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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박옥자씨의 허락하에 취재기자가 시각장애인의 시점에서 작성한 기사입니다. - 기자 주

오전 9시, 활동보조인이 집으로 왔다. 오늘은 과천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활동보조인과 함께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 지하철 4호선을 타고 경마공원역에 내렸다.

야외활동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시신경 위축으로 빛만 겨우 감지하는 터라 같이 다녀줄 사람이 없으면 멀리 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에 활동보조 지원을 받게 되면서 외출이 자유로워져서 매우 흐뭇하다.

경마공원역에 도착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다른 때 같으면 친구가 인천까지 와서 나를 데리고 이동해야 했을 텐데, 활동보조인이 함께 나오니 참 좋다며 친구가 반색한다.

'사각사각' 낙엽을 밟다

경마공원의 말가족 경마공원은 '경마=도박'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말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가족공원의 면모를 보여준다.
▲ 경마공원의 말가족 경마공원은 '경마=도박'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말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가족공원의 면모를 보여준다.
ⓒ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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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 입동은 지났지만 바람이 차갑지 않으니 아직 가을의 느낌이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친구와 나란히 걸으며 경마공원으로 들어섰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사각사각' 낙엽 밟히는 소리가 기분 좋게 만든다.

"와~! 예쁘다. 빨간색과 노란색이 섞인 색이야,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풍 색깔이야~."

친구가 둥글고 납작한 낙엽을 하나 주워서 내게 건네주었다. 즐거운 감정이 잔뜩 실린 목소리로 단풍의 색깔을 칭찬하는 걸 듣노라니 마치 내가 단풍잎을 보고 있는 듯 덩달아 기분이 즐거워진다.

걸으면서 친구가 활동보조인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활동보조인은 외출 동행은 물론 집안일까지 도와주는데, 한 달에 최대 80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다. 동사무소에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를 신청하면 보건소에서 장애유형별로 인적조사를 하러 나온다. 장애의 정도에 따라 배당되는 시간은 달라진다.

활동보조인 지원제도는 원래 월 4만 원의 본인부담금이 있는 유료지원제도였다. 그러다가 최근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는 무료로 지원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내가 활동보조인 제도를 이용하는 것을 보고 주변 시각장애 친구들도 어떻게 하면 활동보조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내게 종종 묻곤 한다.

하지만 선정 기준이 너무 엄격해 원하는 시간만큼 활동보조를 지원받는 것이 쉽지 않다. 신청하고도 탈락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한다. 선정 기준을 좀 완화해서 좀 더 많은 이들이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경주마에 올라타 "이랴~"

 승마체험장에서의 박옥자씨
 승마체험장에서의 박옥자씨
ⓒ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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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가 이뤄지는 경기장 아래로 뚫린 터널을 통해 공원으로 접어들었다. 경마공원은 경마가 없는 날이라 그런지 매우 한적한 느낌이었다. 말 달리는 소리도 듣고 마권도 한 번 사볼까 했는데 조금 아쉬웠다.

보통 경마라고 하면 도박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경마공원은 가족공원이란 인상을 주었다. 말 모양의 가족 캐릭터도 있고,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와서 만들어 놓은 듯한 허수아비들도 곳곳에 여러 개씩 세워져 있었다. '재잘재잘' 소풍 온 유치원 아이들이 우르르 우리 옆을 지나가기도 했다.

먼저 경마·승마 체험관에 가보기로 했다. 움직이는 말 모형을 타볼 수 있는 곳이다. 아동용의 걷는 말과 어른용의 달리는 말이 있는데, 나는 겁이 나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타기로 했다.

예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 말을 타본 적이 있었다. 겁이 나 매우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모형 말에 올라타니, 말이 '달그락 달그락' 움직이기 시작한다. 친구가 내 앞으로 말이 걸어가는 화면이 나온다고 얘기해줬다. 체험관의 말은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터라 직접 말을 탔을 때보다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긴장했던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옆에서 친구는 경주마에 올라탔다. 소리만으로도 움직임이 얼마나 강한지 알 것 같았다. 모형 경주마 앞에서는 정말 경주하는 느낌이 들도록 여러 마리의 말과 함께 달리는 화면이 나온단다. 말 달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집 도배 문제 때문에 남편을 집에 남겨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남편이 함께 왔다면 지금쯤 말을 타며 매우 신나했을 텐데 말이다.

