ 골목길 빨래집게 골목길 빨래집게. 뒤편으로 숭의동운동장이 보입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까부수고 새로 지으면 그만이라고 내세우는 분들한테는 무슨 논리가 있고, 무슨 경제가 있으며, 무슨 삶과 생각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 삶터를 얼마나 헤아려 보고 있을까 되뇌어 봅니다. 자연 삶터는 얼마나 헤아리고 있을까요. 지구자원은 개발을 거침없이 이어나가도 바닥이 나지 않을 만큼 넉넉한가요.

우리 사람한테는 맑은 물과 공기와 햇볕이 없어도, 오로지 돈만 많으면, 또는 돈만 많이 벌면 다 되는가요. 오랜 고향땅에 뿌리를 내리며 조촐하게 역사와 이야기를 꾸려 나가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내쫓고, 인천이 흘러온 발자국을 모두 쓸어낸 뒤에 새로 짓는 철근 시멘트 건물에서 무슨 새 문화와 역사가 태어날 수 있을는지요. 사람 사는 터전이 아니라, 집투기 땅투기를 목적으로 인천을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무슨 문화와 역사를 바랄 수 있을는지요.

인천은, 대한민국은, 왜 ‘명품도시’나 ‘명품나라’가 되어야 할까요. ‘명품’이고 아니고를 가리는 잣대는 어디에 있고, 이런 잣대는 누가 내리는가요. 우리들은 명품 아닌 터전에 살면 행복하지 않고 오붓하지 않고 평화롭지 않으며 아름답지 않은가요.

동네 막걸리집 앞에 선 자전거. 막걸리집도, 헌책방도, 쌀집도, 양장점도, 구멍가게도, 모두들 짐자전거를 타고다닙니다.
▲ 눈 맞는 자전거 동네 막걸리집 앞에 선 자전거. 막걸리집도, 헌책방도, 쌀집도, 양장점도, 구멍가게도, 모두들 짐자전거를 타고다닙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다시 창영동 골목길로 접어듭니다. 눈치우기 하는 공무원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개코막걸리집 앞에 선 채로 눈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자전거를 사진으로 찰칵.

헌책방 〈아벨서점〉에 들어가 언손을 녹이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몸조리 하느라 자리에 누워 있는 옆지기 이마를 몇 번 쓸어 준 뒤 도서관 문을 엽니다.

눈을 밟고 지나간 사람과 새가 남긴 발자국
▲ 발자국 눈을 밟고 지나간 사람과 새가 남긴 발자국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골목길 한켠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 오며 사람들과 마주해 오던 구멍가게 한 곳.
▲ 구멍가게 골목길 한켠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 오며 사람들과 마주해 오던 구멍가게 한 곳.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눈 옴팡 뒤집어쓴 자전거.
▲ 자전거 눈 옴팡 뒤집어쓴 자전거.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인천 골목길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계단.
▲ 계단 인천 골목길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계단.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몽당빗자루 하나로도 골목길 눈을 잘 치워 주십니다.
▲ 몽당빗자루 몽당빗자루 하나로도 골목길 눈을 잘 치워 주십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동네 사진을 찍고 있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큰 개. 저도 한참 동안 개와 마주보고 서 있었습니다.
▲ 골목집 개 동네 사진을 찍고 있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큰 개. 저도 한참 동안 개와 마주보고 서 있었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눈은 골목길에도 내리고 찻길에도 내리고 골목집 지붕에도 아파트 지붕에도 내립니다.
▲ 눈은 눈은 골목길에도 내리고 찻길에도 내리고 골목집 지붕에도 아파트 지붕에도 내립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눈은 온 동네를 하얗게 덮어 주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어떠하든, 우리 삶이 어떠하든,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떠하든.
▲ 눈은 2 눈은 온 동네를 하얗게 덮어 주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어떠하든, 우리 삶이 어떠하든,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떠하든.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늘 도시농업을 일구어 왔으나, '눈에 안 띈다'고 하여 묻혀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한 곳에서 조촐하게 당신 삶을 꾸려 왔습니다. 눈밭에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 허수아비 2 늘 도시농업을 일구어 왔으나, '눈에 안 띈다'고 하여 묻혀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한 곳에서 조촐하게 당신 삶을 꾸려 왔습니다. 눈밭에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지금 인천시는, 중ㆍ동구 둘레를 놓고, 또 남구를 비롯한 오래된 동네를 놓고 ‘도심정화사업’을 벌여 골목집과 재래시장을 몰아내고, 동구 배다리 둘레는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길이 2.41km)’를 골목집이 몰려 있는 동네 한복판에 놓으려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산업도로를 뚫은 뒤에는 골목집을 모두 쓸어내고 아파트와 쇼핑센터를 올려세운다고 합니다.

대단한 이름이나 많은 돈벌이나 큰 힘 하나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동네가 이곳 인천 중ㆍ동구, 또 남구입니다. 경제개발과 경제성장하고는 조금도 안 어울릴 수 있겠지만, 온 삶을 바쳐 땀흘려 일하고 조그마한 몸뚱아리 드러누울 작은 집 한 칸이나 방 한 칸 마련하여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도 ‘내 집에서, 내 땅에서, 조용하면서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다가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님 정책을 한 번도 거스르지 않고 허리 구부정할 때까지 살아온 사람들 숨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배다리 골목길 이야기]를 띄웁니다. 이 땅에는 사람이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고, 골목길에는 낮은자리 사람들, 그러니까 서민들 숨결이 녹아난 보금자리가 있음을 들려주고 싶고, 돈으로는 헤일 수 없고 물질로는 채울 수 없는 눈물과 웃음이 서린 우리 손때 묻은 길과 집이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태그:#골목길, #눈꽃, #인천, #배다리, #산업도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