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한국에서 이승엽(당시 삼성)과 타이론 우즈(당시 OB)가 불꽃튀는 홈런왕 경쟁을하고 있을 때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마크 맥과이어(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새미 소사(당시 시카고 컵스)가 연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홈런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

 1998년 홈런경쟁자인 새미소사와 함께한 맥과이어

1998년 홈런경쟁자인 새미소사와 함께한 맥과이어 ⓒ mlb.com


당시 그들이 펼치던 홈런왕 경쟁은 각각의 리그에서 한시즌 최다홈런 신기록 수립 여부까지 덧붙여져 엄청난 화제였음은 물론이고 하루 사이에 홈런 순위가 뒤바뀔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결국 한국에서는 이승엽의 막판 부진을 틈탄 타이론 우즈가 42개의 홈런을 기록해 1992년 장종훈(한화 이글스)이 가지고 있던 41개 홈런을 갈아치우며 한시즌 최다홈런 신기록을 달성하면서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한다.

또한 미국에서는 마크 맥과이어가 70개 홈런을 쳐내며 홈런왕과 더불어 1961년 로저 매리스가 수립한 역대 한시즌 최다홈런(61개)기록을 37년 만에 갈아 치운다. 비록 홈런왕 타이틀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새미 소사 역시 66개의 홈런을 기록해 단일시즌 최다홈런 2위를 기록한다.

이러한 와중에 가장 관심을 끈 선수는 단연 마크 맥과이어였다. 풀스윙을 하지 않고도 홈런을 쳐대던 그는 홈런 비거리를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대형 홈런을 많이 날렸다.

맥과이어에게는 기존 홈런타자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다소 투박한 타격자세, 또한 간결한 타격동작에서 터져나오는 파워 배팅이 바로 그것인데, 이질감과 더불어 경외감이 동시에 존재했다.
                        
 맥과이어 타격장면

맥과이어 타격장면 ⓒ 세인트루이스


선수시절 맥과이어는 그의 홈런 비결을 묻는 지역신문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홈런의 비결은 테이크 백(Take-Back) 없이 치는 것."

이 말을 해석해 보자면 '팔꿈치를 뒤로 잡아당겼다가 스트라이드를 하면서 배팅을 해야 강한 타구를 날릴 수 있는데, 난 선천적인 파워가 뛰어나기에 팔꿈치 이동없이(테이크백 필요없이 혹은 도움닫기 필요없이)도 홈런을 칠수 있다' 란 말이다.

위 사진에 나온 맥과이어의 타격 연속 동작을 유심히 보면 그가 한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타 다른 타자들의 타격연속동작 사진은 처음 타격준비자세에서 활로 스로우(follow through)까지 여러 장의 사진이 필요하지만, 맥과이어는 3장이면 충분할 정도로 간단하다.

많은 사진이 필요 없이 3장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다리를 들지 않고 치는 타격폼에서도 기인하겠지만 무엇보다 타격준비동작에서 미리 뒤팔꿈치를 낮게 위치시켜 그 동작에서 바로 파워포지션으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앞다리를 들면서 타격을 하면 자연이 양팔이 뒤로 이동하면서 스트라이드를 할 때 다시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맥과이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소 구부정한 준비동작(혹자들은 기마자세라고 한다)을 취하며 앞발만 앞으로 스트라이드해서 바로 쳐버리기 때문에 간결한 것이다.

또 히팅 임펙트 후에는 오른손을 빨리 놓고 왼팔로만 활로 스로우하며 끝가지 롤링(파워를 잃지 않고 이어가는)하는 힘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자세는 튼튼한 하체파워와 강한 몸통 회전력이 없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타격동작이다.
통상적인 타격이론으로 보자면 기존 상식을 뒤엎는 타격 동작인데 본인의 신체적 장점을 최대한 이용해 자신만의 타격동작을 개발한 대표적인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1998년 새미 소사와 불꽃튀는 홈런 레이스를 펼치던 맥과이어는 2001년에 은퇴한다. USC 동기생인 '빅 유닛' 랜디 존슨(애리조나)이 아직도 현역생활을 하고 있는 걸 비추어 보면 너무나 빠른 은퇴인 셈이다. 또한 자신이 수립했던 한시즌 최다홈런 70개도 불과 3년 만인 2001년에 배리 본즈(73개)에 의해 깨지게 되면서 이젠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진 존재로 남아있다.

1986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서 처음 빅리그를 경험했던 맥과이어는 이듬해인 1987년 4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메이저리그 역대 신인 최다홈런) 신인상을 수상하게 된다. 

당시 감독이던 토니 라루사와 인연을 맺고 오클랜드 전성기를 이끌던 맥과이어는 1989년 우승반지를 끼며 오클랜드 간판 타자로 성장했으나 1996년 자신의 스승인 토니 라루사 감독이 세인트루이스로 이적하자 이듬해인 1997년 시즌 도중 세인트루이스로 옮겨와 선수로서 황혼기를 라루사 감독과 다시 보내게 된다.

그리고 1998년에 역사적인 70호 홈런기록을 달성하지만 이듬해인 1999년에는 잦은 부상으로 60경기에만 출전해 19홈런만을 기록해 급격하게 하향세를 보이더니 결국 38살의 젊은 나이로 2001년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통산 583개의 홈런과 더불어 1994년 메이저리그 파업 이후 한풀 꺾인 야구인기를 되살려 놓은 일등공신인 맥과이어는 은퇴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이 확실했으나,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 복용의혹에 발목이 잡혀 지난해 첫 자격을 얻고도 저조한 투표율(23.5%)로 탈락하고 만다.

맥과이어를 폄하하는 사람들은 그가 과거 스테로이드 복용사실을 숨기려고만 하는 데서 자격이 없다고 하지만, 옹호론자들은 그가 뛸 당시에는 스테로이드가 금지약물이 아니었다는 근거를 내세우며 맞서고 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를 복용한다고 해서 모든 선수가 맥과이어 같은 홈런을 칠 수는 없다.
맥과이어는 신인시절부터 홈런타자의 대명사격인 선수였으며, 그와 같은 파워배팅은 타격폼에서도 기인하기에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또 스테로이드 문제로 맥과이어를 발목잡는다면 과거 행크 아론이나 베이브 루스와 같은 선수들이 활약하던 당시에도 금지약물에 대한 조사가 있었는지, 그리고 철저하게 검증을 받았는지에 대한 문제까지 거론할 수 있어(그들이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형평성에서도 논란이 있을수 있다. 더군다나 맥과이어가 활약할 당시에는 스테로이드가 메이저리그 금지약물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이의제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식어가던 메이저리그 인기를 되살린 마크 맥과이어

식어가던 메이저리그 인기를 되살린 마크 맥과이어 ⓒ 세인트루이스


간결하고 파워풀 넘치는 배팅으로 식어가던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전세계에 알린 인물이자, 구단의 거액제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잦은 부상이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스스로 은퇴를 한 '빅맥' 마크 맥과이어.

그는 분명 역사상 뛰어난 홈런 타자 중 한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아직도 발목잡고 있는 약물복용 의혹 때문에, 그가 그토록 무섭게 때려대던 과거의 홈런들이 그냥 이렇게 묻히기엔 너무나 안타깝기 때문이다.

맥과이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