진짜 말 같은 '토피어리'

말과 여인 토피어리
 말과 여인 토피어리
ⓒ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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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관을 나와 조금 걸으니 장미원이 나왔다. 입동을 지났는데도 노란 장미, 빨간 장미, 하얀 장미들이 꿋꿋이 살아 있었다. 장미꽃을 살짝 만져보았는데, 마치 아기 손처럼 연약하고 부드러워서 기분이 좋았다. 너무 약해서 내가 만지다가 혹시 상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밖에도 다양한 들꽃과 토피어리(잔디 인형)로 꾸며진 여러 개의 미니 정원이 있었다. 정원에 가까이 다가가니 은은한 꽃향기가 난다. 자연의 풀냄새와 꽃향기는 언제 맡아도 기분이 좋다.

이곳에서 말 토피어리를 보았다. 실제 크기의 말 모형에 잔디를 입혀놓은 모양이었다. 머리부터 등, 엉덩이와 꼬리까지 쓰다듬어 보았는데, 어찌나 생생한지 진짜 말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승마체험관에서 타보았던 플라스틱 말보다 느낌이 훨씬 좋았다.

물동이를 머리에 인 여인 토피어리와, 예복을 입은 소년 소녀 토피어리도 있었다. 소년 토피어리의 상의에는 꽃도 장식돼 있단다.

"이건 딱 우리 신랑이랑 나인데!"
"하하하."


나의 농담으로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결혼 15년차 부부지만, 친구들은 우리 부부를 닭살커플이라 부른다.

"뭐, 사실 난 잘 모르겠지만 남들이…. 하하하."

뭘 좀 먹을까 해서 매점을 찾았는데, 경마 없는 날이라고 매점도 쉬는 모양이다. 경마 없는 날 가족공원이 문을 열었으니 매점도 한 두 곳 정도는 영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 배고파!

말로 꾸며진 '마리네 집'

소원나무 소원을 적은 여러마리의 말들이 소원나무에 걸려 있다.
▲ 소원나무 소원을 적은 여러마리의 말들이 소원나무에 걸려 있다.
ⓒ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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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박물관 - 하절기(3월∼10월) : 09:00 - 18:00  
- 동절기(11월~2월) : 09:00 - 17:00  
 관람료 : 무료
▲ 마사박물관 - 하절기(3월∼10월) : 09:00 - 18:00 - 동절기(11월~2월) : 09:00 - 17:00 관람료 : 무료
ⓒ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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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마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마사박물관 입구에는 소원나무가 하나 서 있었다. 각자 소원을 적은 말 모양의 종이가 나무 가지가지마다 매달려 있었다. '철이와 영희 사랑 영원히~',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등 사랑과 행복을 적은 소원부터 '주식 왕창 오르게', '로또 1등 당첨' 같은 금전적인 소원까지 재밌는 이야기들이 소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마사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리네 집'이었다. 거실 TV에선 말을 주제로 한 영화 '각설탕'이 상영되고, 거실 벽면엔 말 그림 커튼이 드리워 있다. 소파 위에 놓인 쿠션의 무늬 역시 말 그림이다. 유리 장식장 안에는 금박과 큐빅으로 장식된 화려한 호박마차 모형을 비롯해 라이터·목걸이·도장 등 말 그림이 새겨진 각종 액세서리가 진열돼 있었다. 심지어 승마운동기까지 놓여 있다. 방으로 들어가니 아이들이 타고 놀 수 있는 목마가 눈에 띈다. 그리고 말 그림이 그려진 이불과 말 인형이 침대 위를 장식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을 테마로 꾸며진 집이다.

마사박물관을 나서며 소원 나무에 내 소원을 걸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해주세요!" 오늘 경마공원에 와서 이것저것 만져보며 말타기 체험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낙엽 쌓인 길을 걸은 것, 모두 예쁜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남편과 함께 오지 못했다는 것 정도? 하하하.

덧붙이는 글 | 시각장애인 잡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 12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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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도서관 기획홍보팀에 근무하며 시각장애인에 대한 기사를 주로 작성해왔으며.이후 교육업체 및 기업 홍보를 담당하며 알게 된 지인들을 통해 도움이 될만한 교육 소식을 취재하여 종종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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