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글은 <오마이뉴스>와 함께 경부운하 공약 검증작업을 해 온 박진섭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이 보내왔습니다 <편집자주>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해를 잘 보내기위해서는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데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뭔가 홀린 기분입니다. 마음은 무겁고 착잡하며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습니다. 대통령도 새로 뽑고 새 정부가 들어서기 때문에 함께 축하하고 희망이 넘쳐야 합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홀가분하고 신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이 비단 저에게만 국한된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저의 불찰이겠지요. 새해부터 하필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기우와 우려가 현실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운하'를 잘 몰랐던 제가 1년이 넘게 공부하고 현장을 가고 조금 무리해서 유럽의 운하를 방문해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우리나라는 운하를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의 심정으로는 만약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운하만큼은 하지 않도록 사전에 조사와 연구를 통해 충분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단순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통령 선거가 한창일 때 운하토론장이나 강연장에 가면 청중들에게 "만약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운하를 추진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당선되더라도 운하만은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낙관적인 주장들이 우세했다고 기억됩니다. 약간이나마 안도하고 불안한 가슴을 달랬던 것 같습니다. 

 

연일 터지는 '운하폭탄'... 검증 완료됐다고?

 

 

상황이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가장 천천히 그리고 나중에 검토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운하폭탄이 연일 터지고 있습니다. 인수위가 설치되자마자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것은 '한반도 대운하'입니다. 마치 모든 검증이 완료되었고 이제 삽만 뜨면 된다고 하는군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운하는 두말 할 필요도 없고 금강의 충청운하, 영산강의 호남운하를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직후 곧바로 강행하겠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계획을 한번도 본 적도 없는 상황에서 졸지에 모든 내용은 검증되었다고 하니 기가 막힙니다.

 

사실 경부운하도 그 설계 계획이 제출된 바 없고 그저 지금까지 나온 내용은 구상정도에 불과합니다. 금강과 영산강은 지도에 선만 그려 놓은 것이 전부입니다. 비밀리에 무언가를 검토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운하의 설계 계획에 대해 발표된 바가 없습니다. 당연히 국민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한반도 대운하의 현재입니다.

 

그런데 모든 검증이 완료되었고 반대의견은 받아주지 않겠으며 2008년 국회에서 '운하 특별법'을 만들어 1년 후에는 첫 삽을 뜨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단히 우울합니다. 왜 제가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거나, 전화가 오면 '왜 가만히 있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습니다. 글도 쓰고 무언가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이미 다 얘기했고 책까지 발간했는데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사실 검증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무엇을 더 논해야 할 지 난감하기조차 합니다. 며칠 전에 오랫동안 물을 연구한 한 연구자는 '참으로 어이없는 이 난센스를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한탄하였습니다.

 

"운하는 토목건설이 아니라 정치로 만드는 것"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합니다. 운하 찬성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한 학자가 수질 기술사 모임의 초청으로 운하 발표를 했는데 수질 전문가인 기술사들이 이를 비판하자 그 학자는 "운하는 건설토목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치로 만드는 것이다"고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운하에 대해 가장 솔직한 속내를 보여준 것 같아 씁쓸합니다.

 

운하를 찬성하는 학자들은 오직 '이명박 대통령은 할 수 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신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해결해야 할 전문가들이 언론에 나와 고작 칭송과 찬양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를 속된말로 '난리 브루스를 춘다'고나 해야 할까요.

 

이명박 후보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은 "반대는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강행과 추진만이 있다"고 합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참으로 오만 불손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반대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이 의원은 얼마 되지 않는 과거의 사실을 기억할 지 궁금합니다.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는데 당선되고 나서 이를 추진하려고 할 때 왜 그렇게 반대했습니까. 이 의원의 말 그대로 옮기면, 국민이 공약을 보고 뽑았고 당선자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반대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17대 총선에서 과거의 열린우리당이 절대 다수당이 되었습니다. 국민이 그렇게 만들어준 것이지요. 그래서 사학법 등 4대 법률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당시 한나라당은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며 이를 막았습니다. 왜 반대했습니까. 야당일 때와 여당일 때는 다르다고 항변이라도 하시렵니까.

 

의견이 다르면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는 중요한 의견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설마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이렇듯 운하는 이미 운하로서 검토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변질되고 퇴색되고 말았습니다.

