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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간 숨 가쁘게 진행된 검찰의 BBK 수사는 일단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검찰이 5일 이 후보의 주가 조작 및 다스·BBK 실소유 의혹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대선 게임'이 끝났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지난달 김경준씨의 송환과 함께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될 때만 해도 검찰이 최종발표를 할 때 '정치적 줄타기'를 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많았다. 지난 8월 이 후보의 차명재산으로 의심받았던 도곡동 땅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큰형 이상은씨 지분은 제3자의 차명재산으로 보인다"는 표현으로 한나라당 경선을 혼전으로 밀어 넣은 전력도 이 같은 예상을 뒷받침했다.

 

그랬던 검찰이 이번에는 이 후보에 대한 무혐의 결정으로 완벽한 '면죄부'를 선물했다. 반(反)한나라당 진영의 'BBK 특검' 압박도 큰 흐름을 바꾸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검찰이 '편파 판정'이라는 논란을 무릅쓰고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경준, 검찰조사에서 'BBK 실소유자'라고 진술했나?

 

검찰 관계자들은 "김경준과 정치권은 이 후보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물증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이 '지지율 1위' 후보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얘기를 흘릴 경우 대선이 끝난 후에도 정치 공방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판단을 검찰 스스로 내린 것으로 봐야 한다. 최악의 경우 'BBK 특검'이 현실화되더라도 특검이 복잡한 금융사건을 다뤄야 하는 만큼 검찰 이상의 성과물을 내놓을 수 없다는 자신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의 주가조작 혐의는 "김경준씨가 이 후보와의 합작을 중단한 뒤 벌인 단독범행"이라는 관측이 우세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큰 쟁점이 될 수 없었다.

 

'BBK 실소유주' 논란은 김경준씨가 이 후보의 도장이 찍힌 '한글 이면계약서'를 제출하며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이 됐지만, 검찰은 "김씨가 조사과정에서 수시로 말을 바꿨고 급기야 '이면계약서는 작성일자(2000년 2월)보다 1년여 뒤에 만들었다'는 말까지 했다"고 밝혔다.

 

▲ 계약서 작성 시점에 창투사 e캐피탈이 BBK 지분을 가지고 있었던 점 ▲ "김씨의 부인 이보라씨가 이 후보의 도장이 찍혀있는 문건을 주며 '이와 똑같은 도장을 새겨오라'고 지시했다"는 당시 직원의 진술 ▲ 이면계약서의 것과 동일한 도장이 찍힌 서류가 2000년 9월 이후 발견되지 않은 점 ▲ 이면계약서의 허술한 서식 등도 김씨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렸다.

 

김씨 스스로 BBK의 실소유자임을 시인했다면 '자살골'이 된 셈이지만, 김씨가 검찰 발표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어 사태 추이를 좀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이회창 후보의 김정술 법률지원단장이 이날 오후 김씨를 접견했는데, 김씨는 그에게 "검찰의 추궁에 소극적으로 시인해 준 것"이라며 검찰 발표와 어긋난 진술을 했다고 한다.

 

다스의 경우 "이 후보의 소유라는 증거가 없다"(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김 차장은 "법인 명의로 개설된 모든 계좌와 9년치의 회계장부,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연결계좌가 있으면 끝까지 추적했지만 이 후보에게 돈이 건너간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최재경 특수1부장은 자신감에 찬 어조로 "이 사건을 97% 이상 복원해냈다"고 말했지만 검찰 발표 곳곳에 허점이 엿보인다.

 

다스가 BBK에 투자한 190억원의 진실은?

 

한 수사검사는 "자금 추적은 100% 되어 있다. 시간만 준다면 계좌 흐름을 확인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검사는 김경준씨가 e캐피탈로부터 BBK 지분을 매입한 대금의 출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100% 추적된 자금 흐름'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경준씨는 2000년 3월9일까지 e캐피탈에 28억1416만6700원을 지불하고 BBK 지분 95%를 사들였다. 김씨는 창투사 D사의 투자금으로 이를 메웠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스 투자금이 유입됐을 가능성에 대해 검찰은 말끝을 흐렸다.

 

- D사로부터 받은 돈은 또 어떻게 갚았나?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돈으로 MAF 주식을 샀다가 연말에 (주식을) 매각한 대금으로 갚았다."

- 같은 해 6월까지 다스의 투자금 50억원이 BBK에 입금됐는데, 이 돈이 그쪽으로 흘러간 흔적은 찾지 못했나?
"여러 자금이 섞였기 때문에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다스의 실소유주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할 만큼 했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지만 일반인의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아직 많다.

 

김홍일 차장은 "당시 다스에 상당한 투자 여력이 있어 적당한 투자처를 찾던 중 김씨의 투자설득을 듣고 이사회 등 내부결정을 거쳐 투자결정이 이뤄졌음이 객관적 증거에 의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다스의 BBK 총투자금 190억원의 출처가 모두 회사대금이었다는 얘기인데,  "30% 연수익을 올려주겠다"는 30대 재미교포의 말만 듣고 그해 수익(31억)의 6배에 달하는 돈을 맡긴 경위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김 차장은 "다스가 투자를 결정할 때 어느 정도의 여유 돈이 있었냐"는 물음에 "수백억원이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며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김경준 메모' 여전히 논란... 누가 먼저 형량 경감협상을 벌였나?

 

김경준씨의 부인이 다스에 투자를 권유하기 위해 경주(다스 본사가 있는 곳 - 필자 주)를 방문한 것이 2000년 2월말. 같은 달 18일 이 후보와 김씨가 LKe뱅크를 공동 설립했는데, 이 후보가 자신의 인척들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으려는 동업자를 위해 아무런 편의도 제공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다.

 

김씨 부인은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에서 "다스의 경영자는 작년 4월14일 미 법원 소송에서 '2000~2001년에 다스는 누가 BBK를 운영하는지 알지 못했고, 투자를 하기 전에 BBK의 주주와 임원진이 누구인지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조사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설명 없이 "다스의 경영자가 이사회의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BBK에 투자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결론 내렸다.

 

검찰이 ▲ 이장춘 전 대사가 받았다는 'BBK 명함' ▲ BBK 소유를 암시하는 내용의 이 후보 인터뷰들 ▲ 김경준과 이명박이 처음 만난 시점 등에 대해 아예 조사하지 않은 것도 찜찜한 대목이다.

 

김 차장은 "그런 걸 왜 조사하나? BBK 실소유자 문제를 명확히 확인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더 이상 수사할 필요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검찰이 먼저 '딜'(형량 경감 협상 - 필자 주)을 제의했다"는 '김경준 메모'도 명쾌한 마무리가 필요한 사안이다.

 

검찰은 "김씨가 오히려 '딜'을 제의했고 김씨 자신이 자기 생각을 얘기했다고 하더라"며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지만, 김씨는 "수사 과정에서 메모에 적힌 바와 같이 검찰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았다"며 이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김씨가 11월23일 작성했다는 메모에는 "다스와는 무혐의로 처리해준대"라는 내용이 들어있는데, 김씨가 다스에 돌려주지 않은 투자금 140억원에 대해 검찰은 공교롭게도 "돌려주지 못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처음부터 다스를 속이려는 의도가 없었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연초에도 검사가 피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거짓진술을 강요하고 '형량 경감' 협상을 제안했다가 징계를 받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김씨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번 사건이 검찰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태그:#김경준, #이명박, #B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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