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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하고 DVD도 탑시다." 호주선관위 캠페인.
 "투표하고 DVD도 탑시다." 호주선관위 캠페인.
ⓒ 호주선관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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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에 실시된 2007년 호주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했다. 노동당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아주 활기차게 개혁을 실시하고 있다. 교토의정서 서명, 악법으로 비판받은 노사관계법 개정 착수, 노숙자와 공립학교 챙기기 등의 업무를 시작했다.

새로 취임한 캐빈 러드 총리(50)가 존 하워드 전임총리(68)보다 젊어서인지 힘이 넘쳐 보인다. 그런데 그 힘의 원천이 오직 젊음뿐일까? 아니다. 대다수 시민의 선거 참여가 노동당의 승리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95%에 가까운 높은 투표율에서 나오는 힘이다. 국민 대부분의 의사가 반영된 선거결과이기 때문에, 야당도 비판과 견제를 할 뿐 생떼를 쓰거나 딴죽을 걸지 못한다.

그런데 군사독제국가도 아닌 호주에서 어떻게 95%의 투표율이 가능할까? 호주 젊은이들은 투표 말고는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 젊은 층이 함께하지 않으면 95%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높은 투표율이기 때문이다.

 시드니 투표장의 젊은이들.
 시드니 투표장의 젊은이들.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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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젊은이들은 심심한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호주 젊은이들도 투표장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럭비를 하거나 서핑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법으로 정해져 있어, 항상 토요일에 실시되는 투표 때문에 주말을 망친다고 투덜거리면서.

한국 대선을 앞두고 기자는 호주선거관리위원회(The Australian Electoral Commission)에 전화를 걸어서 3주 전에 실시된 호주총선의 투표율을 물어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아직 최종집계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과거의 투표율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 총선은 3년마다 실시되는데 2001년에는 94.85%, 2004년에는 94.32%를 기록했다."

내친김에 20~30대의 투표율도 물어보았다. "호주의 경우 18세 이상의 시민권자는 의무적으로 투표를 해야 하는데, 20~30대의 투표율이 전체 평균에 약간 못 미치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는 답변을 듣고 기자는 깜짝 놀랐다.

 선거를 풍자하면서 상대에게 먹칠하기 게임을 즐기는 호주 젊은이들.
 선거를 풍자하면서 상대에게 먹칠하기 게임을 즐기는 호주 젊은이들.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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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소 앞에서 중국계 어린이에게 지구의 온난화로 북극이 녹아내린다는 걸 설명하는 호주 젊은이들.
 투표소 앞에서 중국계 어린이에게 지구의 온난화로 북극이 녹아내린다는 걸 설명하는 호주 젊은이들.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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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방망이 같은 강제투표제도... "자율권 침해" 비판도

도대체 그 비결이 뭘까? 요술방망이라도 갖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요술방망이 같은 건 당연히 없고, 강제투표제도(compulsory voting system)라는 조금 낯선 선거제도가 호주 젊은이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18세 이상의 국민이 합당한 사유 없이 투표에 불참하면 벌금을 내야하는 강제투표제도. 가끔 "기권도 하나의 정치행위이기 때문에 자율권 침해"라는 항의가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투표불참으로 인한 벌금액수는 20호주달러(약 16000원)다. 그런데 이 금액을 기한 내에 내지 않으면 벌금이 계속 추가된다. 게다가 법정비용도 그에 추가되며 심한 경우엔 감옥에 가는 사람도 있다.

기자가 2006년 7월 호주선관위 브라이언 할레트 부위원장을 인터뷰하면서 "기권했다고 감옥까지 보내는 건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브라이언 할레트 부위원장은 "호주선관위엔 아무런 견해가 없다, 다만 의회에서 만든 법대로 고발하면 판사가 판결할 뿐"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이어서 "호주선관위가 처벌만 하는 건 아니다, 사정이 있는 사람이 사전에 투표할 수 있도록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서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동투표소(Mobile polling)도 호주선관위가 창안한 성공사례다, 양로원과 병원, 독립가옥이 있는 오지는 물론이고 감옥에까지 이동투표소가 설치된 차량을 몰고 찾아간다, 호주에선 5년형 미만의 죄수들에게도 투표권이 있다"고 덧붙였다.