 

운하특별법의 아주 편리한 '불도저 셈법'

 

박승환 한나라당 의원은 '운하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운하는 추진될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정치를 하시는 분들의 사고는 대단히 편리합니다. 법만 만들면 모든 것이 해결되니까요. 법대로 안 되면 법을 만들어서까지 한다고 하니까 웃음이 절로 납니다.

 

운하 특별법을 만드는 목적은 간단합니다. 특별법을 만들면 일반법의 규제나 제약 조건이 모두 풀립니다. 이를 '의제처리'라고 합니다. 일반 법률에 의거하여 할 수 없는 행위제한에 대해 '한 것으로 치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특별법 조항을 만들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강에는 여러 법률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강으로 모두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상수원 공급과 홍수조절 역할이라는 두 가지의 대표적인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국민생활의 편익을 위한 것이지요.

 

여기에다 운하를 만들어 내륙주운 기능을 추가하겠다는 것이 운하 특별법의 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강들의 주요 취수지점들은 '상수원 보호 특별법'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식수원 공급이라는 공공의 목적, 모든 국민의 생명수를 보호하기 위해 이 법을 제정한 것이지요.

 

잘 알다시피 지역주민들의 불편과 불만 때문에 상당한 진통을 겪고서야 이 법들이 한강을 시작으로 제정되었습니다. 1999년에 한강 상수원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니까 아직 10년도 채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운하 특별법을 만들면 불가피하게 상수원 특별법과 충돌하게 됩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상수원 특별법의 근간이 흔들리고 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모든 국민의 식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특별법이 운하 특별법에 의해 무력화되거나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입니까.

 

'식수법'을 뭉개는 '운하특별법'

 

상식적으로 봐도 맞지 않습니다. 물은 생명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물류운송 수단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우리 국토 모든 곳에 도로나 철도가 있어야 하고 배가 다녀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반면 사람뿐만 아니라 숨 쉬고 있는 모든 생명에게 물은 필수입니다. 깨끗한 물은 모든 국민에게 필요하지만 운하는 모든 국민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바꾸시겠습니까. 모험이 그렇게도 필요합니까.

 

운하를 찬성하는 정치인이나 학자들의 주장을 보면 잦은 말 바꾸기가 계속됩니다. 국민을 현혹하는 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주장이 '근거 없고 틀리다'라고 지적하면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쉽게 넘어갑니다. 이런 모습들은 사실 이해도 갑니다. 정작 운하에 대해 잘 모르니 정확한 주장을 할 수도 없고 엇박자가 나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묵과할 수 없는 주장도 서슴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는 운하에서 사고 날 확률이 63빌딩에 비행기가 부딪칠 확률보다 낮다고 공개 토론장에서 당당히 주장했습니다. 참고로 1999년 독일 운하에서 한 해 동안 난 사고만 해도 500건이나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선박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이후 국감장에서 어느 의원이 사고 확률에 대해 사실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학자는 그 때 말한 사고는 독극물 사고라는 것입니다. 독극물 사고가 아닌 선박사고는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국감장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운하 건설비용은 세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순전히 '민자(민간자본)'로만 하겠다고 이명박 당선자가 후보시절에 누누이 밝혔습니다. 그런데 인수위 한반도 대운하 TF 장석효 팀장은 호남운하에 1조3000억 원, 충청운하에 1조2000억 원의 국가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벌써 주장이 달라진 것이죠. 아마도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그 때 말한 민자로 투자하겠다는 대상은 경부운하 구간이라고 말이죠. 어쩌면 앞의 독극물 사고 운운하는 학자의 논리와 이렇게도 일치할까요.

 

업자들에게 개발권 특혜? '경제성 없음' 시인한 셈

 

또한 운하 건설은 경제성이 높기 때문에 국내의 건설회사 뿐만 아니라 외국의 회사들도 참여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렇게도 경제성이 높으면 많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참여해야 하고 입찰경쟁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5개 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했다고 하나 사업성 보장은 여전히 의문입니다.

 

그래서 운하 건설에 참여한 업체들에게 운하 주변 개발권을 특혜로 준다는 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만, 그토록 운하가 경제성이 높은 사업인데 왜 다른 특혜를 준다는 것입니까. 이는 시장원리에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경제성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지요.

