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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돌진남'이 제이유 사건 관련 수배자였는데, 최근 검찰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IN>은 이 사건의 전말을 취재해 최근호(10호)에 "구멍뚫린 사회 질주한 '벤츠 돌진남'의 정체"라는 제목의 기사로 보도했다. <오마이뉴스>는 <시사IN>의 양해를 얻어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말]
지난 2006년 11일 오후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차를 주차해놓고 시위를 벌이던 김경환씨가 자장면으로 점심을 먹은 뒤 삼성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 2006년 11일 오후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차를 주차해놓고 시위를 벌이던 김경환씨가 자장면으로 점심을 먹은 뒤 삼성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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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돌진남'. 지난 4월10일 휴대전화 서비스 불만을 이유로 2억원대 벤츠 승용차를 몰아 SK텔레콤 본사 사옥으로 돌진한 김경환씨(46)에게 언론과 네티즌이 붙인 별칭이다.

당시 김씨는 1억5천만원대 SKT본사 사옥 일부와 현관문을 파손해 기물손괴 및 폭력혐의로 구속됐다. 그러나 그는 구속된지 48일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김씨가 대부분의 언론에 사진까지 실리면서 널리 알려지자 그는 범법자보다는 힘없는 소비자 편에서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는 용기있는 ‘의인’으로까지 추켜올려졌다. 이런 여론에 부담을 느낀 SKT측에서 불처벌 탄원서를 넣어줌으로써 이례적으로 보석 석방을 받게 된다. 또 김씨는 억대 기물파손 부분에 대해서도 한푼도 변상하지 않고 넘어갔다.

석방 후 김씨는 9월18일 부서진 벤츠를 몰고 삼성 본관 앞으로 가서 차 위에 올라앉아 1인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 여러 언론에 중계되면서 다시 한번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휴대전화 제조사인 삼성전자를 상대로 불량을 사과하라는 시위였다.

잇따른 대기업 상대 돌진 시위에 수많은 언론이 사진까지 실어 관심을 기울이고 네티즌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이면서 일약 ‘스타’로 부각하자 그의 돌진 행각은 더욱 대담해졌다. 10월4일에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떠나던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행렬 앞에서 벤츠를 몰고 돌진시위를 하려다 효자동에서 사전 검문에 걸려 격리된 것이다.

SKT·삼성 이어 청와대까지 '돌진'... 네티즌 응원부대도 생겨

김씨의 이런 폭력적 기행에 대해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용기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대기업 횡포에 당당히 대처하는 행동이 부럽다’라는 반응이 나오며 응원부대까지 생겨났다. 심지어 ‘다음 돌진 대상은 어디?’라는 자극적 제목으로 그의 무모한 행각을 은근히 부추겨 흥행 소재로 삼는 곳들도 생겼다.

그러나 < 시사IN >이 추적한 결과 ‘벤츠 돌진남’은 사법 질서가 구멍 뚫린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허무맹랑한 인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스스로 밝힌 것처럼 고가의 벤츠를 구입해서 타고 다닐 만한 재력가도 아니었고, 번듯한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직장에 다니다 SKT 돌진 사태로 해직 피해를 입게 된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벤츠 돌진남’ 김씨의 진짜 정체는 단군 이래 최대 사기극이라 불리는 제이유사기사건의 중요 범죄에 연루되어 출국 금지된 밀항단속법 위반자였다. 그는 출국금지 상태에서도 중국과 한국을 유유히 오가며 제이유 관련 검찰 수사망을 교묘하게 피한 채 대기업들을 상대로 대담한 ‘돌진남’ 행태를 벌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언론과 네티즌, 더 나아가 피해 대기업과 검찰마저 김씨의 ‘유령행세’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꼴이었다.

김씨가 제이유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때는 지난해 6월. 당시 서울 동부지검이 제이유 그룹 사기사건을 대대적으로 수사하던 과정에서 20억원 대 부당이득과 배임, 횡령, 조세포탈 등을 저지른 주요 혐의자로 김경환씨가 걸려들었다. 제이유에 64억원대 물품을 납품해온 (주)솔로몬의 지혜라는 회사의 명의상 사장과 운영자는 문제의 돌진남 김경환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부지검 수사팀은 김씨가 바지사장으로서 이름만 빌려준 인물이지 실제 배후는 청와대 이재순 사정비서관과 친분이 두터운 강아무개 약사라는 단서를 잡고 수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이재순 전 사정비서의 동생과 재수씨, 부모 등 친인척이 제이유 그룹과 회원, 납품업자 등으로 깊은 연관을 맺고 거액의 부적절한 돈거래를 했다는 단서가 줄줄이 드러났다.

