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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에 있는 소쇄원 제월당
 전남 담양에 있는 소쇄원 제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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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을 지나 소쇄원 입구에 들어서니 '흐르는 시내 돌을 부딪쳐 오니/ 돌 하나 온 골작을 꿰뚫었구려/ 한 필 베는 중간에 펴져 있고/ 기운 벼랑 하늘이 깎아지른 듯하네'라고 노래한 조선시대 김인후의 '소쇄원사십팔영'처럼 소쇄원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들이 눈앞에 거대한 동영상처럼 펼쳐진다.

'소쇄소쇄, 대숲에 드는 소슬바람에 무엇을 마구 씻는가 했더니 한 무리 오목눈이가 반짝반짝 날아오른다'고 노래한 담양의 고재종 시인의 시처럼 글자 그대로 '맑을 소(瀟)' 자에 '깨끗할 쇄(灑)' 자를 써서 그 이름만 들어도 깨끗해지는 소쇄원. 나의 몸과 마음도 대숲에 드는 소슬바람에 깨끗하게 씻어져 청청 맑은 하늘 높이 드리워진 댓잎 끝에 머문다.

오늘은 상강, 저 진갈매빛 한천 길엔
소쇄소쇄, 씻고 씻기는 기러기며와
소쇄소쇄, 씻고 씻기는 푸른 정신뿐


나 본래 가진 것 없어 버릴 것도 없나니
나 여기 와서는 바람 들어 쇄락청청
나 여기 와서는 달빛 들어 휘영청청

- 고재종의 시 '소쇄원에서 시금(詩琴)을 타다' 중에서

전남 담양 가사문학관에 전시된 이 책에는 소쇄원 경영에 대한 사실을 양산보의 후손이 쓴 글이다.
▲ 소쇄사실 전남 담양 가사문학관에 전시된 이 책에는 소쇄원 경영에 대한 사실을 양산보의 후손이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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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에 앉아보면 옛 선인들의 평화로운 삶을 느낄 수 있어서 자주 소쇄원을 찾는다는 박미숙씨는 제월당으로 오르고 있었다. 김인후 시 '소쇄원사십팔영'의 배경을 차례로 돌아다니며 그 시를 음미해보면 시의 의미가 저절로 이해가 되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처음에 뭘 모르고 소쇄원에 왔을 때에는 어떤 좋은 곳이라는 의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오면 올수록 좋은 의미로 다가와 자주 찾습니다. 소쇄원에서 옛 선인들의 삶을 느낄 수 있고, 그분들의 평화로운 삶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특히 분주한 도시에 살면서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사시는 분들은 가끔 이 소쇄원을 찾아 평화로움은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4일 오후 4시, 조선시대의 사림들이 많은 정자와 누각을 짓고 빼어난 자연 경관을 벗 삼아 한문 중심의 시대에 한글로 지은 문학을 활짝 꽃을 피웠던 전남 담양과 무등산 밑 광주호 부근의 가사 문학관을 찾아 광주에서 출발하였다.

황운이 일어나는 넓은 들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먼저 무등산 한 줄기 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멀리 떨어져 나온 제월봉 너럭바위 위에 세운 '면앙정'을 찾았다. 면앙정은 담양 나들목에서 광주 쪽으로 오는 길목인 봉산면 제월리에 있다.

도로에서 내려 대나무 숲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수많은 수령 200년이 넘은 참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우뚝 서 있고, 주변에도 많은 참나무들이 가득하다. 정자는 넓은 담양들이 가장 잘 바라보이는 곳에 지어져 있는데, 황운이 일어나는 넓은 들 너머에 추월산, 용구산, 금성산 등이 병풍처럼 허공에 펼쳐져 있다. 정자에는 많은 시문들이 적힌 편액들이 처마 밑과 천정에 걸려 있었다.

나모 새 자자지어 綠陰(녹음)이 얼린 적의 百尺(백 척) 欄干(난간)의 긴 조으름 내여 펴니 水面(수면) 凉風(양풍)이야 긋칠 줄 모르난가. 즌 서리 빠딘 후의 산 빗치 錦繡(금수)로다. 黃雲(황운)은 또 엇디 萬頃(만경)의 펴겨 디오. 漁笛(어적)도 흥을 계워 달랄 따롸 브니난다.

