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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내 남쪽에 위치한 한벽당과 한옥마을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벼랑같이 솟은 언덕 위에 세워진 오목대는 조선왕조를 세운 전주이씨에겐 상징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1380년(우왕 6년) 8월 500척의 대선단을 이끌고 진포(금강어귀)에 침입했던 왜구를 맞아, 전라북도 운봉에 있는 황산 서북의 정산봉에서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여 대승을 거둔 이성계가 귀경 길에 조상인 목조가 살았던 이곳에 들려 일가친지를 불러모아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오목대(梧木臺)  지방기념물 제16호. 당시 이성계가 취흥에 젖어 부른 <대풍가>와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 이방원의 <하여가> 등 많은 시문이 걸려 있다.
▲ 오목대(梧木臺) 지방기념물 제16호. 당시 이성계가 취흥에 젖어 부른 <대풍가>와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 이방원의 <하여가> 등 많은 시문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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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현판  석전 황욱(石田 黃旭/1898~1993 전북 고창) 선생은 독특한 필법인 악필법(握筆法)으로도 유명하다.
▲ 오목대 현판 석전 황욱(石田 黃旭/1898~1993 전북 고창) 선생은 독특한 필법인 악필법(握筆法)으로도 유명하다.
ⓒ 양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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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거나해진 이성계가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이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고향인 패(沛)로 돌아와 승전 연회에서 즉흥으로 지어 부른 대풍가(大風歌)를 읊었다고 한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야심을 넌지시 주위에 내비쳤던 것이다.

대풍가(大風歌)  여산 권갑석
▲ 대풍가(大風歌) 여산 권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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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風起兮雲飛揚   큰바람이 일고 구름은 높이 날아가네
威加海內兮歸故鄕 위풍을 해내에 떨치며 고향에 돌아왔네
安得猛士兮守四方 내 어찌 용맹한 인재를 얻어 사방을 지키지 않을소냐.


그러자 종사관 정몽주는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세울 뜻이 있음을 간파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홀로 말을 달려 오목대에서 지척인 남고산성 만경대에 올라 비분강개한 마음을 석벽제영(石壁題詠)이란 시로 읊었으며, 그 시가 남고산성 만경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석벽제영(石壁題詠)  월정 정주상
▲ 석벽제영(石壁題詠) 월정 정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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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刃崗頭石徑橫 천길 높은 산에 비낀 돌길을 홀로 다다르니
登臨使我不勝情 가슴에는 시름이여
靑山隱約扶餘國 청산에 깊이 잠겨 맹세턴 부여국(夫餘國)은
黃葉賓紛百濟城 누른 잎 휘휘 날려 백제성(百濟城)에 쌓였네
九月高風愁客子 9월 바람은 높아 나그네 시름 깊고
百年豪氣誤書生 백년의 호탕한 기상 서생은 그르쳤네
天涯日沒浮雲合 하늘의 해는 기울고 뜬구름 마주치는데
矯首無由望玉京 하염없이 고개 돌려 옥경(玉京, 개경)만 바라보네.


고려왕조를 부정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는 이성계와 고려왕조를 지키고자 한 포은 정몽주. 그들은 저승에서 서로를 용서한 것일까? 아니면 후세 사람들은 화해를 원하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엔 이방원이 정몽주의 마음을 떠보고자 지었다는 하여가(何如歌)와 이방원에 의해 죽음을 당한 정몽주가 고려에 대한 충성을 노래했다는 단심가(丹心歌)가 나란히 걸려있다.

 하여가(何如歌)
 하여가(何如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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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단심가(丹心歌)
 단심가(丹心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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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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