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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단풍의 보물창고, 모악산 등산로 입구. 천왕문 곁으로 난 모악산 오르는 길은 빨간 단풍으로 터널을 이루고 있다.
▲ 금산사 단풍의 보물창고, 모악산 등산로 입구. 천왕문 곁으로 난 모악산 오르는 길은 빨간 단풍으로 터널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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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늦은 듯싶어 주저한 소풍 길이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었습니다. 단풍 관광의 적기라며 가을 여행을 부추기는 뉴스가 신문과 방송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지만, 이곳 금산사의 가을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습니다.

서로 그다지 멀지 않은 지척이지만, 금산사가 기댄 모악산은 단풍철이면 발 디딜 틈조차 없을 만큼 관광객들로 들어차는 정읍 내장산에 견주면 훨씬 덜 붐빌 뿐더러 주말이 아닌 평일이면 낙엽 떨어지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만큼 고즈넉하기까지 합니다.

내장산보다 지리적으로 더 위쪽이어서 단풍이 색 바랜 채 낙엽이 되어 바닥에 뒹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밀물처럼 몰려든 관광객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간 ‘철 지난’ 내장산을 이미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록 끝자락일망정 금산사의 가을은 절정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단풍은 없다! 진초록에서 선홍색에 이르는 형형색색의 단풍잎이 나무 한 그루에 매달려 있다.
▲ 이보다 더 아름다운 단풍은 없다! 진초록에서 선홍색에 이르는 형형색색의 단풍잎이 나무 한 그루에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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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한결같은 산사라지만, 어느 계절에 가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금산사를 찾자면 상춘객과 단체 관광객들이 몰리는 봄과 여름보다는 스산한 바람에 마음마저 차분해지는 이맘때쯤이 제격입니다. 너른 절 안마당에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초겨울 어느 날 또한 괜찮습니다.

주차장을 벗어나 식당과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절 입구를 지나면서부터 금산사의 가을은 시작됩니다. 길가에 호위하듯 서 있는 나무들은 숲 터널을 이루고 있고, 그 길을 따라 오르는 20분 남짓의 산책은 걷는 것조차 사치일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까지 아스팔트로 포장을 해두었지만, 오가는 자동차가 많지 않을 뿐더러 누렇게 색이 바랜 은행잎들이 도로를 덮고 있어서 가을 정취를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외려 제법 센 가을바람이 빗자루가 돼 낙엽을 쓸어내고 있어 아쉬울 지경입니다.

단풍과 낙엽 속에 파묻힌 벤치 금산사에 이르는 산책로 곳곳마다 이런 호젓한 벤치가 놓여 있습니다.
▲ 단풍과 낙엽 속에 파묻힌 벤치 금산사에 이르는 산책로 곳곳마다 이런 호젓한 벤치가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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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비켜나 억지로 노견의 흙길로 들어갑니다. 수북이 쌓인 낙엽에 파묻혀 볼 요량입니다. 발에 밟혀 부서지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참 좋습니다. 견훤이 쌓았다는 부서진 석성을 돌아 오르니 곳곳에 돌로 된 벤치가 보입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앉아 쉬어가라는 듯 호젓한 자리마다 어김없이 놓여 있습니다.

계곡에도 늦가을이 한창이다. 낙엽에 덮여, 또 붉은 단풍에 비쳐 물빛을 보기가 어렵다.
▲ 계곡에도 늦가을이 한창이다. 낙엽에 덮여, 또 붉은 단풍에 비쳐 물빛을 보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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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거센소리를 내며 바람이 불어오더니 숲길에 낙엽이 한바탕 우박이 되어 내립니다. 어깨가 오싹해졌습니다. 평일(15일)이라 몇몇 나이 지긋한 등산객을 제외하면 오가는 사람 거의 없는 탓에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란히 흐르는 계곡에 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말라버려서가 아니라 떨어진 낙엽이 계곡을 온통 뒤덮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간혹 얼굴을 내민 곳에서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거울처럼 비쳐 투명한 물을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낙엽이 강물이 되어 꿈틀꿈틀 흐르는 모습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은행나뭇잎 사막. 절 안마당 한 켠에는 떨어진 은행나뭇잎으로 덮인 '사막'이 펼쳐져 있다.
▲ 은행나뭇잎 사막. 절 안마당 한 켠에는 떨어진 은행나뭇잎으로 덮인 '사막'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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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해도 우리나라에서 금산사만큼이나 너른 안마당을 가진 산사는 몇 안 될 겁니다. 포위하듯 둘러앉은 법당과 곳곳에 자리한 석조유물이 적지 않지만, 절 안 어디에서든 안마당을 보면 황량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황량함은 늦가을이라는 계절과 어울려 빈 듯하면서도 차분한 공간감을 연출합니다.

