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 에이즈 관련 공익광고 질병관리본부와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제공
ⓒ 한국에이즈퇴치연맹

관련영상보기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깨고 차별을 없애기 위해 지정된 이 날은 혈액과 따뜻한 마음을 의미하는 '붉은 리본'을 몸에 부착함으로써, 더불어 함께 살아가자는 연대의 의미를 표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에이즈의 날'이 공표된 지 벌써 스무 해가 지났지만 한국 사회에서 연대의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에이즈에 걸린 다방여자와 시골총각의 사랑 이야기 <너는 내 운명>의 한 장면. 그들의 웃음이 아름답다.
 에이즈에 걸린 다방여자와 시골총각의 사랑 이야기 <너는 내 운명>의 한 장면. 그들의 웃음이 아름답다.
ⓒ 영화사 봄

관련사진보기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에이즈에 걸린 여주인공(전도연)을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남자 주인공(황정민)에게 한 보건소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미쳤냐? 에이즈는 당장 죽을 병이야."

하지만 지난해 12월 1일, 보건복지부 이종구 보건정책관은 국정브리핑 기고문에서 "에이즈는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고, 단순 만성질환일 뿐"이라며 "꾸준한 투약으로 에이즈를 극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했다.

질병관리본부 측은 "에이즈에 감염되었다 하더라도 조기에 검사해 감염사실을 알고 정기적인 검사와 적절한 치료를 잘 받으면 당뇨나 고혈압처럼 만성질환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라 불리는 에이즈에 대한 인식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한 조사결과는 에이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의식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이즈 감염인은 '우리'가 될 수 없는 '그들'인가?
 한 조사결과는 에이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의식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이즈 감염인은 '우리'가 될 수 없는 '그들'인가?
ⓒ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관련사진보기


'우리'와 다른 '그들'이란 편견은 버려야 할 때

국가 기관의 이러한 발표에도 불구하고 에이즈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왜곡되어 있다. 올해 1월, 서울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에이즈 관련 행태조사에서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사소한 접촉만을 통해서도 에이즈가 전염될 수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에이즈 감염인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접촉만해도, 같은 방에만 있어도 전염된다?그런 편견은 이제 버리세요.
 접촉만해도, 같은 방에만 있어도 전염된다?그런 편견은 이제 버리세요.
ⓒ 질병관리본부

관련사진보기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서울특별시지회와 삼육대학교 에이즈예방연구소가 실시한 '서울시 청소년의 에이즈 지식, 태도, 신념 및 행태조사'에서 청소년들은 에이즈 감염이 모기(64.9%), 키스(59.2%), 물잔(57.5%), 변기(54.7%), 동성애(53.1%) 등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답했다.

또한 에이즈는 혐오스럽다(58.6%), 감염학생이 옆자리에 앉으면 자리를 피하겠다(52.1%), 에이즈 감염인과 같이 식사를 하지 못하겠다(43.2%) 등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를 진행한 삼육대 에이즈예방연구소 소장 손애리 교수는 11월 29일 전화통화에서 "교육과 대중매체를 통한 홍보 부족 때문이겠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에이즈에 대한 지식수준은 낮은 편"이라며 "이는 10년 전 유럽과 비교해봐도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른 전염병과 비교해 에이즈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강한 이유로 "무책임한 성행동과 특정 집단(동성애)이 걸리는 병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역시 잘못된 생각이지만, 에이즈에 대한 지식수준이 낮은 한국사회에서는 이 둘이 결부되어 자연스레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편견이 빚어낸 공포, 그 이름은 포비아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1월에서 9월까지 에이즈 감염인 575명을 새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는 하루 평균 2.1명씩 국내 에이즈 인구가 증가했음을 나타내는 수치다. 성별로는 남성이 537명(93.4%), 여성이 38명(6.6%)로 성비는 14:1이었고, 연령별로는 30대 166명(28.9%) 40대가 143명(24.9%) 순이었다. 질병관리본부는 또 올해 9월까지 누적 감염인 수는 총 5155명이고 이 중 938명이 사망하여 현재 4217명이 생존해 있다고 밝혔다.

