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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영 기자는 연세대학교에 재학중입니다.

<르포> 첫 번째 마당
- 몇 가지 스펙과 취업준비생 인터뷰

 

# 많은 이들이 취업난을 걱정한다. 하지만 취업난을 취업이 안 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뿐이다. 취업준비생의 인식도 별반 다를 바 없다. 그저 그들은 ‘취업이 어렵다고 한다...’, ‘무엇 무엇이 중요하다고 한다...’ 라는 등의 소문을 취업에 대한 정보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범주도 모호한 스펙이라는 신종 어휘가 취업준비생들 사이에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끊임없이 새로운 요소가 스펙 속에 포함된다. 준비생들은 스펙에 속하는 것은 모두 만족시켜야 할 요소로서 부담을 느낀다, 그리고 기업이 요구하는 항목에 대해서는 요구된 기준을 넘겨야 한다는 심리적 불안감에 쫓긴다. 

 

 몇 가지 스펙이라고 일컬어지는 몇 몇의 요소를 중심으로 취업준비생들을 80여 일 간 취재하면서 취업난의 모습을 담았다. 


기말시험기간 대학가 부근의 한 풍경

 

 비가 오려는 듯 텁텁한 공기와 구름진 하늘 밑에 서서히 어스름이 깔리는 10월의 저녁이었다. 상도동 중앙대 앞 지하철 역 2번 출구 부근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한산하기만 하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가을녘, 무수한 영어학원, 자격증학원 등 각종 전단지가 흩날리고 있어야 할 대학가엔 정적이 감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어디론가 향하던 젊은이들의 모습 역시 평소와는 다르게 눈에 띄지 않는다. 저녁 메뉴를 정하기 위한 식당 앞에서의 가벼운 실랑이도, 대낮부터 무슨 술이냐며 선배들에게 던지는 후배들의 핀잔 섞인 앙탈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오른쪽 어깨에 느슨하게 걸쳐진 핸드백을 치켜올리며 왼손으로는 휴대폰 폴더를 열고 있는 한 아주머니와 무심한 표정으로 지하철역 출구 앞에 쌓여있는 무료일간지 몇 부를 집어 들고 아래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려놓는 퇴근길의 회사원만이 눈앞을 스쳐간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포장 손님이 많이 없군요. 학교로 시켜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평소보다 배달 주문이 많아요.”

 

 학생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중앙대 역 앞 피자가게의 배달원은 포장 고객에게는 정가의 30%를 할인해 주기 때문에 포장고객이 평소에는 많지만, 시험기간이 되자 학교에서 내려오는 시간마저도 아까워 학교로의 배달 주문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일 분 일 초마저 아껴야 하는 시험기간의 긴박함은 학생들 뿐 만 아니라 어느덧 학교 앞 피자가게 배달원들에게까지 전이된 버린 모습이다. 
 
 학점. 그 무언의 압박

  
 “군대 갔다오고 공부만 했데이.”

 

 전역 이후 학점관리에만 매진하였다는 김대수는 현재까지의 평점이 3.92라고 하였다. 상당히 좋은 학점이라고 치켜세우자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은 그것이 잘한 것인지 아니면 어중간한 학점인지 모르겠다며 되받아친다. 결과야 어떻든 이렇게 그가 학점관리에 매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포철상기 인사부장 출신이라는 아버지의 영향과 취업에 대한 학내(세종대학교)의 환경에서 묻어나는 압박 때문이라고 하였다.

 

 “아부지 신입사원 면접관하시고 난 다음날은 아침밥 묵을때부터 당신 면접관하고 온 후기 연설 하시는 것 듣는다고 정신없데이. 내가 얼라 때는 ‘저 양반 또 잔소리하네’ 이렇게 생각했다고. 근데 말이다. 전역할 때 대대장한테 전역신고하고 멀리서 위병소를 볼 때까지만 해도 이제 나가면 뭐하고 놀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위병소를 딱 나가고 한 스무 발자국쯤 걸어가고 있으니깐 아부지 하신  ‘아무리 낯짝이 빤빤하고 재주가 많아도 학점 나쁘면 인간이 뺀질해 보인다’는 말씀이 귓전에 맴돌더라고.

 

 이제 군대가기 전처럼 놀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갑자기 그 말이 떠오르는게 신기하데. 예전에 1학년때 개판친 학점생각에 이제부터라도 만회할 수 있을까 생각되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꼬불쳐둔 보급디스 포장지를 벗기며 몇 대 줄창 빨아댔지. 그 다음부터는 뭔가 죄짓는 기분에 맘껏 놀지를 몬하겠드라.”
 
 술이 한잔 들어가니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말없이 항상 무뚝뚝한 사람도 안에 할 말을 담아두는 법이다.
 
