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 노동자 여러분 만세!"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외침이 아니다. 무소속으로 대권 삼수에 도전한 이회창 후보의 외침이다. 이 후보는 한국노총 소속 1만여 노동자 앞에서 느닷없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이렇게 만세를 외쳤다.

 

확실히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나 보다. 그리고 대선에 뛰어들어 표를 얻으려는 후보자들의 절박성은 한층 높아진 것 같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이인제 민주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무소속의 이회창 후보가 일제히 노동자들 앞에 섰다.

 

현장은 한국노총이 24일 오후 여의도공원에서 개최한 전국노동자대회. 여기에는 약 1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석했다. 그리고 대선 후보 5명이 나란히 참석했다. 이들은 잠시 얼굴만 비추고 떠나지 않았다.

 

다섯 대선 후보들 "노동자는 우리의 동지"

 

"우리의 길은 힘찬 단결 투쟁뿐이다"라는 <단결투쟁가>를 부르는 노동자들 앞에서 흐트러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 뿐이 아니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산화해간 '열사'를 위해서 묵념을 했고, 노동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땐 함께 하늘로 팔을 치켜 뻗었다.

 

노동자들을 향한 칭송도 빠지지 않았다. 모두들 노동자들에게 "동지"라 불렀다. 그리고 입을 모아 "존경하고 사랑한다"며 "함께 새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외쳤다. 잠시 이들의 말을 들어보자. 

 

"사랑하는 한국노총 동지 여러분 존경합니다, 여러분은 나의 동지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 있는 후보 가운데 유일무이한 노조원 출신입니다. 나는 여러분과 연대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족 행복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 정동영 후보

 

"사랑하는 한국노총 동지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 날씨가 추운데,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지난 5년간 여러분 행복하셨습니까. 동지 여러분, 이제 지나간 5년을 벗어나 미래의 새로운 5년을 열어야 합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노동자가 행복해지고, 국민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 이명박 후보 

 

"아스팔트 바닥이 차갑지 않습니까. 민주당도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있습니다. 나는 과거 노동부 장관을 하며 한국노총과 함께 고용보험제도 만들고, 여성과 장애인 고용촉진 시킨 것을 가장 보람 있게 생각합니다. 천만 노동자야말로 민주당이 떠받들어야 할 핵심 계층입니다." - 이인제 후보


"추운 날씨에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나는 33년 동안 여러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이 있어, 우리나라가 있습니다." - 문국현 후보

 

"나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출발해 위로 가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노동자 여러분, 나는 노동자 출신도 아니고, 노동운동도 안했습니다. 그러나 과거 노동자 출신보다,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보다, 먹물 먹은 내가 더 노동자를 생각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이해하고 더 함께 하고자 결심했습니다. 한국 노동자 여러분 만세!" - 이회창 후보 

 

비정규직 노동자가 850만으로 전체 노동자의 50%를 초과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들의 말은 어색하게 들렸다. 마치 좌파 정부가 강세를 보이는 남미 국가에 와 있는 듯한 느낌 마저 들었다. 노동자를 향한 대선 후보들의 더 없는 칭송을 어색하게 받아들인 것은 나의 편견 때문일까.

 

정동영 후보는 대선 슬로건으로 '가족행복시대'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정 후보는 "지난 5년은 가족 파탄의 시대였다"는 한나라당의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 후보가 앞장서 만든 열린우리당은 많은 노동자들이 "악법"이라 부르는 비정규직 법안을 최선두에서 추진했다. 참여정부 들어서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200만 명이 증가했다. 가족행복과 비정규직은 등치되지 않는 말이다.

 

이명박 후보는 또 어떤까. 이 후보는 지난 5월 한 초청강연에서 인도의 IT업체를 예로 들며 "그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면서 노조도 만들지 않더라,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또 "대학교수들이 노조를 만들려는 목적이 뭔지 의심스럽다"며 교수노조를 비판했다. 그리고 "과거 서울시 오케스트라가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돼 있었다, 아마 현악기 줄이 금속이라서 그랬나 보다"라고 말해 노동계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또 현 정부를 좌파 정부라 규정하며 한층 더 우익 색체를 강화한 이회창 후보가 "노동자 만세!"라 외친 모습은 그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1천만 노동자를 떠받들어야 한다"는 이인제 후보의 말에서도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

 

왜 다섯 대선 후보는 투쟁가에 맞처 팔을 들었나

 

사실 다섯 대선 후보가 이날 온갖 미사여구로 노동자를 칭송한 건, 한국노총의 '정책연대 후보선택'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오는 28일부터 12월 7일까지 ARS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지지 및 정책 연대 후보를 선택한다. 한국노총의 전체 조합원은 90만에 육박한다. 대선 후보들이 무시하지 못할 '표밭'이다.

 

대선 후보들이 표를 얻기 위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건 자연스런 정치행위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 때문에 기존의 정책 및 언행에서 180도 다른 말을 갑자기 꺼내는 건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의 신뢰성을 의심케 한다.

 

이날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도 현장에 참석했다. 이인제 후보는 홍 의원과 악수하며 "요즘 BBK 골키퍼 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싸늘한 농담을 건냈다.

 

많은 노동자들은 "사랑한다" "존경한다" "떠받들겠다"는 일회성 말 대신 고단한 세상살이에서 자신들을 보호해 줄 '삶의 골키퍼'같은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태그:#이명박, #정동영, #문국현, #이인제, #이회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