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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속절없이 떨어지는구나.”

우수수 떨어지는 단풍잎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 한구석이 텅 비워진다. 궤적을 남기면서 떨어지는 이파리의 모습에는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추락하지 않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고 있는 모습까지도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고운 빛깔로 햇살에 반짝이면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파한 하늘로 한 바퀴를 도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단풍나무가 크다. 작으면 앙증맞은 생각이라도 들겠지만, 오랜 세월을 품고 있어서 거대하다. 그런 모습에서는 믿음직한 아버지의 모습이 어려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이파리들이 그런 생각을 모두 가져가 버린다.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잡지 못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무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이파리들이 떨어져 나갔다. 끝 부분의 이파리들은 모두 다 떨어져 버렸다. 앙상한 가지가 맨살을 드러내놓고 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단풍 이파리와 비교가 된다. 나무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가을은 멀어지고 있고 겨울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곱게 물들어 있는 이파리에는 소중한 추억들이 배어 있다. 가슴 설레게 하던 연록의 새싹의 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 열정으로 사랑하던 한여름의 열기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역경의 시간도 들어 있으며, 고비를 극복하고 나서 한숨을 돌리던 여유까지도 모두 다 가슴에 품고 있다.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아련한 그리움이 되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기에 더욱더 절실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지난 기억들은 추억으로 승화될 수가 없고, 그리움으로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절박감이 더욱 애틋하게 만들고 되돌아 보게 한다.

 

그리움.


이 세상의 말에는 아름다운 말들이 참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마음을 은은하게 해주는 말은 바로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반추다. 다시 생각하는 것으로는 모자라서 음미하고 또다시 재음미하는 것을 말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우러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해주는 것이 바로 그리움이다.

 

그리움에는 폭발적인 힘은 없다. 그러나 기다리게 해준다. 기다림은 사랑의 참 맛을 느끼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힘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폭발하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게 되면 물불을 가리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부딪히게 되고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움에는 그런 다툼이 없다.

 

그리움에 젖어 있으면 마음은 온화해지고 편안해진다. 사랑하였던 사람이 온몸에 시나브로 차게 되고, 그 온기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생각만 하여도 미소가 번져나고 음미하게 되면 새록새록 감미로움이 배어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포근하고 행복한 일이란 말인가. 사랑과는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여유로서 되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떨어지는 단풍 이파리에도 이런 그리움이 배어 있다. 지난여름을 생각나게 하고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을 통해서 한 단계 더 큰 사랑을 알 수 있었다. 속절없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파리에도 포기와 체념보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람에 밀려 추락하고 있는 이파리들이 결코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땅에 떨어졌다고 하여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움으로 승화되어 자신을 삭히게 되면, 더 아름다운 내년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떨어지는 것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떨어져야만 더 나은 내일을 창조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떨어지는 단풍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속절없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면서 그리움으로 승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고운 빛깔로 떨어지는 이파리들이 햇살에 반짝이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우주의 행운을 기원하면서 떨어지고 있는 이파리들이 마음에 쌓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완주군에서 촬영


태그:#단풍, #이파리,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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