 07년 1월에서 9월까지 새로이 에이즈 감염인 575명이 새로 발견됐다. 이는 하루 평균 2.1명씩 국내 에이즈 인구가 늘고 있음을 나타내는 수치다. 9월까지 누적 감염인 수는 4721명이다
 07년 1월에서 9월까지 새로이 에이즈 감염인 575명이 새로 발견됐다. 이는 하루 평균 2.1명씩 국내 에이즈 인구가 늘고 있음을 나타내는 수치다. 9월까지 누적 감염인 수는 4721명이다
ⓒ 질병관리본부

관련사진보기


이러한 가운데 '에이즈 포비아'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에이즈 포비아(AIDS Phobia)란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되었을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 있는 심리적인 상태를 말한다.

"제가 어제 모르는 여성과 성관계를 했는데요. 콘돔을 끼우지 않고 했습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에이즈 검사를 받고 싶은데 성관계 후 언제쯤 에이즈 검사를 받아야 확실한 결과를 알 수 있나요?" (ID : movie)

"지나친 포비아 때문에 걱정입니다. 사실 작년 7월에 문제가 될 만한 일을 겪은 후 올해 5월경 군대를 제대하고 한가해지니 급격한 공포감이 몰려왔습니다. (중략) 그러다 갑자기 그 공포감이 커져서 재검에서 양성반응이 나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과 함께 또 다시 검사를 하게 됩니다. 저도 압니다. 저 아니에요. 근데 마치 정신병처럼 이러는 저를 보면서 평생을 이러고 살까봐 두렵습니다." (ID : 이제 그만)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온라인 상담 코너에 올라온 글이다. 이 사이트에만 하루 평균 30여 개의 상담글이 올라올 정도로 '에이즈 포비아'를 갖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 확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에이즈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한 관계자는 "에이즈는 검사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 정보를 통해 증상만으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문제"라며 "당뇨·암 등의 질병의 경우 다른 사람과 의논이 가능하지만 에이즈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그렇지 않다, 그렇다보니 혼자서 볼 수 있는 인터넷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에이즈에 대한 인터넷 정보 중에 잘못된 것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에이즈 포비아'는 공중 목욕탕과 화장실도 꺼리게 되고 침 때문에 사람들과의 대화도 피하게 된다, 이는 강박증과 우울증을 야기할 수 있고 더 심한 경우에는 자살까지 초래한다"며 "편견과 잘못된 정보가 빚어낸 것이 에이즈 포비아"라고 말했다. 또한 "에이즈를 질병으로 바라보지 않고 에이즈 감염자를 사회적으로 낙인찍는 한국 사회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 아니라 후천성 '인권' 결핍증!

제2회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을 이틀 앞둔 11월 29일, 홍대 앞 '리디안 뮤직'에서는 인권문화제 '인권을 말한 법도 한뎁SHOW'가 열렸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 열린 이 행사는 영상사진전 '감염인의 눈으로 보는 세상',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의 활동가 윤 가브리엘의 축사, 인권 상황극과 에이즈피플 밴드 공연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과
'에이즈의 날'은 다른가?

감염인 단체, 보건의료단체 등으로 구성된  'HIV/AIDS감염인 인권주간 준비위원회'는 세계 에이즈의 날이 감염인의 목소리가 배제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등의 정부 주도행사가 아니라, 감염인이 주체가 되고 이들을 지지하는 인권사회단체들이 연대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기반, 2006년부터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감염인 인권의 날'로 고쳐 부르고 있다.

3시간 가량 진행된 인권문화제가 끝난 후, 이 행사에 참여한 동성애자인권연대 장병권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 다른 전염병도 많은데, 유독 에이즈만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 그동안 에이즈와 감염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잘못된 반응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교육 부재 때문이겠지만 아직도 에이즈를 남성 동성애자들의 질병, 성 노동자들의 질병, 이주노동자들의 질병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에이즈는 나랑 상관없다', '에이즈는 동성애자, 성 노동자 등 특별한 사람들만 걸리는 질병이다'라는 생각이다. 걸리면 죽는다는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그릇된 정보와 사회 소수자들의 문제라는 인식이 결합해 편견과 차별의 낳는다.

198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특이 질병이 발병, 유독 남성 동성애자들에게만 발견되면서 '게이 돌림병'이란 소문이 일파만파 번졌지만 레이건 정부는 질병 치료에 대해 접근한 것이 아니라 특정 감염인을 감시 및 통제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 잡은 두 손. 11월 29일 열린 '인권을 말한 법도 한뎁SHOW' 행사 중 하나였던 '감염인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 전시된 사진이다.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화한 작품이다.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 잡은 두 손. 11월 29일 열린 '인권을 말한 법도 한뎁SHOW' 행사 중 하나였던 '감염인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 전시된 사진이다.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화한 작품이다.
ⓒ 공동행동

관련사진보기


- 기자회견 보도 자료에 보면,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며 특정 집단에게만 에이즈 예방책임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사람이 질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고 온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의 사회적 책임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에이즈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가고 있다. '당신의 성적 문란함이 문제'란 이야기다.

