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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17대 대통령 당선자의 핵심 키워드는 '경제'입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언론들은 앞다퉈 '이명박 경제(엠비노믹스, MBnomics)'를 풀어놓습니다. 기업들의 찬양일색의 논평이 줄을 잇고, 잠잠했던 부동산시장까지 꿈틀거립니다. <오마이뉴스>는 5회에 걸쳐 기업과 금융, 노동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전문가들과 함께 '이명박 경제'를 비판적으로 고찰해봅니다. 첫번째로 김상조 경제개혁연대소장(한성대 교수)의 글입니다. <편집자주>

대선이 싱겁게 끝났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쌍대를 이룬 이명박 후보의 '경제 살리기' 구호가 선거 결과를 일찌감치 결정지어버렸다.

 

그러면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이는 노무현 정부 평가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전망에서도 핵심적인 질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참 답답한 노릇이다. 진보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예정된 결과"라고 평가한다. 반면 보수진영은 "노무현 정부의 반시장적 규제가 경제 파탄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실패'라는 결과는 한 목소린데, 원인 진단은 지극히 모순적이다. 이래서야 평가고 전망이고 간에 탁상공론일 뿐이다.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노무현 대통령 본인의 레토릭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참여정부가 기업에 부과한 규제가 있긴 했나

 

먼저, 신자유주의를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하는 진보진영의 입장은 자기만족을 위한 대답일 수는 있으나 유권자들이 원하는 정답은 아니었다. 또한 "가면 쓴 신자유주의 정부가 명실상부한 신자유주의 정부로 바뀐 것뿐이다"며 이번 대선 패배의 의미를 축소⋅왜곡하는 태도로는 진보진영이 떠나간 대중의 마음을 되돌릴 수도 없다.

 

한편, 반시장적 규제를 원흉으로 지목한 보수진영의 주장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 점은 (19일 당선이 확정된 후 심리적 여유를 회복한) 이명박 당선자가 20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지난 10년간 기업에 대한 규제가 특별히 많아진 것은 아니다"고 솔직히 시인한 것에서도 입증된다.

 

따져보자.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기업에 대해 추가로 부과한 규제가 뭐가 있는가? 한국에서 이 문제를 가장 열심히 추적해온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2003년도에 국회를 통과한 증권집단소송제도 도입, 회계관련법 개정, 상속증여세의 포괄주의 도입뿐이다.

 

이들 개혁조치는 솔직히 노무현 정부의 성과라기보다는 김대중 정부의 공이다. 그런데 투명성 제고를 위한 이런 조치들을 '기업에 대한 규제'라고 부르는 보수진영의 천박성도 문제지만, 이 알량한 개혁조치들마저 후퇴시키는 데 급급했을 뿐인 노무현 정부가 좌파정권으로 불리는 것을 보면 그저 기가 막힌다.

 

분식회계에 대한 증권집단소송 제기를 2년간 유예하고, 법도 시행령도 아닌 감독규정을 바꾸어 과거분식에 대한 회계감리를 유예한 것은 어느 정부가 한 일인가?

 

출총제가 사실상 폐지되고 지주회사제도가 형해화한 것은 어느 정부 때 일인가? 이런 상황에서 "규제 천국에서 비자금은 정당방위다"고 주장한 어느 경제신문 논설위원의 칼럼은 한 마디로 언어도단이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가 실패한 이유... '밀면 밀리는 정부'였기 때문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도대체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만도 아니고 반시장적 규제 때문만도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경제정책의 원칙과 방향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수구 보수언론'과 '꼴통 좌파운동권'이 정부정책을 비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비판에 정부정책이 오락가락 흔들렸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노무현 정부는 '밀면 밀리는 정부'였다.

