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와 벌어졌던 메이저리그 경기 중 가장 극적인 단 한 경기를 뽑으라면 어떤 경기를 뽑을수 있을까. 단, 국내선수가 소속된 팀의 경기가 아닌 다른 팀들 간의 경기 중에서 말이다.

 

박찬호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 필자는 최고의 경기로 2005년 NLCS 5차전을 최고의 경기로 뽑고 싶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vs 휴스턴 에스트로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간판 타자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간판 타자 알버트 푸홀스 ⓒ 세인트루이스

특정팀을 응원하진 않았지만,필자가 좋아하는 선수 중 하나인 알버트 푸홀스가 세인트루이스 소속이란 이유만으로 응원했던 기억이 있는데, 왜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나에게 다시한번 똑똑히 가르켜준 경기가 바로 2005년 10월 18일 휴스턴의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 열린 NLCS 5차전이다.

                                  

양팀은 2004년에도 내셔널리그 챔피언전에서 맞붙었는데 당시 휴스턴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앞서다 6, 7차전을 연거푸 내줘 결국 세인트루이스에 월드시리즈 티켓을 양보해야 했다.

 

이런 휴스턴에게 2004년의 악몽을 다시금 생각나게 해 준 경기가 바로 이날 5차전 경기였다(세인트루이스는 2004년 보스턴에게 4연패해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지 못했다).

 

2005년 당시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는  휴스턴vs애틀랜타(2004년에 이어 또다시 격돌) 세인트루이스vs샌디에이고의 대진으로 치러졌는데 휴스턴은 3승1패로 애틀랜타를 2년 연속 제압했고, 세인트루이스 역시 3연승으로 샌디에이고를 물리치며 2년 연속 휴스턴과 맞붙었다.

 

당시 휴스턴은 막강 선발 3인방(앤디 페티트, 로이 오스왈트, 로저 클레멘스)과 특급마무리 투수인 브래디 릿지를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공포의 B-타선' 이라 불리우던 버크만, 비지오, 밸트란 등이 버티고 있었으며 세인트루이스 역시 투수진에 크리스 카펜터와 마크 멀더를 위시해 푸홀스, 에드먼스, 래리 워커, 롤렌으로 이어지는 초호화 강타선의 진용을 갖춰 시리즈 전부터 엄청난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세인트루이스 홈구장인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2경기에서 1승1패를 기록한 휴스턴은 장소를 홈으로 옮겨 치른 3, 4차전에서 연거푸 승리해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서간다. 5차전에서 앤디 페티트를 선발로 등판시켜 시리즈를 끝낼 욕심이었던 휴스턴은 4-2로 앞서고 있던 9회초 세인트루이스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승리를 매조지으러 나온 투수가 그해 70.2이닝 동안 103탈삼진 42세이브를 기록한 휴스턴의 특급 마무리 투수인 브래드 릿지였으니 승리에 대한 확신은 당연한 것이었다.

 

홈구장을 찾은 휴스턴 팬들의 기대 대로 로드리게스와 메이브리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아웃카운터 하나만을 남겨놓은 릿지는 데이빗 엑스타인에게 첫 안타를 허용한다. 이후 짐 에드먼즈를 볼넷으로 내보내 2사 1, 2루 상황까지 몰리게 되는데 문제는 다음 타자였다.

 

아웃 카운터 하나만 잡으면 월드시리즈 진출이 확정되는 그 중요한 순간에 알버트 푸홀스가 등장한 것이다. 당시 해설을 맡았던 송재우 위원은 9회초 세인트루이스 공격이 시작될때 어떻게 해서든지 푸홀스까지 공격을 이어가야 최소 동점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떻게 해서든지'란 말은 결코 희망적이지 못한 단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 투수가 천하의 브래드 릿지인지라 '힘들다 '는 말의 우회적 표현쯤에 어울리는 말이었던 것이다.

 

송재우 해설위원의 바람(?)대로 결국 푸홀스까지 공격기회가 왔고 9회 2사 1, 2루 상황, 최소 2루타가 터져야 동점을 바라볼수 있는 가슴 졸이는 순간이 찾아왔다.

 

브래드 릿지를 한번 째려보며 타석에 선 푸홀스. 아직 공격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마치 리그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떠드는 휴스턴 팬들의 소리가 불쾌했던 것일까. 푸홀스의 방망이는 브래드 릿지의 밋밋한 변화구를  결코 놓치지 않고 풀스윙 통타해 '딱' 소리와 동시에 미닛 메이드 파크를 얼음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시끄럽던 구장에 사람소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금동안 자신이 친 홈런 중 베스트 중에 베스트 스윙으로 친 홈런' 이라고 경기가 끝난 후에 밝힌 푸홀스의 타구는 맞는 순간 홈런이란 것을 누구나 짐작을 했을 정도로 대형 타구였다. 또 미닛 메이드 파크 좌중간 외야에 걸려 있던 코카콜라병 모양의 광고판 사이를 비켜 날아가는 초대형 장외 홈런이기도 했다.

 

 자신이 친 타구를 바라보는 푸홀스와 넋이 나간 표정의 릿지

자신이 친 타구를 바라보는 푸홀스와 넋이 나간 표정의 릿지 ⓒ mlb.com

        

이날 선발투수였던 앤디 페티트가 덕아웃에서 푸홀스의 홈런이 터진 순간 '오 마이 갓' 이라 말하는 순간이 카메라에 잡혔으며 그 타구를 바라보던 휴스턴 덕아웃 분위기는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4년에도 다 잡았던 시리즈를 뒷심 부족으로 놓쳐 월드시리즈 진출 티켓을 세인트루이스에 내주었던 휴스턴으로서는 다시금 2004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홈런을 친 푸홀스의 표정과 행동도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다른 선수 같으면 그 짜릿한 순간을 주체하지 못해 흥분한 상태로 그라운드를 돌았을텐데 평상시와 다름없는 푸홀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한동안 거만하게 타구를 바라본 뒤 들고 있던 방망이를 한참이나 지나서야 던지고는 그라운드를 뛰었고, 홈에 들어와서까지도 웃는 표정 한번 보이지 않고 조용히 동료들과 하이 파이브만 하는(라루사 감독과 팀 동료들이 더 흥분했다) 그 살벌한 표정이 마치 괴물과 같았기 때문이다.           

 

 홈런을 허용하고 주저앉아 버린 브래드 릿지.2001년 김병현 선수가 연상된다

홈런을 허용하고 주저앉아 버린 브래드 릿지.2001년 김병현 선수가 연상된다 ⓒ 휴스턴

 

비록 최종전이 된 6차전에서 휴스턴 선발 로이 오스왈트의 호투에 팀 타선이 침묵하며 패배 월드시리즈진출에 실패한 세인트루이스였지만 5차전은 내게 있어 가장 멋지고 극적인 경기로 기억에 남는다.

 

또 브래드 릿지는 그날 푸홀스에게 얻어 맞은 충격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푸홀스 공포'에 두고두고 시달리는 아픔을 겪은 끝에 현재는 휴스턴을 떠나 필라델이파 필리스로 팀을 옮긴 상태다.

 

누가 필자에게 가장 멋진 단 한경기를 뽑아 보라고 물어본다면, 난 주저없이 2005년 NLCS 5차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날 경기는 브래드 릿지도 충격이었지만 나 또한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2007.11.30 16:02 ⓒ 2007 OhmyNews
NL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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