 “그라고 맨날 아부지께서 회사 지원자들 화려한 학벌 이야기를 하시는데, 내가 생각해 봐도 실제로 우리 학교같이 2선에 위치한 학교는 취업하기가 안 힘들겠나. 학점이라도 좋아야 좋은 학교 나온 아들이랑 경쟁도 되지 싶다. 그래가 죽자고 하는거 아이가. 그라고 취업 안되서 간혹 학교에 놀러오는 몇몇 선배들 안 있나.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가는 선배들 보면 속으로 ‘저 양반들 취업했으면 여기 왔겠나. 취업한 선배들이 더 많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저럴까봐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드라. 학교 벽면을 봐도 사방 허연 벽면 위에 채용 공고문 뿐이제 수업시간엔 교수들이 먹고 살라면 학점 좋아야 된다고 압박주제. 교수면 좀 학문적인 이야기도 할 법한데 공대 교수들이라 그런지 말하는 것도 현실적인 느낌이 팍팍 묻어나드라. 공부 이외의 경험을 하고 싶어도 공부만 하게끔 되 있는 환경 아이가.”

 

 세종대학교 공대의 학점 4.0은 세칭 명문 공대라는 한양대학교의 학점 3.5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김대수의 술내음 섞인 푸념. 그리고 얼마전 신경성 위염이 재발했다고 겔포스를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짜내며 그냥 먹어도 될 것을 목젖이 보이도록 고개를 젖혀 빨아먹던 모습에서 시험기간 일주일 내내 핏발 선 눈으로 도서관에 못박혀 있던 대한민국 청춘의 한 단면이 겹쳐보였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취업시장에서의 학점기준

 

 그렇다면 다른 대학생들이 취업에 있어 요구되는 학점에 대하여 갖는 인식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서울 소재 대학생 및 졸업생 100명을 대상으로 ‘30대기업, 100대기업, 공사 혹은 공기업 취업에 요구되는 학점의 하한선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을 실시하였다.
 
 일반적으로 대학생들이 가장 취업을 희망하는 기업군인 30대기업과 공사의 경우 서류전형을 통과하기 위하여 필요한 학점의 하한선은 3.5~3.7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임을 알 수 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30대기업의 경우 52%, 공사의 경우 49%가 3.5~3.7을 서류전형 통과에 필요한 최저 학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채용 공고문을 살펴보면 최소지원 요건에 각종 어학능력 요건이나 자격증을 명시해둔 경우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지만 최소학점을 기재해 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욱이 대학 입시요강보다 규모 및 다양성 면에서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인 취업시장 속에서, 학생들이 생각하는 구체적인 학점 수치는 대부분이 취업사이트의 표본 조사거나 취업문을 통과한 선배들을 통해 들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100대기업의 경우를 보면 학점의 중요성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은 달라진다. 평점 4.0이상을 받아야 취업이 가능하다는 응답자는 한명도 없었으며, 35%에 달하는 응답자가 학점은 3.0정도가 하한선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평점 3.7 급간 밑으로는 낮은 학점에 해당하는 급간일수록 응답자가 많은 경향을 보였다.

 

 30대 기업에 요구되는 학점의 평균치는 3.61, 100대 기업은 2.79였다. 즉, 지원자들이 몰리는 선호기업군에는 그만큼 요구되는 학점이 높은 반면, 100대기업, 나아가 500대기업으로 가면 학점반영비율이 크게 중요하지 않거나 아예 요구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일단 여기부터 지원해 봤다가 힘들면 저기라도 취업해야지 하는 인식이다. 취업 자체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지만, 모두가 선호하는 직장으로 취업하는 것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학년별로 구분한다면 3,4학년의 경우 비슷한 분포를 보이는 반면, 1,2학년의 학점인식은 보다 취업에는 높은 학점이 요구된다는 막연한 인식으로 상대적으로 좀 더 취업에 직면한 3,4학년과는 차이를 보인다. 물론 보고 들은 정보의 양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학외로부터 쉴 새 없이 공급되는 취업불안이 저학년층에게 까지 전이되어 가는 최근의 경향을 감안했을 때 머지않아 고학년들과 비슷한 분포를 띄게 될 것이다. 불안의 수준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인식은 경향을 따르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족한 정보가 만들어 내는 괴물                  
 
 학점에 대한 최소 채용요건은 각종 기업의 모집요강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설령 찾는다 하더라도 세분화된 업종에, 기업의 규모 등을 분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교명은 밝히지 말아달라는 서울소재 한 대학교 취업정보실의 상담원은 기업체 채용요건과 취업자 스펙에 대해서는 어떠한 통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매년 교육부 보고 형식에 따라 각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 현황을 업종별과 기업 규모별, 그리고 전공별로 분류화한 통계자료가 ‘취업통계연보’ 라는 이름으로 발간된다. 각 대학별 취업정보센터에 1부씩만 배부하는 상황이다. 일반인들에게 취업통계연보에 기초한 구체적인 취업 현황 수치는 공개하지 않고, 2004년부터는 각 학과와 협의하에 졸업생 취업현황 및 비율만 발표하고 있다. 취업 현황도 공개하기가 힘든데 지원자 스펙을 분류하여 통계화한 자료는 불가능하다.”(Y대 취업 정보실 상담원)
 