- 송순의 '면앙정가' 중에서

이 곳 담양 일대가 가사문학의 바탕이 된 것은 송순으로부터이다. 호가 '면앙'인 송순(1493~1582)은 성종 때 관직에서 물러나와 이곳에 면앙정을 짓고 많은 선비들과 교유하면서 학문과 시문 창작을 하여 '면앙정가'를 비롯한 가사와 시조, 그리고 600여 수에 이르는 한시를 지었다.

전남 담양에 있는 면앙정
 전남 담양에 있는 면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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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에 있는 송강정
 전남 담양에 있는 송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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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 송강정 천장에 있는 편액에 쓰인 송강의 글
▲ 송강정 편액 전남 담양 송강정 천장에 있는 편액에 쓰인 송강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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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에서 조금 더 광주 쪽으로 나오면 고서면 원강리에 '송강정'이 있다. 송강정 앞엔 도로 공사 중이어서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길옆에 차를 세워두고 돌계단을 올랐다. 송강정은 면앙정과는 달리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가득하였다.

'송강정(松江亭)'은 정철(1536~1593)이 세운 정자로 처음에는 '죽로정'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정자에는 '송강정'과 '죽로정'이라는 편액이 각각 걸려 있다. 송강정 앞에도 그 넓은 담양의 들이 한눈에 보이고, 정자 앞에 시냇물이 유유히 흐른다.

송강 정철은 송순을 비롯하여 임억령, 양산보, 김성원, 기대승, 고경명 등 당시의 명사들과 같이 학문을 닦았는데, 송강이 50세인 선조 18년에 잠시 벼슬에서 물러나 이곳에 송강정을 짓고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었다. 

잔물결에 튀기는 해질녘 햇살은 그리움을 쏟아낸다

차를 몰아 고서면 산덕리에 있는 '명옥헌'을 찾았다. 명옥헌은 오이도(1619~1655)가 정자를 지었는데, 정자 앞에 연못을 파고 주위에 적송과 배롱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7월 말부터 9월까지 명옥헌은 붉은 배롱나무꽃이 하늘과 연못까지 가득하여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배롱나무꽃이 다 지고, 그 잎마저 떨어져 연못 위에는 몇 잎의 낙엽이 떠 있었다.

명옥헌에서 광주호를 타고 돌면 남년 지실마을에 있는 정자 식영정과 환벽당, 그리고 가사문학관 등이 나온다. 우선 식영정 오르는 길엔 큰 소나무들이 손을 내민다. '그림자를 끊는다'는 '식영정(息影亭)'은 명종 15년(1560)에 서하당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임억령을 위하여 지었다는 정자이다.

전남 담양 식영정에서 바라보이는 소나무와 광주호
 전남 담양 식영정에서 바라보이는 소나무와 광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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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 식영정에서 바라보이는 광주호의 모습
▲ 광주호 전남 담양 식영정에서 바라보이는 광주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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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 식영정 옆에 세워진 성산별곡 시비
▲ 성산별곡 시비 전남 담양 식영정 옆에 세워진 성산별곡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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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 옆에는 검정 대리석으로 세운 '성산별곡'이라는 시비가 있는데, 이 성산별곡은 송강 정철이 이곳 식영정에서 지은 가사이다. 지실마을 뒷산인 별뫼에 떠 있는 별들의 아름다움과 자연에 묻혀 사는 서하당 식영정 주인의 산중 생활을 찬미하고 있는 시다.

식영정 주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즐비한데, 그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광주호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잔물결에 튀기는 해 질 녘 햇살은 소나무 사이를 뚫고 식영정 기둥에까지 어른거리며 그리움을 쏟아낸다.

식영정 옆에 있는 '가사문학관'은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가사문학 관련 유산의 전승과 보전, 현대적 계승, 발전을 위하여 1995년부터 건립을 추진하여 2000년 10월에 완공하였다. 송순의 면앙집과 정철의 송강집 및 친필 유물 등 귀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규방가사, 백광홍의 관서별곡, 허난설헌의 규원가 등 많은 가사문학에 대한 자료와 임억령, 양산보, 김인후, 김성원, 고경명 등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서태지의 노래의 원조는 바로 '사설시조'!