 

경부운하는 553㎞ 길이로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것입니다. 찬성 측의 구상을 보면 총 19개 갑문, 16개 댐, 6~9m의 수심, 200~300m의 수로 폭을 만들어야 합니다.

 

연결구간은 26㎞의 조령 터널을 뚫거나 또는 속리산 국립공원 300m 높이에 있는 계곡에 댐을 만들어 물을 채우고 인공수로를 만들겠다는 것이 대략의 구상입니다. 여기에다 한강과 낙동강에 있는 8억3000㎥의 모래골재를 파서 16조원의 사업비 중 8조원을 충당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강과 낙동강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강이 아닙니다. 강바닥은 수심과 수로 폭을 만들기 위해 온통 파헤쳐져야 하고 이와 관련 없는 지천의 강바닥도 골재를 채취하기 위해 모조리 파헤쳐야 합니다. 암반이 있는 지역도 많아 수중폭파는 기본입니다. 16개 댐을 만들면 평균 30㎞마다 강은 물길이 차단되고 거대한 콘크리트 욕조로 변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야만 2500~5000톤급 선박운행이 가능해집니다.

 

화물선박의 길이는 110m 이상으로 축구장 길이보다 더 길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행을 위해서는 심한 곡선구간은 직강화 시켜야 합니다. 또한 강을 직강화 시키면 상류에서 흘러오는 토사가 넘치기 때문에 강둑에서 강 중앙으로 긴 수제를 셀 수 없이 많이 설치하여 토사를 방지해야 합니다. 강은 완벽하게 인공적으로 둔갑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찬성 측 학자들은 모든 구간은 자연하천 그대로 이용하고 한강과 낙동강 연결구간인 40㎞만 인공적으로 만든다고 거침없이 주장합니다. 한강과 낙동강의 3%만 개조하면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한강과 낙동강의 폭은 현재 1㎞이기 때문에 300m의 운하 수로 폭은 별거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왜곡이 넘쳐 납니다. 한강을 보면 강폭이 1㎞가 넘는 구간은 팔당상수원지역과 서울 도심 통과 구간, 한강하류 구간이 해당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주부터 충주까지 대부분의 한강 상류 구간은 강폭이 1㎞가 되지 않습니다. 실제 강물이 있는 구간을 보면 300m도 채 안 되는 구간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간에서 300m 폭의 수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강물이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그 이상까지 파헤쳐서 수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구간에서의 수로는 강과 동일하거나 강 이외의 지역도 수로로 만들어야 합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먼저 현장을 찾아 조사하십시오. 그럴 시간이 없다고요. 그렇다면 구글에서라도 꼭 확인하십시오. 이외에도 운하와 관련된 거짓된 정보와 왜곡은 수두룩합니다. 앞으로도 논란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강물은 거꾸로 흐르지 않습니다

 

운하 건설 강행을 주장하는 분들께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고 대책수립도 어려운 '서해바다 기름유출사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바다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강의 운하와는 관련이 없다고 하시겠죠. 운하에서 유조선은 이중탱크로 만들고 여차하면 아예 다니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글쎄요. 그렇게 하면 가뜩이나 경제성이 없는 운하사업에 유조선을 다니지 못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문제는 유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반 선박도 사고가 발생하면 기름유출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기름은 선박의 연료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떤 학자는 천연가스로 가는 선박을 운행하면 된다고 또 주장을 했습니다. 말로야 뭐든지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더더욱 경제성이 없습니다.

 

왜 이토록 모순투성이인 운하를 고집하십니까. 혹시 경제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이를 해결할 전도사로 운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경제대통령께서 '운하=경제' 등식밖에는 없는 것인가요. 그러나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훨씬 값비싼 대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식수원이 오염되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운하 추진은 순조롭게 되지 않습니다. 사회적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대통령 재임기간은 5년이지만 강은 한반도에 우리 조상이 살기 이전부터 수만 년 동안 흘러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미래세대와 함께 흘러야 합니다. 아무도 이 강들을 개조하고 파괴시킬 권리를 우리에게 위임하지 않았습니다.

 

강물은 거꾸로 흐르지 않습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잘 헤아리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태그:#경부운하, #이명박운하, #박진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 생태지평 부소장입니다. http://ecoin.or.kr/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