지붕 위에도 가을은 남아있다. 암키와 위에 수북이 쌓인 누런 낙엽이 가을의 마지막 몸부림 같다.
▲ 지붕 위에도 가을은 남아있다. 암키와 위에 수북이 쌓인 누런 낙엽이 가을의 마지막 몸부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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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의 지붕에도 가을이 소복하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거뭇한 기와지붕 위에 눈처럼 쌓인 누런 낙엽이 대비되는 색깔 탓에 더욱 도드라집니다. 절 안마당 한 켠은 노란 아예 은행나뭇잎으로 덮여 파란 하늘과 또 그렇게 어울리고 있습니다. 수북이 쌓인 그곳을 밟으니 차라리 낙엽의 ‘사막’입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3층 법당인 미륵전과 함께 금산사의 명물로 꼽히는 방등계단(方等戒壇)에 오릅니다. 이곳에 서서 내려다보는 금산사의 풍광은 탁 트여 시원합니다. 마치 산 정상에서 발아래를 내려다보는 맛이라고나 할까요?

묵직한 5층 석탑 한 기와 사리탑을 이고 있는 이 석물 위에는 파릇한 잔디가 촘촘히 가꾸어져 있는데, 그 위에 형형색색의 낙엽이 덮여 화사한 때깔이 또한 참 곱습니다. 그런 까닭인지 울타리로 쓰였음직한 잿빛 돌기둥이 꽃밭에 나란히 줄 서 있는 해맑은 어린 아이처럼 보입니다.

잿빛 석물마저도 붉은 빛을 띤다. 절 전체를 온통 누런 빛의 낙엽과 붉은 빛의 단풍이 에워싸고 있어 잿빛 석물마저도 때깔이 곱다.
▲ 잿빛 석물마저도 붉은 빛을 띤다. 절 전체를 온통 누런 빛의 낙엽과 붉은 빛의 단풍이 에워싸고 있어 잿빛 석물마저도 때깔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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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금산사의 ‘빠알간’ 가을을 가장 또렷이 볼 수 있는 곳은 절에서 조금 비켜난 곳, 모악산에 오르는 등산로 주변입니다. 천왕문 가까이 어른 키 높이로 쌓아놓은 담벼락에 이어지는 그 길가의 단풍은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빨간색입니다. 그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붉게 보이게 할 만큼 빨갛습니다.

고즈넉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한 늦가을 한 날 금산사 경내에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은 이곳뿐입니다.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연방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방등계단 위의 난간석 마치 꽃밭 위에 '앞으로 나란히' 하며 줄 서 있는 어린 아이처럼 느껴진다.
▲ 방등계단 위의 난간석 마치 꽃밭 위에 '앞으로 나란히' 하며 줄 서 있는 어린 아이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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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던 길을 돌아 내려가니 올 때보다 가을이 더 깊어졌습니다. 붉은 단풍은 낙엽이 되어 떨어진 듯하고, 초록빛 이파리는 불그스름하게 옷을 갈아입은 듯 느껴졌습니다. 이는 더 싸늘해진 날씨 탓인지, 아니면 파란 하늘을 어느새 덮어버린 구름 탓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단풍을 아직 보질 못했다면 더 늦기 전에 모악산 금산사를 찾을 일입니다. 조금만 주저해도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와 처연하게 색이 바랜 낙엽만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금산사는 지금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중입니다.

귀신사 경내의 모습 금산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부여 정림사탑을 빼닮은 한 기의 석탑과 여느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석수 등으로 유명한 귀신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누런 대봉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절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 귀신사 경내의 모습 금산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부여 정림사탑을 빼닮은 한 기의 석탑과 여느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석수 등으로 유명한 귀신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누런 대봉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절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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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금산사와 전주 방향으로 3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는, 이름조차 특이한 '귀신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감나무로 포위된 그곳의 가을 정취도 금산사 못지 않습니다. 다만 입구까지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도록 최근에 닦아놓은 아스팔트길이 조금 방해가 되긴 합니다만, 옛길을 따라 걷는 맛이 일품입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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