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솔직히 말해 한국노총의 지지를 얻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이명박 후보의 말이다. 한국노총이 대선에서 이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해서다. 그랬다. 이 후보로선 예상 못했던 지지다. 축복을 보낼 게 당연하다. 이미 한국노총에 노사 상생을 들먹이며 함께 경제를 살리자고 부추겼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노동운동의 자기 정체성 부정"으로 평가했다. 더 신랄한 비판은 이회창 후보 쪽에서 나왔다. 한국노총이 "과거 노조를 탄압한 경력이 있는 이명박을 지지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요 어불성설"이란다.

 

이회창조차 '자가 당착'으로 비판하는 한국노총

 

물론, 이명박의 과거를 새삼 들먹일 생각은 없다. 과거를 덮자는 윤똑똑이들에 동의해서가 결코 아니다.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는 사람들과 더 소통하고 싶어서다. 이명박이 노동 현실을 바라보는 눈은 산별노조 움직임에서 또렷하게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산별교섭은 그동안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았다. 노조는 사용자에게 부담스러운 각종 의제를 들고 나왔고 이중교섭이나 이중파업을 해왔다."


이어 대기업 노조를 정조준했다. 중소기업 노동자와 대기업 노동자 사이를 교묘하게 분열시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대기업 노조의 집단적 이기주의가 수천 개가 넘는 중소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하고 있다. 구시대적 노사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생존권적 노동운동은 최대한 보장하고 지원하되, 대기업노조의 불법적인 정치파업에 대해서는 즉각적이고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서 바로 잡겠다."


얼핏 중소기업을 걱정하는 듯하지만 논점은 분명하다. 대기업 노조의 불법 정치파업에 법집행을 엄정히 하겠다는 뜻이다. 한국노총으로선 민주노총과 경쟁관계를 의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찬찬히 톺아볼 일이다. 대기업 노조의 '집단적 이기주의'를 비난한 이명박이 곧장 과녁으로 삼은 '불법 정치파업'이란 게 대체 무엇일까.


대기업 노조, 곧 민주노총이 자신들의 '이기주의'를 벗어나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비롯해 공공적 요구에 나설 때를 이른다. 앞뒤 모순이 선명한 이명박의 노동'정책'은 철저한 법집행을 내세워 민주노총을 탄압하겠다는 의도임에 틀림없다. 과연 그런 상황이 한국노총에 이로울까. 아니면 중소기업에 이로울까.


한국노총이 아직도 '노총'이라는 이름을 쓴다면 냉철한 성찰을 권한다. 한국노총이 이명박 지지를 공식화할 준비를 할 때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대사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스웨덴 대사는 "노조 조직률이 높아지면 경제부담이 커진다는 오해가 있는데, 오히려 산업계에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산별 노사 사이에 협약이 지켜지고 그것이 경제문제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스웨덴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주장이다. 산별 교섭을 바라보는 이명박의 시각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명박과 스웨덴 대사의 너무나 큰 시각차
 
굳이 스웨덴 대사의 말을 인용한 까닭은 더 있다. 한국노총의 존재 이유를 묻고 싶어서다. 현재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기껏해야 12% 수준이다. 그 가운데 얼추 절반은 한국노총이다. 바로 그 한국노총이 이명박 지지를 공식화했다. 어찌 한국노총을 애도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래서다. 오래전부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단결을 촉구해왔지만, 그것이 과오였음을 절감한다. 과연 뿌리는 중요하다. 한국노총 내부의 온전한 노동조합들에 묻는 까닭이다. 아직도 한국노총에 남아 모색할 일이 있는가. 


민주노총 또한 한국노총 내부의 건강한 노동조합과 연대를 적극 구상할 때다. 물론, 여기에는 민주노총 자신의 거듭나기가 전제돼야 옳다. 한국노총의 이명박 지지가 노동운동 전반을 아래로부터 재구성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면, 차라리 잘 된 일이다. 한국노총을 애도하되 결코 애도만 할 일은 아닌 까닭이다.


태그:#한국노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