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3일 오랜만에 홍대를 찾았습니다.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으면 구태여 찾지 않는 그 낯선 곳에 발길을 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새벽까지 새로 산 노트북과 씨름하다 늦게 잠든 바람에, 마음먹은 시간보다 늦게 일어나서 부랴부랴 뛰쳐나와 영화가 시작된 지 20분이나 지나서야 상영관에 도착했습니다.

 제2회여성노동영화제

제2회여성노동영화제 ⓒ 이장연


 상영일정표

상영일정표 ⓒ 이장연


 제2회 여성노동영화제가 열린곳은 홍대상상마당이었다. 하필 KT&G 상상마당이었을까?란 아쉬움이..

제2회 여성노동영화제가 열린곳은 홍대상상마당이었다. 하필 KT&G 상상마당이었을까?란 아쉬움이.. ⓒ 이장연


 여성노동영화제를 관람한 관객들

여성노동영화제를 관람한 관객들 ⓒ 이장연


사실 일터에 들려 전날 서랍에 놓고 간 카메라와 캠코더를 챙겨 갖고 나오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여간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전철역과 버스정류장을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땀 흘려가며 꼭 보고자 했던 영화는 제2회여성노동영화제 첫날 첫 번째 상영작인 '우리는 KTX승무원입니다'와 '첫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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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는 KTX승무원입니다'는 서비스 직종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며 항공기 스튜어디스에 견줘 그 명성이나 대우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KTX승무원들이 되고자 명예와 자부심을 쫓아 전국의 능력 있는 젊은 여성들이 모여들지만, 그곳에는 명예와 자부심은커녕 고된 노동과 임금착취, 인간적인 모멸감만 있었고, 이에 2006년 2월 파업과 투쟁에 나서지만 동시에 해고통보를 받고 2년 여간 낯선 투쟁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서효정, 공현숙, 옥유미 세 명의 승무원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한 영화를 통해 '왜 승무원들이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가?'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KTX 승무원입니다 We Are Railway Crew of KTX
한국 | 2006 | 30분 | DV | 컬러 | 다큐멘터리 |  공현숙, 서효정, 옥유미


 KTX승무원들의 투쟁은 1년을 넘어 2년이 되어간다.

KTX승무원들의 투쟁은 1년을 넘어 2년이 되어간다. ⓒ 이장연


영화 '첫차'는 2006년 11월 86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해소와 고용안정을 위해 제정된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국회에 통과한 직후, 사상 유례 없는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외주화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한국의 대표적인 공기업인 철도공사에서 정규직의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던 새마을호 승무원들도 외주화에 의해 내몰리면서, KTX승무원들의 투쟁을 이해하지 못하던 그들이 철도공사의 기만과 노동착취,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투쟁에 나서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호소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아래 감독과의 대화 영상 참조)

첫차
한국 | 2007 | DV | Color | 62분 27초 | 다큐멘터리 | 남정애


 영화 '첫차'가 끝난 뒤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영화 '첫차'가 끝난 뒤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 이장연


두 영화를 연달아 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교차했습니다. 모 대학 연구소에서 비정규직 임시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저 자신의 처지도 그랬지만, 만연한 차별과 착취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과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 묵살하고, 이들의 투쟁을 교묘히 파괴하며 '비핵심 업무에 대한 외주화'를 외치는 철도공사에 대한 울분이 더 크게 일었습니다.

 철도공사의 노동탄압은 끝나지 않고 있다.

철도공사의 노동탄압은 끝나지 않고 있다. ⓒ 이장연


노동자들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세상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되곤 하는 정규직과의 연대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자본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갈가리 찢어놓았는지도,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파업과 농성에 나선 이들에게 자본과 국가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내보이는 싸늘한 시선들도 새삼 엿보았습니다.

하지만 정규직이란 꼬리표를 단 그들도 그 자리를 지키기 쉽지 않다는 암울한 현실과 노동자들이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각성하고 투쟁과 연대에 나서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살기 위해, 돈 벌기 위해, 차별과 착취를 감수하고 투쟁보다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비정규직을 택하는 모습에선 안타까움보다,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지긋지긋한 사회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일었습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절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절규 ⓒ 이장연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절규와 외침 그리고 투쟁을 두 영화를 통해 보았습니다. 영화도 보았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단 내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차별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위해 무엇에 어떻게 저항을 끊임없이 해야 할지에 대한 결단 말입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삶은 어디로 가는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삶은 어디로 가는가? ⓒ 이장연


▲ 영화 '첫차' 감독과의 대화 ⓒ 이장연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제2회 여성노동영화제는 내일(6일) 폐막합니다. 시간되시는 분들은 꼭 가보시길. 특히 이젠 어쩔 수 없이 차별과 착취의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권합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영화제 KTX 새마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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