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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필자가 공인회계사로서 열심히 먹고살 때의 일이다. 당시 필자의 개인사무실이 서울시내 중심가의 상가 내에 있었기 때문에 자영업자를 많이 상대하였다.

 

하루는 의류도소매업을 하는 부부가 찾아왔다. 밤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의류소매상을 상대로 도매업을 하고 낮에는 일반 손님을 상대로 소매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부가 교대로 하루종일 가게에 붙어 있어야 했다.

 

"아니, 가게가 어려워 직원을 내보냈더니 어떻게 세금이 더 나오네요?"

 

사정은 이렇다. 처음에는 부인이 직원 둘을 데리고 가게를 혼자 운영을 했다고 한다. 남편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가게 매출이 줄어들자 직원 둘을 내보내고 남편이 대신 그 일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회사에서 사오정이라 자꾸 눈치를 주어 그만 두려고 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유전무세 무전유세

 

직원 둘을 내보내니 비용으로 처리할 인건비가 사라지게 되었다. 매출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직원 인건비 만큼 줄어든 것이 아니므로 전체적으로 장부상 이익은 늘어나게 되고 이익이 늘어나니까 세금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남편 분을 직원으로 하여 인건비를 신고했으면 될텐데요?"

"부부 간에도 직원으로 인정이 되나요?"

"실제로 직원처럼 일했으면 가족 간에도 직원으로서 인건비가 비용으로 인정됩니다."

 

그 부부는 환한 표정으로 나갔다. 그런데, 며칠 후 다시 어두운 표정이 되어 찾아왔다.

 

"제가 아는 사람이 회계사님 말대로 했다가 큰 봉변을 당했다던데요?"

"왜요? 세법에는 분명히 가족이라도 실제로 직원처럼 일했으면 직원 인건비로 인정을 해주도록 되어 있는데요."

"법에는 그렇게 되어있을지 몰라도 가족을 직원으로 처리하면 일단 탈세로 의심을 받고요, 세무조사가 나왔을 때 실제로 직원처럼 일한 것을 증명하라며 이것저것 귀찮게 요구한다고 그러던데요. 우리 같은 장사꾼들이야 법이 어떻든 일단 세무서한테 의심받는 것은 무조건 '사절'입니다."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세무서로부터 쓸데없는 오해를 받는 것이 싫어 법에서 보장한 권리마저 포기해야 하는 그들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가 두 자녀를 자신의 회사에 유령직원으로 등록한 사건을 접하고 오래 전 기억에 묻혀있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세법은 분명히 하나다. 그런데, 납세자는 두 종류로 나뉘어져 있다. 세무서가 무서워 법에 주어진 권리마저 포기해야 하는 납세자와 탈세를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힘센 납세자. 이러한 현실을 '유전무세 무전유세'(有錢無稅 無錢有稅)라고 하여야 하나?

 

이처럼 법과 현실의 괴리를 만든 일차적인 책임은 국세청에 있다. 국세청장의 구속으로 가뜩이나 땅에 떨어진 국세청의 권위와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명박 후보를 일반 납세자와 똑같은 기준으로 엄격히 처리하여야 할 것이다.

 

 

부패해도 능력만 있으면 다 용서된다고?

 

CEO 출신인 이탈리아의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는 총리에 오르기 전에 탈세를 비롯한 각종 부패스캔들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국민들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혐오감과 경제적으로 성공한 그에 대한 환상 때문에 그를 총리로 앉혔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는 개인적으로 치부하는데는 소질이 있을지몰라도 국가의 경제를 살리는데는 소질이 없었다. 그가 총리로 있는 동안 이탈리아 경제는 유럽에서 최악의 상태였고 정가는 각종 부패스캔들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만 빼고 온갖 화려한 경력을 다 갖추었다. 게다가, 수백억원대 자산가이다. 그러한 그가 자녀를 유령직원으로 등재시켜 결과적으로 수백만원의 세금을 빼먹었다. 돈에 대한 그의 집념이 쩨쩨함을 넘어서서 무섭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도 그는 지지율에서 여전히 부동의 1위이다. '부패해도 능력만 있으면 다 용서된다'고 착각하는 우리나라 국민은 더 무섭다.


태그:#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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