때문에 질병을 치료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통제의 수단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한 통제하기 가장 쉬운 소수자(동성애자, 성 노동자, 이주 노동자)에게 이를 적용, 본보기를 보여줌으로써 사회가 정해준 일정 틀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자연스레 두려움을 준다. 사회통념에 벗어난 사람들을 통제함으로써 사회통념에 맞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지난 20일 가결한 '에이즈 예방법' 개정안을 두고 아직도 감시와 격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웨딩드레스를 자르고 있는 가위. 11월 29일 열린 '인권을 말한 법도 한뎁SHOW'의 행사 중 하나였던, '감염인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 전시된 사진이다. 감염인이 된 후에 자신이 포기했던 것들을 상징화한 작품.
 웨딩드레스를 자르고 있는 가위. 11월 29일 열린 '인권을 말한 법도 한뎁SHOW'의 행사 중 하나였던, '감염인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 전시된 사진이다. 감염인이 된 후에 자신이 포기했던 것들을 상징화한 작품.
ⓒ 공동행동

관련사진보기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 아이가 에이즈 감염자라고 밝혀지자 어제까지 친하던 주변의 사람들조차 등을 돌리는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1차 에이즈 검사 때는 익명으로 진행되지만 좀 더 지원을 받으려면 신원을 밝혀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이름을 드러내고 치료를 받을 수 없는 형편이다.

때문에 감염자 혹은 잠재적 감염자들은 음지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명관리는 제대로 된 치료방법이 될 수 없다. 감염인 익명관리를 시행하고 있는 서구사회의 모습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나눌 때, 내가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다. 그것이 전파매개금지조항인데, 이는 감염인을 질병의 피해자가 아니라 고의적 전파자로 편견을 조장하는 조항이다. 질병에 낙인을 찍을 수 없음에도 낙인을 찍는 것이다.

강제검진 같은 경우에는 주로 성 노동자, 이주 노동자들에게 적용된다. 자기 몸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지 않고, '너희들은 몇 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아야 해'라고 강요하는 것은 명백히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침해하는 행위다. 통제가 아니라 치료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한 개정안에는 강제검사 대상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자'라는 규정의 자의성과 불명확성으로 인한 남용의 위험성과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 에이즈에 대한 인권결핍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란 인식이 인권결핍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때문에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분을 뛰어넘는 일이 가장 기초적이며 필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나이, 계급, 성별 등에 대한 모범적 행동양식을 상정해 놓고 이 틀 안에서만 존재해야 '정상'임을 인정받는 현실은 결코 옳지 않다."

▲ PL날다 PL은 'Poeple Living with HIV/AIDS'의 약자. "질병을 가진 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차별없는 세상이 올 그 날을 기다리며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이 노래를 바칩니다." - 에이즈 피플 리더 홍지. 이들이 ‘인권을 말한 법도 한뎁SHOW’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 에이즈피플 밴드

관련영상보기


"나는 괜찮은데, 당신은 불편한가요?"

에이즈 투병 7년째라는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의 윤 가브리엘 활동가는 '인권을 말한 법도 한뎁SHOW' 인권문화제에서 "제20회 세계 에이즈의 날 모토가 리더십, 즉 각계 지도층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에이즈 문제해결에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지만 우리 지도층은 삼성 떡값 받는 것에나 관심 있지 소수자와 같은 에이즈문제에 관심이나 있나"고 되물었다. 

비단 지도층뿐만이 아니다. 에이즈는 언제나 '그들만의 문제'라고 여긴 우리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그 때문에 때때로 불편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닐까.

에이즈에 걸린 동성연애자 변호사가 자신을 부당 해고한 회사를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도서관 사서가 에이즈 감염인인 앤드류 벡켓에게 자꾸 작은 방으로 가길 권유하자, 감염인 앤드류 벡켓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괜찮은데, 당신은 불편한가요?"

스무 돌을 맞는 에이즈의 날. 청년이 된 에이즈의 날에 손을 내밀며 스스로 물어봐야할 질문이다. 나는 정말 불편하지 않은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