이 수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강아무개씨는 김경환씨가 실제 제이유 납품 회사 주인이자 운영자라며 모든 법적 책임을 김씨에게 떠넘겼다. 강씨의 주장대로라면 김경환씨는 제이유 사건에 연루된 중요 피의자이지만 검찰은 이를 거짓으로 보는 진술을 확보해 강씨를 기소했다. 강씨가 솔로몬의지혜라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제이유와 연관 있는 한샘닷컴을 통해 제이유네트워크에 64억원대 학습지를 납품하면서 20억원의 부당 이득금을 챙기는 배임행위를 했으며, 회사 공금 5억8천만원을 횡령했고, 부가세와 법인세 5억여원을 포탈했다는 혐의였다. 또 이 돈이 청와대 이재순 전 사정비서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했다.

이에 대해 강씨는 모든 책임은 서류상 회사 주인인 김경환씨에게 있다고 시종 맞섰다. 이재순 사정비서 및 친인척과의 돈거래는 모두 합법적 사업이었다는 입장이었다. 검찰은 증거 보강을 위해 김경환씨에 대해 출국금지를 내린 채 신원과 소재파악에 나섰다. 김씨는 이때 중국에 머문 채 강씨와 긴밀히 연락을 취하며 그녀의 재산을 관리해주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재순 청와대 사정비서관의 제이유 연루 혐의를 겨누던 동부지검 수사는 이후 뜻밖의 난항에 봉착한다. 올해 초 강씨가 동부지검 수사팀이 자기 사건을 수사하면서 공범 혐의를 받는 피조사자에게 무리한 진술 강요를 했다는 내용의 녹음 테이프를 한 방송사에 건네 폭로하면서 수사팀에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무회의 석상에서 이례적으로 검찰의 제이유 수사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파문이 확대되면서 선우 영 동부지검장은 옷을 벗었고, 담당 검사는 징계위에 회부돼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제이유 관련자 겁줘 활동 자금 타려 '돌진 행각"

이런 어수선한 틈을 타서 김경환씨는 올해 초 은밀하게 국내로 잠입해 들어왔다. 검찰에서
출국금지 시킨 상태였기 때문에 김씨는 이후 다른 사람의 여권을 훔쳐 3월12일 배편으로 중국에 밀항했다. 2주 후 위조 여권으로 다시 귀국한 김씨는 작심하고 강씨를 압박해 들어갔다. 강씨가 리스 형식을 빌어 마련해준 벤츠 500을 빌려 탄 뒤 갑자기 SKT 본사로 돌진해 ‘뉴스 인물’로 떠오른 것이다.

그 배경에 대해 김경환씨의 한 친구는 “강씨가 경환이를 검찰에 제이유사건 연루 주범이라고 떠넘기면서 악용하는 점을 폭로하겠다는 식으로 은근히 겁을 줘서 강씨로부터 활동 자금을 받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돌진남의 길을 택했다”라고 말했다. 확인 결과 그가 SKT와 삼성을 택해 돌진 행각을 벌인 벤츠500은 형식상 리스회사 소유로 돼 있지만 뒤에는 강씨가 자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씨가 돌진 행각 당시 휴대전화 서비스 불만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정작 김씨의 핸드폰은 강씨와 관련된 회사이름으로 등록된 것으로 밝혀졌다.

김경환씨가 SKT 본사 돌진 후 기물손괴 혐의로 구속돼 있을 때 변론을 맡은 변호사도 강씨측이 대준 변호사가 포함돼 있다. 강씨로서는 김경환씨의 돌진 행각으로 혹시 검찰에서 신원이 드러날 경우 재판이 진행 중인 자기의 제이유 연루 사건 법정에서 진실이 드러날까 두려운 입장이었다.

재판부에 확인 결과 SKT 돌진 후 구속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김씨는 지난 6월 강씨의 제이유 납품비리 관련 사건 담당 재판부에 강씨가 원하는 대로 자기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해 제출해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재판부도 검찰도 그가 ‘돌진남’ 김경환씨라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돌진남' 김경환씨의 정체가 탄로난 때는 지난 11월 18일. 서울 동부지검은 중국에 있는 ‘유령인물’로 자기를 알린 뒤 남의 여권으로 양국을 오가며 사법질서를 어지럽혀온 돌진남 김경환씨를 잠복 끝에 체포했다. 김씨가 체포됨으로써 피의자들로부터 ‘되치기’를 당해 본말이 전도된 검찰의 제이유 사건 관련 수사와 재판도 본궤도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태그:#김경환, #시사인, #제이유, #벤츠돌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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