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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증시가 열린 시각,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선 곡소리가 울렸다. 거래소 안쪽에 마련된 증시대동제 행사장에 걸린 '증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지만, 담 너머엔 '850만 비정규직을 살리는 것이 경제 살리기의 첫걸음이다'는 내용의 커다랗고 붉은 플래카드가 걸렸다.

 

첫 증시 개장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의 카메라는 행사장만을 향했다. 행사가 시작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막을 터트리고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카메라는 뒤돌아섰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2008년 시무식'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들의 '종무식'도 꽤나 거창했다. 2007년의 마지막 날, 이들은 오전 7시 30분부터 6시간 동안 서울 도심 5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고공농성을 벌였다. 언론은 영하의 날씨에 고공 30m의 CCTV 탑 위로 오른 이들을 오랜만에 카메라에 담았다. 회사도 "교섭하자"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모두가 연말분위기에 들떠 있던 그날 저녁, 회사는 "정규직화를 해줄 수 없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고 교섭은 깨졌다. 그리고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가운 길거리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비정규직은 차가운 거리에 있는데, 증시 개장식은 성대하게 치러지다니..."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2008년 시무식은 2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됐다. 이들을 비롯해, 증권산업노조, 이랜드 노동자 등 200여명은 코스콤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정문 앞에 모였다.

 

'2008년 증권선물시장 개장 경축'이라는 내용의 펼침막이 내걸린 증권선물거래소 건물을 뒤로하고 노동자들은 팔을 휘두르며 '비정규직 철폐가'를 불렀다. 누군가는 '차별철폐', '악덕기업 코스콤 퇴출', '위장도급 철폐' 등이라고 쓰인 관을 들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같이 갈 수 없으면 같이 죽자'는 내용의 검은 깃발을 들었다.

 

정용건 증권산업노조 위원장은 "누가 이런 축하장 앞에서 이러고 싶겠느냐"고 운을 뗐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고 했지만, 코스콤은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자본 시장 발전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또 "비정규직을 만들어놓고 침묵하고 있는 임기 말 참여정부를 주목하고 있다"며 "새 정부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멈추지 않고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유식 증권산업노조 코스콤 비정규직지부 대외협력국장은 "비정규직들은 비닐천막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데, 목전에서 증권선물시장 개장식과 증권시장이 활황 되길 기원하는 행사에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참석해 성대하게 치러진다"고 성토했다.

 

김 국장은 이어 "도대체 113일이 넘도록 권오규 부총리는 코스콤의 주무부서(장)으로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를 조속하게 해결해야 됨에도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850만 비정규직을 살리는 게 경제 살리기 첫걸음!"

 

 

같은 시각, 증권선물거래소에서는 2008년 증시개장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오전 10시부터는 증권선물거래소 후문 쪽 야외 행사장에서 2008 증시대동제가 이어졌다. 권오규 부총리 등 정관계 인사들과 증권선물업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행사장 담 너머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관과 검은 깃발을 들고 모였다. 이들은 '850만 비정규직을 살리는 것이 경제 살리기의 첫걸음이다'는 내용의 커다랗고 붉은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행사장에 마련된 '증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문구와 대비됐다.

 

이어 행사가 시작됐다. 권 부총리는 증시활황이라는 띠를 두른 황소에 꽃다발과 돈 모형을 걸었다. 이윽고 무대 뒤편으로 붉은색 화살표가 하늘로 치솟았고, 커다란 황금빛 황소 모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수가 이어졌다.

 

이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야유와 함께 연막을 터트렸고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하지만 그것들은 담을 지키고 있던 경찰과 용역을 넘지 못했다. 언론사 기자들은 잠깐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카메라를 비췄지만, 이내 돌아섰다.

 

권 부총리와 선물업계 관계들이 10여분 만에 행사를 끝내고 돌아가자, 행사장엔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구호만이 남았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해야"... 회사 쪽 "받아들일 수 없어, 다른 방법 찾아야"

 

파업 113일째, 이들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윤홍식 코스콤 홍보팀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만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코스코 비정규직 노조는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행정, 입법, 사법부가 모두 코스콤의 위장도급을 지적했다"며 "재경부는 코스콤이 비정규직 노조와 단체교섭과 정규직화에 적극 임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부는 지난 10월 코스콤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고, 국회 역시 횐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이 11월 국정감사 때 코스콤의 '위장 도급'을 지적했다. 또 12월 11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고용·임금 등에 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다면서도,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된 부분에는 코스콤이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사용자성이 있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태그:#코스콤, #코스콤 비정규직,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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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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