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가 STX 그룹과의 현대 유니콘스 매각 협상 포기를 선언하면서 그나마 한가닥 남아있던 희망마저 끊어져버린 현대는 이제 운명이 걸린 마지막 12월을 건너야한다. 만일 해가 넘어가도록 새로운 인수 기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현대구단은 그대로 공중분해 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의 마지막 등불, 김시진 감독

 해체 위기에 놓인 현대를 이끌고 있는 김시진 감독.

해체 위기에 놓인 현대를 이끌고 있는 김시진 감독. ⓒ 현대 유니콘스


구단주가 등을 돌려버리고 스폰서마저 끊긴 현대는 한 겨울 매서운 추위를 피해 해외로 마무리 훈련을 떠나는 호사는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선수단을 이끌고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현대의 사령탑 김시진 감독이다.

현재 프로야구 감독 중에 팀에 끼치는 영향력이 가장 높은 감독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의 김시진 감독이다. 김시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만일 그마저 손을 놓아버리거나 자포자기 해버리면 현대는 그대로 천길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다. 김시진은 현대의 마지막 등불 같은 존재다.

김시진 감독은 2007년을 앞두고 바람 앞 촛불과도 같은 현대의 감독직에 올랐다. 현대 구단 인수의사를 밝혔던 농협이 내부 반발에 부딪혀 인수계획을 백지화하면서 그동안 구단 운영비를 지원해온 현대가의 지원은 완전히 중단됐으며 선수단의 급여를 한국야구위원회를 통해 지원받아서 해결해야 할 만큼 현대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시즌을 치를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독에 오른 김시진은 현대를 이끌고 올 시즌 56승 69패 1무(승률 0.448)라는 성적을 올렸다. 5위 LG에 4.5게임 뒤진 6위. 자랑스러울 것 하나 없는 성적이지만 초임 감독으로, 그것도 전력보강은 꿈에도 못 꾸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팀을 맡아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끌고 올라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 현대 구단 내부의 힘든 문제를 떠나서라도 김시진 감독이 이렇게 잘해내리라 생각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오랜 시절 투수코치로 재임하면서 투수를 잘 키워내는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감독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11년 동안 현대를 이끌며 8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고 4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낸 전임 김재박 감독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던 탓도 있었지만 김시진 감독이 현역시절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져 내리곤 하던 기억으로 인한 선입견 탓도 있었다.

'새가슴' 에이스 김시진

현역시절 통산 124승(73패)을 거둔 김시진은 최동원, 선동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프로야구의 '슈퍼 에이스'였지만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당시 삼성 소속이었던 김시진은 유독 한국시리즈와 같은 큰 경기에서 제 몫을 못해주는 바람에 ‘새가슴’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시진이 한국시리즈에서 승리 없이 통산 7패만을 기록했으니 그런 별명을 얻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김시진은 결정적 순간에 영웅이 되지 못했다. 최동원, 선동열이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으로 마운드를 지배한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김시진이 강렬한 투수로 기억되지 못한 데에는 트레이드도 큰 영향을 끼쳤다. 삼성은 87년 한국시리즈에서도 끝내 우승에 실패를 하자 88년 김시진을 오대석, 허규옥 등과 함께 롯데 최동원, 오명록, 김성현과 맞바꾸는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에이스를 맞바꾸는 희대의 트레이드. 이 사건은 김시진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시 김시진은 삼성에서만 111승을 거둔 명실상부한 사자 군단의 에이스였지만 트레이드 전날까지도 아무런 언질을 받지 못했다. 하루 아침에 내침을 당한 것이다. 전성기가 끝나간 탓인지, 충격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김시진은 이후 롯데에서 4년간 13승(24패)만을 추가하는 데 그치며 유니폼을 벗었다. 김시진이 역사에 족적을 남긴 대투수였음에도 구단에 버림을 받는 모습은 한국시리즈에서 약한 투수라는 평가와 맞물려 김시진을 유약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프로야구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에이스 김시진.

프로야구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에이스 김시진. ⓒ 삼성 라이온즈


지금도 김시진 감독은 행여나 선수단의 월급 지급이 중단돼 가뜩이나 힘이 빠져있는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구단이 공중분해 되면 코치들의 앞길이 막힐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것이 야구 감독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음에도 스스로 선수단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김시진 감독.

그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몸으로 버텨내면서도 태연하게 웃고 있다. 그렇게 이 잔인한 시련을 꿋꿋이 버티어내고 있다. '새가슴'을 지닌 유약한 이가 견뎌낼 따위의 무게가 아니다. 김시진은 지금 유니콘스의 운명을 자신의 가슴으로 품어내고 있다.

어쩌면 김시진 감독은 정말로 새가슴일지도 모른다. 유약한 심성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도 절대로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다.

김시진 감독이 가슴속으로 피눈물을 참아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 김시진을 냉철한 승부사라고 억지로라도 믿고 싶은 이유다.

김시진 감독에게 고맙다는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플 뿐이다. '김시진 감독님 잘 견뎌주고 있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김시진 현대 유니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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