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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 illusion 이정식 앨범 재킷
▲ moon illusion 이정식 앨범 재킷
ⓒ 송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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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예닐곱 살 쯤 조그마한 뚝방 다리에서 울긋불긋 여러겹의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이 춤을 추었다. 춤을 추다가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또 울부짖기도 했다. 옆에서는 소복의 남정네 혹은 여인네가 그 여인의 장단에 맞춰 징을 울리던가, 꽹과리를 지져대던가, 장구를 쳤다. 그 모습이 매우 재미있고, 사이드맨(?)의 연주는 드라마틱했다. 장단과 고저가 분명한 이들의 반주에 맞춰 한복의 여인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주문과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그것은 굿이었다.

성인이 되어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곡인 <미궁>을 들었다. 그 음악에서 홍신자의 인성(人聲)은 무당의 사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흡사 몽유병자가 아무 뜻 없이 주절대는 듯한 홍신자의 소리는 섬뜩하게 다가왔지만 듣다보니 무당의 주술에 걸린 목소리와 비슷했다. 홍신자나 무당 둘 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방언 비슷한 것을 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것은 무언가를 위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알듯 모를 듯 오묘한 지점 가운데에 이정식의 <Moon Iillusion>이 걸려 있다. 그야말로 연주자와 청자의 착시(錯視)를 앨범 표제로 삼았다. 그렇다면 착시는 왜 일어나는가? 그 핵심은 즉흥성이다. 한국인에 내재된 문학적 심상과 철학적 표상을 선험적인 음악어법으로 연주한 'Moon Iillusion'은 우리 속, 즉 한국인이라는 공동체 안의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어렵지만 친숙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여러 악기로 상상하게 하는 음악은 듣는 사람의 원형(原型)에 닿게 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형'(archetypes)이란 집단무의식의 구조적 요소, 보편적, 집단적, 선험적인 심상들이다.

이정식의 'Moon Iillusion'은 한국인 저변에 깔려 있는 무속과 불교적인 음악 속에 들어 있는 심혼(心魂)에 근접하려고 했기 때문에 듣기가 어렵다. 그것도 어떤 주제와 변주를 통한 즉흥만을 한 것이 아니라 심상과 표상을 즉흥하려 했기에 이 앨범은 무의식적이다. 이정식이 연주하는 여섯 가지의 악기(베이스 클라리넷, 아이리쉬 플루트, 소프라노 & 테너 색소폰, 식금)는 한국인이라면 들었을 어떤 집단적 무의식을 일깨우는 소리의 주술이다.

한국인의 집단무의식 가운데 하나는 샤머니즘과 불교적인 것이 결합한 습속(習俗)화 된 음의 행렬이다.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죽음의 이미지란 떠남과 마주침이다. 망자에 대한 슬픔과 이를 걸머지고 가는 상여꾼의 어우러짐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하얀 상여는 슬픔과 일상적 삶이 마주치는 지점이다.

이 슬픔을 위무하는 사람이 무당이며, 일상적 삶의 갈등을 보듬어 품는 것이 불교적인 것이라고 할 때, 이정식의 연주는 무당의 징소리를 발현했고, 절간의 목탁소리와 풍경소리, 독경을 자기만의 음악적 언어로 표상(表象)화시켰다. 즉, 심상을 표상화한 이정식의 연주는 무정형의 즉흥성으로 죽음과 불교적인 것에 대한 위무와 추렴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박생광 <무당1983> 박생광 작품
▲ 박생광 <무당1983> 박생광 작품
ⓒ 송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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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광 화백의 <무당 3>에 녹아 있는 토속과 집단무의식

우리 한국인의 토속신앙을 자주 그렸던 박생광 화백이 있다. 그의 그림 가운데 <무당3>이라는 작품이다. 1983년 작품인 이 그림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색채를 뿜어내고 있다. 몽유적인 보라색과 붉은색이 주를 이루는 이 작품은 환상적이면서 토속적이다.

무당의 부채를 통해 기존의 질서를 흔들어대는 박생광의 그림은 무속을 통한 사회 고발이기도 하다. 무당이란 귀신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여자를 말하는데,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기층 민중의 삶과 아픔을 대변하고 그들의 꿈과 희망을 대신하는 영매자이다.

영매, 그것은 음악이나 미술, 문학하는 소위 예술가들이 갖고 있는 강신(降神)의 조건이다. 박생광은 옹골찬 기상과 화풍으로, 이정식은 자신의 연주로 대중과 토속신과의 영매를 시도하고자 했다. 박생광이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조롱을 무당에 담은 반면, 이정식은 죽음의 이미지를 소리로 풀어냈다.

이런 의미로 좀 더 비약하자면 박생광이나 이정식 둘 다 무당이다. 기층 민중의 마음자락 저 먼 언저리에 걸려 있는 사회에 대한 반감이나 죽음, 이것을 자기만의 예술로 승화시킨 이들은 한국인 가슴 속에 숨어 있는 마음의 병을 살풀이하고 있다.

즉흥과 아득한 성자(聖者)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五鉉 스님, 아득한 聖者

참으로 아득한 시다. 이정식의 <Moon Iillusion> 앨범 또한 이 시처럼 아득하다. 이 앨범은 어떤 표제보다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상징성이 크다고 하겠다. 그래서 앨범 제목도 <Moon Iillusion>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이 즉흥의 착시 - 듣는 나와 연주하는 이정식의 괴리 - 는 표제를 뛰어넘는 상징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재즈평론가 김진묵이 말한 긍정적 의미의 '까보니즘'(Carvonism)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김진묵이 말하는 ‘까보니즘’이란 “기록된 악보를 거부하고, 연주자의 즉흥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즉흥 연주를 강조하는 기존 재즈의 개념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김진묵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소리가 춤을 추는 것’이다. 김진묵은 “까보니즘 뮤직에서 나는 앙상블 개념 대신 ‘사운드 댄스’라는 개념을 도입했다”고 했다. 악기를 연주함에 있어서 서로 앙상블을 맞추지 않고, 그저 ‘같이 하는 것’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이정식의 <Moon Iillusion>은 소리가 춤을 춘다. 아주 한국적 동선을 그리는 무당의 춤사위, 선승의 독경과 상여꾼의 앞소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이 앨범을 들었을 때, 내 유년의 무당이나 어른이 되어 들었던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와 홍신자의 '人聲'이 떠오른 것은 바로 그러한 연유이다. 아득하게 과거로 돌아갔다가 또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즉흥하는 이정식의 음악을 단 한마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재즈월간지 MM Jazz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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