 취업 현황조차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현실이지만 보다 더 접근이 제한된 최저학점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은 어느 구간에 뚜렷히 집중된다. 그 인식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학생들이 접할 수 있는 취업정보 소스는 고작해야 취업자 수기와 각종 대학신문을 위시한 다양한 언론 보도, 그리고 가까이 지내왔던 그들 선배들의 말이 전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스펙이 이러이러한데 누구누구는 떨어졌다더라, 누구는 학교 다닐때 놀기만 했는데 대기업에 당당히 입사했다더라. 이런 루머가 꼬리를 물고 물어 어렴풋한 안개속에서 실체를 만들고 있다.

 

 “평점 3.7은 넘어야 제가 원하는 곳에 취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3.7은 제겐 요원한 수치죠. 경제학과 평점 3.7, 경영학과 평점 3.5, 인문계열 평점 4.0, 공대 평점 3.5 등등 학과 특색에 따른 취업 컷 이야기가 주변에서 종종 들리곤 하죠. 자꾸 들으니깐 사실로 느껴져요.” (고려대 경제학과 3학년 이성은)

 

 그러나 그러한 소문에 맞춰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놀고도 취업한 선배를 보면 학점보다는 그 선배가 갖춘 다른 대외활동이나 자격증이 필수적인 것 같이 느껴져 준비해야 할 것 같고, 학점이 자신보다 높은데도 취업하지 못한 선배를 보면 편입을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이리저리 흔들린다.


 한 번에 두 마리 새를 잡는 것은 무리

 

 자정에 가까운 시각, 김대수와의 술자리 인터뷰를 마쳐야 할 시각이다.

 

 “요새는 그냥 편입이나 준비해 볼까 싶다”
 
 어느새 불쾌해진 얼굴로 몇 안남은 콩나물 대가리를 젓가락 한 짝으로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던 그가 불쑥 던진 물음이 상념을 날려버린다.

 

 “스펙이 좋은 놈이 항상 취업이 잘 되리라는 보장이 있나. 나도 편입이나 해볼까 싶다.”

 

 농담삼아 한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사뭇 진지한 어투지만, 진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살짝 치켜 올라선 양쪽 입매 위에 장난끼가 묻어난다. 네 뜻이 그렇다면 해봐야 겠지. 선뜻 긍정의 의사를 보이자 손을 휘휘 내젓는다. 역시 장난이다.
 
 “학점이 이 정도면 취업 안 될까 싶으면서도, 다른 부분이 부족한 것 같고. 하나씩 다 준비하자니 막막하고. 그런 것 땜빵해 주는 간판이 필요하기도 하고. 이런 말도 있잖아. 학점 위에 전공 있고, 전공 위에 학벌 있다는 말. 학점이 어떻든 학교가 좋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사람들 말이 다 틀리잖아. 또 이런 경우도 많이 봤는데 재학중에 회사에 들어가 일하는 선배들 제법 보거든. 그 사람들 학점은 이미 포기했던데, 그걸 보니 나도 학점포기하고 선배들한테 부탁해서 회사나 들어갈까 싶은 생각도 들더라. 요즘 경력이 많이 중요하다고들 하잖아. 그 사람들 말이 귀에 솔깃해서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당장에 제일 확실하다고 생각되는게 학점뿐이니 그저 공부나 하는 수 밖에. 한 번에 두 가지는 못하겠거든.”

 

 클릭만 하면 뉴스가 쏟아지는 시대, 그러나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도 쓸 만한 것 가려내기는 힘들어진다. 모든 방면에 능통한 슈퍼맨을 요구하는 만큼 하나만 준비해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취업을 위해 노력한 것에 비례해 다른 스펙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불안은 더욱 짙어만 간다. 

 

 자리를 일어서니 식당주인은 기다렸다는 듯 그릇을 양철판에 쓸어담고 문 앞에 비켜서서 손님을 배웅할 채비를 했다. 기어이 자신이 계산하겠다며 주인 손에 돈을 쥐어준 그가 향하는 곳 멀리서부터 하나 둘씩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지하철 막차 시간이 다 되어서일까 하나같이 바쁜 걸음들이었다.

 

 지하철역 앞에서 짧게 나눈 악수를 마지막으로 대수는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향해서 걸었다.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한 동안 그렇게 휘청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짊어져야했던 삶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태그:#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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