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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조선일보> 답다. 오늘(9일) <조선일보> 지면은 정보와 분석, 논평이 맡은 바 역할을 다 하면서 혼돈에 빠진 ‘이회창 정국’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지난달 29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 소식을 사실상 첫 보도(이회창 출마설에 날개 달아주는 <조선>)한 지 11일 만이다. 나름대로 방향을 잡았다는 이야기다.

 

대다수 신문들이 9일 혼미한 대선 정국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다루고 있는 반면 <조선일보>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미 하원 연설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부시가 사르코지의 어깨를 감싸 앉고 있는 사진을 곁들인 것이었다. 미국과 프랑스 보수 우파 정권의 밀월이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를 부각시킨 흔적이 역력하다. 반면 복잡한 보수진영의 사정은 ‘이재오 최고의원직 사퇴’ 등의 기사로 간단히 처리했다.

 

정치면은 이명박과 이회창, 그리고 범여 진영으로 3분해 각각 한 면씩을 할애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이회창 지지율이 이명박 지지율보다 더 높게 나타난 충청지역과 대구·지역의 여론 향배를 지역신문의 지지율 조사 결과와 함께 실은 점이다. 여론의 향배를 ‘쿨’하게 정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조선일보>의 ‘쿨’한 접근은 강천석 칼럼 ‘이명박과 이회창의 운명’에서 특히 돋보인다. 강천석 칼럼은 “정치는 도덕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정치는 야심가들의 독무대”라고 단정하고 이명박과 이회창, 그리고 박근혜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차분하게 조망하고 있다.

 

이명박과 이회창의 운명을 가를 최대의 변수 ‘박근혜 변수’를 비롯해 ‘BBK 김경준 증언의 폭발력’, 그리고 ‘범여권 후보 단일화 변수’ 3가지를 놓고 각기 가능한  시나리오를 전망했다. 박근혜로서는 경선 승복 효과로 얻고 있는 정치적 위광을 생각할 때 자신의 최대의 정치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경선 승복’ 약속을 저버리고, 이회창에 투자하는 ‘고위험-고수익’의 ‘이회창 증권’ 보다는 ‘저위험-중수익’의 ‘이명박 채권’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명박-이회창의 운명 조망한 <조선일보>... 변수는 '김경준 증언'

 

물론 변수가 있다. 김경준 증언의 폭발력이다. 그 폭발력이 예상 밖으로 커 관망층과 이명박 지지층에 동요가 일어난다면 이명박증권은 ‘투기등급’으로 굴러 떨어질 터이고, 그리되면 박근혜의 선택도 자유로워 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마지막으로는 범여권 후보의 후보 단일화. 그 역시 보수 유권자들의 몰아주기 심리가 표면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재오 최고위원의 때 놓친 사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박근혜 전 대표 측에게 다 넘겨줘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당권을 모두 넘겨주라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번 대선에서도 결국 한나라당의 ‘전략-전술 사령탑’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조선일보>의 오늘 지면 구성이, 특히 사설이 그것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만 ‘강천석 칼럼’의 분석처럼 몇 가지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이명박과 이회창, 그리고 박근혜의 행보와 그 역학 관계에 대해서는 그 추이를 냉정하게 지켜보기로 한 듯싶다.  일종의 ‘유연 전략’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조선일보>의 사설은 <조선일보>로서는 유동적인 보수진영의 표심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기도 하며, 이명박 후보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당권을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다 넘겨주지 않는다면, <조선일보>도 앞으로 전략적 파트너 선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조선일보>의 ‘계산된 줄타기’와는 달리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상대적으로 허둥대는 모습이다.

 

<조선일보>가 10월 29일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 소식을 사실상 첫 확인 보도할 때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낙마를 부른 ‘문제의 인터뷰’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실었던 <중앙일보>는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어제(8일)는 사설(이회창 출마는 ‘권력욕의 쿠데타’다)에서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를 “권력욕을 이기지 못해 민주주의를 뒤엎은 욕망의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당원, 국민을 핫바지로 아느냐며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전횡을 부리겠느냐”고 질타했다. “(지난 두 번의 대선 때) 대통령이 다 된 듯 오만했던 사람이 누구냐”며 “자기의 엄청난 과오는 잊고 지금 와서 ‘국민 여러분’ 어쩌고 하는 모습이 너무 뻔뻔스럽다”고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인물들 때문에 우리의 정신세계, 도덕세계는  더욱 황폐화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오늘은 그 화살을 이명박 후보에게 돌렸다. 오늘 사설의 제목은 ‘이번 사태의 책임은 이명박 후보에게 있다’다. “이명박 진영이나 한나라당은 이회창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당내 경선에서 겨우 1.5%로 이겨놓고도 ‘당권은 우리 것’이라고 거들먹거리며 박근혜 전 대표 측을 밀쳐냈다는 것이다. 또 “이회창 총재는 당의 원로”인데 정중하게 모시지 않고 언론을 의식한 겉핥기 대우만 했다는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 이회창으로선 얼마나 서운했겠느냐”고 질타했다. 어쨌든 “그(이회창)의 출마가 명분이 있든 없든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지지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회창도, 이명박도 동시에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바로 하루 전날 거의 ‘인격파탄자’로 비난했던 이회창에 대해 ‘원로 대우’를 소홀히 했다며 ‘입장을 바꾸어 보면 얼마나 서운했겠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너무 속 보이는 행태다.

 

그런 점에서 <동아일보>는 적어도 일관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관되게 ‘이명박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아일보>는 오늘도 사설(이회창씨가 다시 끌어들인 구태정치의 주역들)에서 이회창씨를 돕기로 한 강삼재, 서상목, 최돈웅씨 등을 거론하며 이들이 ‘세풍’과 ‘차떼기’의 주역임을 상기시키며 “이씨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이처럼 하나같이 ‘낡은 정치’와 ‘부패의 추억’들만 떠오르게 한다”고 질타했다. 또 ‘이제는 박근혜 전대표가 나설 때’라는 별도의 사설에서 이재오 최고위원도 사퇴한 만큼 박 전 대표는 “이 후보의 당선을 돕겠다고 선언해야” 하며 이회창씨에 대해서도 “잘못됐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냉온탕을 오가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그들의 선택은?

 

정리하면 <조선일보>는 ‘이회창 변수’를 사실상 인정하고 이명박 후보에게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당권을 넘기라고 주문했다. <동아일보>는 박근혜 전대표가 ‘무조건’ 이명박 후보를 돕고, 무조건 이회창 전총재를 비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중앙일보>는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공통점도 있다. 어쨌거나 세 신문 모두 한나라당에 대한 ‘정치적 후원자’ 역할을 내놓고 자임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자가당착의 모순도 드러난다. 따지고 보면 이회창 전 총재야말로 <조·중·동>의 입맛에는 딱 맞는 후보가 아닌가.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을 강도높게 비난했던 신문들이 바로 <조·중·동>이다.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회창씨가 정계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해 다시 대선에 뛰어든 것이 걸리긴 한다. 하지만, ‘그들의 가치’를 내세워 국민의 선택은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고, 국회 내에서 ‘소수의 극단적 횡포’를 적극 후원했던 신문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새삼 ‘정치도의’와 ‘민주주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도 생뚱맞다.


태그:#보수언론, #이회창 , #이명박, #박근혜,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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