 

특히 법제도 집행의 공정성과 엄정성을 스스로 훼손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금감위와 검찰의 무혐의 처분,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 대통령의 특면사면은 지난 5년간 일상화된 모습이었다. 감독기구와 사법기구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경제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경기규칙(rule of game)이 오락가락하는데, 어느 선수(player)가 "결과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하겠는가? 심판을 매수하고 규칙을 바꾸는 데 온힘을 쏟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건 재벌도 노조도 매일반이다. 이래서는 시장경제 원리도 사회적 대타협의 원리도 작동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 원인은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도대체 우리가 잘못한 게 뭐냐"는 현 집권세력의 항변은 스스로의 무지와 무능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한편,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은 이명박 정부의 성공도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이명박 당선자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약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그거 반대할 사람 없다. 문제는 수단이 뭐냐는 것이다.

 

이명박식 기업 규제완화는 소수 재벌들만을 위한 것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공약, 특히 기업정책 공약은 규제완화로 요약된다. 그러나 규제완화가 오로지 소수의 재벌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금산분리 완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허용? 이게 삼성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특히 최근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고백한 삼성의 그 수많은 불법행위 대부분에 삼성생명, 삼성증권 등의 계열금융기관들이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그런 삼성에 은행까지 주겠다고 하면, 이명박 당선자는 삼성공화국의 5년짜리 고용사장을 자처하는 셈이 된다. 대-중소기업간의 상호협력은 고사하고 재벌들간의 견제시스템마저도 무너진 삼성공화국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누가 믿어주겠는가?

 

출총제 폐지? 순환출자 규제 반대? 지주회사제도 완화? 이게 투자 활성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로지 재벌총수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것임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국내재벌의 천민적 지배구조를 유지할 기형적 경영권 방어수단을 만들어주겠다고 하면서, 인수위 내에 특별 분과를 두어서라도 외국자본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겠다고 하면, 이게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경제환경이라고 누가 믿어주겠는가?

 

기초질서 확립? 법치주의 확립? 최근 삼성의 불법행위 의혹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던 이명박 당선자가 느닷없이 내세운 기초질서 확립 주장은 결국 노조의 불법파업은 엄단하겠다는 것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중대표소송제도 및 회사기회 유용 금지 등과 같이 지배주주의 사익추구행위에 책임을 묻는 상법상 사후규율제도의 도입에 대해서는 극구 반대하는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면, 이게 노사가 상호협력할 수 있는 공정한 경제환경이라고 누가 믿어주겠는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기업인이 5년 또는 10년 후를 내다보면서 경제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경제질서를 말한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 당선자의 기업정책 공약은,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한 것도 아니고 대-중소기업을 고루 위한 것도 아니라, 오로지 소수의 거대재벌만을 위한 것이라는 '확실한 예측(?)'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진정 성공한 경제대통령 되려면

 

이래서는 각 경제주체가 예측 가능한 경기규칙 하에서 장기적 안목의 경제활동을 하기보다는, 경기규칙 자체와 그 집행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갈등만을 부추길 개연성이 더 높다.

 

우리나라는 밑으로부터의 변화 에너지가 펄펄 끓어 넘치는 역동적 사회다. 즉 우리나라 국민들은 언제라도 "네가 뭔데? 대통령이면 다야?"라고 외칠 준비가 되어 있다.

 

재벌이든, 중소기업이든, 노조든, 언론이든, 시민사회든, 정부정책의 공정성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면 곧바로 정부정책에 비토권을 행사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실패한 근본 배경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당선자가 자신의 공약대로 경제정책을 끌고 가면 필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당선자가 진정 성공한 경제대통령이 되려면, 소수 재벌에만 좋은 경제환경이 아니라, 모든 기업에 공정한 그리고 모든 기업 이해관계자가 수긍할 수 있는 경제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간단한 원칙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이명박 정부는 말 그대로 보수정권이니 진보적 경제정책을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말이 안 된다. 그러나 공정한 법제도를 만들고 이를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은 바로 보수정권의 역사적 과제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명박 당선자의 이른바 '실용주의'가 이 기본 원칙마저 망각하고, 소수 재벌을 위한, 삼성공화국을 위한 기업정책을 끌고 간다면, 한국은 불행하게도 또 한 명의 실패한 대통령을 보게 될 것이다.


태그:#이명박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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