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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숙제 여기 있습니다.”
  “그래? 어디 보자. 음. 아주 잘했구나. 수다.”

 

  준섭이가 내민 공책에는 투박하지만 빽빽하게 글자들이 써있었다. 비록 띄어쓰기는 되어 있지 않았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였다.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당당한 모습이다. 숙제를 해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칭찬을 하니, 계면쩍은 듯 미소를 짓는다. 아이의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2 학년이 되던 첫날의 아이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의 행동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서불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2 분 이상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고집은 왜 그리 센지, 대책이 서지 않을 정도였다. 한번 작정을 하면 아예 다른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학용품을 가지고 오는 날보다 가지고 오지 않는 날이 훨씬 더 많았다.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학습을 하고 싶지 않을 때 학용품을 가져오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연필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핑계가 되고 있었다. 연필이 없어서 공부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이의 이런 태도는 날 난감하게 만들었다.

 

 

  아이의 생각은 분명하고 조리가 있었다. 앞과 뒤가 연결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만약 이런 생각이 아예 없다면 더욱 더 큰 문제였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에게서 희망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미하지만 목적을 가지고 의도하고 있으니, 그 방향을 바꾸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부터 줄다리기는 시작되었다. 아이의 의도가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학습을 하지 않으려고 얕은꾀를 활용하고 있음을 선생님이 알고 있다는 점을 아이에게 확인시켜주었다. 아이의 숨은 뜻을 밝혀냄으로써 아이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지도한 것이다.

 

  선생님을 속일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아이의 생각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발문을 바탕으로 하여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연필을 직접 깎아주는 등 애정 표현도 수없이 많이 실천하였다. 그러나 1 학기가 다 가도록 아이의 사고의 방향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선생님 아이들이 나를 왕따시켜요.”
  다양한 노력으로 아이의 작전이 실패를 거듭하게 되니, 최후의 수단으로 동원한 아이의 묘안이었다. 초등학교 2 학년으로서 ‘왕따’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아이는 이용하고 있었다. 자신이 제대로 학습에 임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다 친구들 탓이라는 것이었다. 이것 또한 구실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꾸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 스스로 그렇지 않다는 점을 증명해주어야 하였다.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아무리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하여도 소용없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무기화하고 싶은 아이에게 무기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이의 행동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나갔다.

 

  9월이 그렇게 갔고 10월이 갔다. 아이는 스스로 알아차리기 시작하였다. 최후의 무기가 무용지물이 되었음을 알아차린 아이는 변하기 시작하였다. 행동 수정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섣불리 기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 순간을 잘 극복해야 변화된 행동이 정착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홍조를 띤 아이의 얼굴은 곱게 물든 단풍을 닮아 있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아름답게 물든 단풍처럼 아이의 행동도 변하고 있었다. 앞으로 지속적인 지도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흐뭇한 마음이 든다. 가을을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였던가? 아이의 웃음에서 수확의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다.”

 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일이 어렵고 힘들수록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선생님은 기꺼이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이다. 곱게 물든 단풍처럼 웃고 있는 아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지리산에서


태그:#발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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