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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후보가 19일 저녁 여의도 한나라당 개표상황실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후보가 19일 저녁 여의도 한나라당 개표상황실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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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신당이 대패한 이유로 여러가지가 언급된다.

친노 인사들은 노무현 정부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조중동의 세뇌 공작에 진보 진영과 범여권마저 동참해 이 꼴이 났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이젠 이른바 노빠들 정도다.

(친노 세력들이 이번 대선 패배가 노무현 탓이 아님을 입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대통합민주신당을 나가 따로 당을 만들고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면 된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친노 정당은 승리할 것이며 특히 '난닝구'들이 없는 영남지역에서 압승을 거둘 것이다. 더구나 대통합신당에서 친노세력이 나가주기를 바라는 사람들 대단히 많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데 왜 탈당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번 대선 대패는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의 일등 공신은 노무현인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노무현의 잘못으로 지목되는 게 턱없는 오만이다. 하늘로부터 '100% 옳다'는 면허증이라도 받은 양 행동하고 끊임없이 같은 편을 분열시켰던 오만과 독선이 차떼기가 횡행했던 시절이라해도 당내 경선도 통과하지 못했을 흠집많은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까지 만들었다.

범여권이나 민주개혁진영의 재야원로니 시민단체 인사니 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이런 오만을 꾸짖기는커녕 되레 부화뇌동하다가 같이 망하게 됐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된 지 이틀만에 어째 이명박 당선자 쪽이 보이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노 대통령과 속칭 '탄돌이'들에게서 수없이 볼 수 있었던 그 오만이 비디오 틀어놓은 듯 똑같이 재연되고 있다.

21일 한나라당은 당권·대권 재분리 검토론으로 벌집 쑤신듯 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극복한다며 당 개혁 차원에서 마련한 당권·대권 분리를 없던 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선대위 상임고문을 지낸 박희태 의원은 21일 PBC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와 당을 분리하고 평당원으로 있다가 탈당을 해서 국정혼란이 온 것"이라고 당·청 일체론을 주장했다.

지난 2005년 11월 개정된 한나라당 당헌·당규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 동안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무슨 화려한 언변으로 당·청 일체론을 합리화한다고 해도 결국 내년 4월 총선 때 이명박 당선자가 공천권을 행사해 당을 확실하게 독식하겠다는 뜻이다. 경선 때 갈등했지만 대선 때는 이 후보를 도왔던 박근혜 전 대표를 토사구팽하겠다는 것이다. 이전에 이명박 당선자의 최측근 가운데 하나인 이재오 의원은 대선 끝나고 나면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선 첫 일성 겸손 강조하더니...

BBK특검은 광운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이명박 당선자 스스로가 받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대선이 끝나자 마자 청와대가 BBK특검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허위사실로 흑색선전을 일삼는 정치인들은 정치권에서 반드시 퇴출시키고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관련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BBK 의혹은 이명박 후보가 자초했다. 자기 입으로 BBK를 설립했다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와 광운대 동영상이 있어 의문이 커졌다. 더구나 BBK나 도곡동 땅과 관련한 의혹은 한나라당 경선 때 박근혜 쪽에서 강력하게 제기한 것이다.

자기 내부의 당내 경선에서 논란이 되어서 이 지경까지 오게 된 문제인데 "흑색선전 일삼는 정치인을 퇴출시키겠다"고 협박하는 게 한나라당이다. 혹시 박근혜라는 '흑색선전 정치인'을 축출하기 위해서 당·청 일체론을 내놓은 것인가?

한나라당은 대운하 특별법을 18대 국회에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대운하를 일사천리로 진행하기 위한 것이다. 대운하와 관련해서는 한나라당 내부에서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이 무조건 대운하를 불도저로 밀어붙이듯 추진하라는 '신탁'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면 대략 '오버'한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승자가 된 첫 소감으로 "국민들의 위대한 힘을 발견했다, 저는 국민들에게 매우 겸손한 자세, 매우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며 "저와 함께 최선을 다해주신 정동영·이회창·문국현·이인제·권영길 후보 모두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 분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겸손 모드'를 보인지 불과 이틀만에 '오만 모드'로 돌변했다.

어차피 권력은 나누기 어렵다. 승자 독식이다. 그러나 맛있는 식사를 독식할 권리를 받았더라도 그래도 밥 먹기 전에 최소한 냉수 한 컵이라도 마시는 법이다. 역대 정권들 모두 오만하다는 딱지가 붙었지만 그래도 정권 출범 몇달은 지나서였다.

이명박의 오만을 확인하는 것은 범여권의 행운?

이명박 당선자 쪽의 오만의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이후 530여만표라는 최다 득표차로 이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전에는 총선이 정권 중간 쯤 있어 중간 평가를 거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총선이 내년 4월로 코 앞인데다 이번 대선 압승의 여세를 몰아 잘하면 개헌선까지 넘볼 수 있다. 눈에 뵈는 게 없고 앞에 거칠 게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의 절대 득표수 자체는 1149만2389표로 16대 대선 때 이회창 후보가 얻었던 1144만3297표보다 크게 증가한 것도 아니다. 16대 때 노무현 후보는 1201만4277표를 얻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16대 대선 때 득표율이 48.9%였고 당시 투표율은 70.8%였다.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당선자의 득표율은 48.7%이고 투표율 62.9%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역사상 가장 낮았는데 노무현 정권에게 크게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숱한 문제가 있는 이명박 후보를 찍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던 탓이다.

이런 소리를 패배한 쪽의 어이없는 푸념이나 트집잡기로 생각하는 것은 이명박 당선자 쪽의 자유다. 솔직히 말하면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이른바 범여권 쪽에는 꼭 마이너스가 되는 것도 아니다.

범여권이 망한 이유가 오만이었던 탓에 상대방의 오만을 확인하는 것은 정치공학적으로 따지면 플러스다.

노무현 정권이 망하게 된 이유는 오만에서 비롯된 지지층에 대한 끝없는 배신 행위 때문이다. 그들은 지지층이 언제까지나 자신을 찍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재보선에서 연전연패한 뒤에도 "그래도 최후의 결선인 대선에 가면 지지층이 결집할 것"이라고 오판했다.

당청 일체론으로 한나라당이 왁자지껄하고 이재오 의원이 이전에 말했던 수도권 신당론이 현실화되고, 대운하 밀어붙이기가 강행된다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원인은 "BBK와 도곡동 땅 의혹 ·위장전입 등 수많은 악재가 있었지만 그래도 경제 하나면 아무 문제 없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믿는 오만일 것이다.

노무현은 이명박의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한 인터넷 댓글이 그럴 듯하게 들린다. 노무현은 이명박의 예고편에 불과하니, 노무현의 본 편인 이명박 집권기간은 얼마나 짜릿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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