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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해 섣달 한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음악인생 50주년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큰 무대에서 이 시대 명인이 하는 공연엔 많은 사람이 몰렸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날 공연은 큰 실망을 안을 수밖에 없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명망에만 기댄 그리고 욕심만 드러낸 최악의 공연이었다.

 

우선 지적할 것은 주인공의 출연 빈도가 너무 낮았다는 것이다. 보통 개인 공연일 때 주인공이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만 우정출연이나 특별출연으로 메우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이날 공연은 주인공이 단 네 번 무대에 얼굴을 비췄고,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공연이 이어져 개인공연이 아니라 집단공연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더하여 사회자의 잔소리는 청중을 지치게 하였다. 국악 공연에 자리한 청중들은 국악에 대한 애정이 그 누구보다도 많을 터인데 “국악이 세계에 뻗어나가려면~”, “우리의 위대한 국악~” 등의 가르침을 연방 해대어 청중을 초등학생 대하듯 한 것이다. 사회자는 진행을 매끄럽게 하고, 출연자를 적절히 소개하는 것 이상의 욕심을 가지면 안 될 일이다.

 

이날 공연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지나친 욕심으로 공연시간이 3시간 20분을 기록한 것이다. 더구나 중간에 휴식시간도 없이 청중을 긴 시간 앉아 있도록 하니 그 지루함은 결국 청중이 자리를 뜰 수밖에 없도록 했다.

 

그뿐만 아니라 국악공연에 살풀이춤, 승무, 태평무, 진쇠춤 등 전통춤 4가지가 더해졌는데 승무 외에는 전통춤답지 못한 춤을 추었다. 특히 태평무와 진쇠춤은 궁중무용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진중한 몸짓이어야 하지만 건들건들 가볍게 추어 춤의 격을 한참 떨어뜨렸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많은 국악공연에서 느낀 것이지만 이날 공연은 음향에 문제가 있어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 시대 최고의 명창이라는 소리꾼 목소리가 명창답지 못하게 들렸다면 이는 큰 문제다. 그래서 작은 무대에서 마이크 없이 하는 공연이 우리 문화에 더 잘 맞다는 소리도 들린다.

 

한 가지 소리 공연에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사설이 있는 판소리, 민요, 정가 등의 공연에는 자막으로 사설을 보여줌으로써 훨씬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음이다. 내용을 모르면 그 소리가 제대로 감동을 전할 수 없다. 놀부의 심술을 알아야 웃을 수 있고, 심청의 애달픔을 알아야 같이 울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나는 또 하나의 주문을 곁들인다. 공연에는 제대로 된 연출이 필요하다.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할 것이 아니라 공연이 하나의 이야기로 승화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전문 연출가의 손을 빌릴 필요가 있다. 그런 뒤라면 막이 내려갈 때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기대할 수 있다.

 

한데 이런 주문들보다 더 큰 근본적인 바람이 하나 있다. 우리 문화는 서양 문화와 달리 공연하는 사람들이 청중과 떨어진 것이 아니라 청중과 하나되는 모습이다. 그래서 원래 우리에겐 마당놀이가 더 잘 맞는지 모른다. 우리 전통예술 공연이 큰 무대를 선호할 것이 아니라 작은 무대, 아니 마당 공연으로 눈을 돌려 청중과 하나되는 모습을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 청중과 함께 강강술래를 하면서 마무리를 한다면 좋을 일이다. 더하여 서양식 리셉션이나 뷔페식 뒤풀이가 아닌 우리식 시루떡 잔치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전통예술은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뛰어난 것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것이라도 적절히 포장을 하지 않는다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을 것이다. 과장된 포장이야 거짓에 불과하겠지만 적절한 포장은 청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또 그로써 전통예술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에 실린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국악, #전통문화 공연, #전통예술, #전통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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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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