전남 담양 남면에 있는 가사문학관
 전남 담양 남면에 있는 가사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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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문학관 내에는 가야금 병창을 바탕으로 한 느린 가락의 노래가 들려오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가사자료를 관리하는 박명선씨는 이 노래가 명앙정와 속미인곡에 전남대 최재률 교수와 서해대 김삼곤 겸임교수가 새로 곡을 붙인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라는 노래를 불렀을 때 난 손뼉을 쳤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나라 가요사에 한 획을 그어버린 이 노래는 랩이라는 새로운 장르이다. 아주 생소한 그러면서도 엄청난 충격을 준 이 노래가 갑자기 떠오른다.

그렇다. 가사는 노래이다. 시조도 노래이다. 시조의 긴 가락에 무료하다 보면 빠른 가락을 좋아하게 되고, 그래서 만들어낸 노래가 사설시조일 것 같다. 그리고 가사도 시조보다 빠른 가락으로 읊어대는 노래일 것 같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시조와 사설시조를 설명할 때 가곡과 랩을 비교하여 설명하였고, 서태지의 노래의 원조는 바로 사설시조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우리나라 고전문학 교육이 잘못된 것 같다. 고려가요나 시조, 가사 모두 국어 시간에 가르치는 것보다 음악 시간에 가르쳐야 한다. 국어 시간에 가르치는 것은 단지 뜻을 파악하고, 그 특징을 파악하는데 급급하다. 그 가사에 실려 있는 노래를 잃어버린 교육, 바로 우리 고전 시가들을 가르치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가사도 어떻게 부르는지 모른다. 그래서 현대의 작곡자가 4.4조의 가야금 병창으로 작곡을 하였으니 느릿느릿 길게 늘어진 곳으로 들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박명선씨 말처럼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찾아오면 학생들이 늘어지는 노래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 노래를 꺼 놓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사를 노래로 부른 흔적이라도 남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박명선씨는 안동지방에 있는 내방가사를 전승 보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가사 낭송대회에 참가하였는데 전승방식대로 낭송을 하여서 최우수상을 탔다는 것이다.

안동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내방가사를 전승 보존하는데 앞장서는 '안동내방가사전승보존회' 이선자 회장은 가사 낭송을 하는데 현대 시를 낭송하듯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가사는 우리가 어렸을 때 서당에서 들었던 '명심보감'이나 '천자문'을 읽듯이 낭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사를 부를 때에는 시조창과는 다릅니다. 회고가나 화전가, 여행가 등을 노래할 때는 많은 흥을 넣어 부르기 때문에 육자배기 민요를 부르는 것 같이 하고, 교훈가를 부를 때에는 꼭 서당에서 명심보감을 읽는 것처럼 빠르게 부릅니다."

그러면서 "여보시오 벗님내들 이내 말씀 들어 보소" 하면서 시작하는 내방가사 교훈가 한 대목을 불러 주었다. 자세한 내용들은 '안동내방가사보존회 홈페이지'를 찾아보라는 말과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두는 젊은이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좋은 일로 "앞으로 젊은이들이 소멸해가고 있는 우리의 규방가사를 배워 우리 선인들의 흔적을 찾고, 그분들의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전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이선자 회장의 내방가사를 들으면서 가사를 어떻게 부르는지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노래는 잠결에 어머니께서 읊조리던 중얼거림처럼, 아님 서당 아이들이 떼를 지어 외쳐대는 천자문처럼 편안하게 마음 가득 들려온다. 우리의 소리가 마음 에 감동스럽게 울려 퍼진다. 

소쇄원을 찾았을 때에는 해가 져서 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지실마을 별뫼 뒤 능선에 보름달이 고개를 들어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물소리며 새소리, 댓잎 서걱대는 소리, 밤하늘에 하얗게 떠오르는 별들과 달 등 소쇄원 광풍각에 누워서 오랫동안 그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 몸이 조금은 씻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전남 담양 소쇄원 광풍각
 전남 담양 소쇄원 광풍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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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태그:#가사문학관, #담양 가사문학, #식영정, #명앙정, #소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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