 엄마와 함께 선거운동 중인 토니 타운젠드(18).
 엄마와 함께 선거운동 중인 토니 타운젠드(18).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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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82년 전 세계 최초로 전국 단위 강제투표제 도입... 32개국에서 실시

1901년 6개 식민지 국가에서 하나의 연방국가로 탄생한 호주는 도무지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국민들을 투표장으로 끌어 모으기 위해서 궁여지책으로 강제투표제를 채택했다.

1925년 총선에서 전국 단위로는 세계 최초로 강제투표제도를 실시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03년 첫 연방선거의 투표율이 46.8%이었던 것과 달리, 법을 도입한 후 실시한 1925년 연방선거에서는 91.3%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렇듯 82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호주의 강제투표제도는 현재 32개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선거제도다. 그중 19개국은 모든 선거에 적용하고, 나머지 13개 국가(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는 일부 선거에만 적용한다.

그러나 호주의 강제투표제도가 크게 성공했음에도 정당성 논란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그래서 호주선관위는 1996년에 <뉴스 폴>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서 강제투표제도에 관한 국민의 뜻을 물어봤다. 결과는 74%가 찬성했다. 그걸로 논란은 끝났다.

호주 젊은이들의 정치성향은?

 지난 총선에서 하워드 당시 총리에 대한 젊은 층의 지지도가 낮다는 사실을 보도한 <시드니모닝헤럴드>(붉은 색이 노동당 지지).
 지난 총선에서 하워드 당시 총리에 대한 젊은 층의 지지도가 낮다는 사실을 보도한 <시드니모닝헤럴드>(붉은 색이 노동당 지지).
ⓒ <시드니모닝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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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4일에 실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주 젊은이들의 정치성향은 대체로 진보적이다. 18~29세의 73%가 진보정당인 노동당을 지지한 반면 보수정당인 자유-국민 연립당(아래 연립당) 지지는 27%에 그쳤다. 반면 55세 이상은 노동당 49%, 연립당 51%의 지지율을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2007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집권당이었던 연립당 정부는 처음으로 투표를 하는 18세 젊은이들이 선거인 명부에 100% 등록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연립당은 펄쩍 뛰며 부인했지만, 노동당에서 "존 하워드 정부가 18세 유권자의 선거참여를 방해하기 위해서 교묘하게 등록 마감일을 정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호주에서도 선거 당일 날씨가 투표율에 영향을 끼친다. 날씨가 좋으면 젊은이들이 야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 투표율이 낮아지는 것. 반면에 날씨가 나쁘면 노동당이 불리하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오래 전 얘기지만, 노동당을 주로 지지하는 노동자와 서민은 정치의식이 낮고 자동차 보유율도 낮아서 비를 맞으며 먼 투표장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투표일 오후에 열리는 토요럭비 때문에 젊은 층과 노동자의 투표율이 낮아진다는 호주선관위의 지적이 나오자 방송사가 선거 당일엔 럭비중계를 자제하고 있다.

 잘 생긴 검둥이도 선거운동 중.
 잘 생긴 검둥이도 선거운동 중.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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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강제투표제도 검토할 시점

개인의 자유의지(free will)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현대인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일정한 영역 안에서 강제력을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동체'가 국가다. 그 공동체의 구성원은 국민, 즉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 또는 집단 전체다.

그렇다면 국가의 강제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회계약설에 의하면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쓰여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스스로 계약을 맺어 국가를 구성했다는 시각이다.

독점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국민(선거를 통한 선택)으로부터 나온다는 뜻이다. 국가가 개인뿐 아니라 단체에도 복종을 강요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호주의 강제투표제도도 그런 배경에서 생겨났다.

그런데 한국과 호주의 투표율이 그토록 크게 차이나는 이유는 뭘까? 한국의 '정치 무관심'과 호주의 '정치 과잉'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어떤 측면에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한국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대선이 실시되고 있는 지금 강제투표제도를 한번쯤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미래를 위해서 투표하자'는 선거홍보물이 보인다.
 '미래를 위해서 투표하자'는 선거홍보물이 보인다.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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