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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공동장례위원장이 24일 밤 9시 마산 신마산병원 영안실에서 열린 '고 강도아 할머니 추모제'에서 추도사를 읽고 있다.
 이경희 공동장례위원장이 24일 밤 9시 마산 신마산병원 영안실에서 열린 '고 강도아 할머니 추모제'에서 추도사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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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생각했지. 그래도 우짜노. 내 하나 고생하면 온 식구가 그래도 굶지는 안 할 것이라는 마을이장과 그 아저씨 말대로 갔던 것이제.”

23일 밤 11시경 운명한 고 강도아 할머니의 영정 아래에 성경책과 국화꽃이 놓여 있다.
 23일 밤 11시경 운명한 고 강도아 할머니의 영정 아래에 성경책과 국화꽃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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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꽃다운 14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을 때 상황을 이렇게 들려주었던 고 강도아 할머니. 올해 85살인 강 할머니는 23일 밤 11시경 눈을 감았다.

그런 할머니를 그냥 보내드릴 수 없다고 여긴 사람들이 모여 ‘작은 추모식’을 열었다. 24일 밤 9시 경남 마산 신마산병원 영안실. ‘고 강도아 할머니 시민사회장 장례위원회’가 마련한 추모제에는 50여명이 모였다.

묵념에 이어 공동장례위원장인 이경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가 추도사를 했다. 이 대표는 먼저 “어머니!”라고 불렀다. 이어 “왜 자꾸만 목이 메이는지요. 이제 어머니의 그 기나긴 고통의 여정이 끝났는데도 왜 자꾸 눈물이 차올라 오는지요?”라고 말했다.

“어린 소녀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만 하면 가족들의 주린 창자를 채워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부산항에서 시모노세키로, 타이완으로, 그리고 이름 모를 전쟁터들을 거쳐 인도네시아까지 끌려 다니며 전쟁과 침략의 야욕에 굶주린 군화발에 무참히 짓밟히고 농락당했습니다.”

이 대표는 고 강 할머니가 했던 말이라며 소개했다. “해방이 되고 보니 돈이 한 푼이 있어야제. 한 닢도 없는기라. 같이 있던 동무들은 죽고 없어지고…. 세상천지에 홀홀단신인기라”라고.

이 대표는 “이 조국은 이 소녀를 어떻게 맞이했나요? 두 팔 벌려 위로의 꽃다발로 맞이해도 모자랄 우리 조선의 딸은 오히려 누가 알아볼까 가만가만 숨죽여 살고, 입 다물어 파묻고 살아야 했지요. … 어머니, 어떻게 그 기막히는 고통과 피눈물 나는 세월의 한과 분노를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우리는 어머니를 통해서 역사를 다시 보게 됩니다”라고 추도사를 이어갔다.

"두 손 모아 빕니다 ... 우리 안의 책임이 큽니다"

이어 김영만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상임대표는 “살아서 못다 피워본 꽃을 피우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는 말을 하면서 추도사를 시작했다.

그는 “나라 지도자가 못 나고, 부패했기에 희망과 사랑이 솟아나는 조선의 딸들이 육체와 영혼이 찢기는 고통을 겪었습니다”라며 “그 일본보다 더 치를 떨게 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원인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통영에서는 내년에 친일문인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강주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처장은 “보고 싶다고 전화를 주셨을 때 오지 못했습니다. 만나면 언제든지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좀 더 일찍 아픈 상처를 토해 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송도자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하는 거제통영시민모임’ 대표는 “그리운 도아 어머니. 꽃 다운 나이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셨습니다. 늦게 세상 밖으로 나오신 어머니를 보듬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머니의 그 깊은 슬픔을 가슴에 새기며 정의를 세우는 길을 걸어가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묵념.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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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눈물꽃이여"

이날 추모제에서는 동요 부르는 어른모임인 ‘철부지’(고승하·김영만·김유철)가 추모곡 “못 다한 사랑”(글 문익환, 곡 고승하)을 불렀다. 이어 장정임 시인이 쓴 조시 “그대 조선의 십자가여”를 한 장례위원이 낭송하기도 했다.

“뉘라서 그대 피묻은 전신을 씻어/그대 긴 심장을 기워 온전히 잠들게 하랴/조국보다 먼저 짓밟히고 해방보다 먼저 잊혀진/조선의 눈물꽃이여…”(시 “그대 조선의 십자가여” 일부).

고 강도아 할머니의 영정 아래에는 성경책과 국화꽃 송이가 놓여 있었으며, 창원·마산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빈소에는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과 권영길 의원, 황철곤 마산시장, 이흥석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허정도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 등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었다.

'고 강도아 할머니 추모식'에는 50여명이 모였다.
 '고 강도아 할머니 추모식'에는 50여명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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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에 취업사기로 끌려가

고 강도아 할머니는 경남 하동 출생. 고인은 1940년경 취업사기로 끌려가 대만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1946년 고향으로 돌아오신 할머니는 진주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최근 마산에 있는 요양원에서 지내왔다. 강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난소암과 싸우다가 지난 23일 밤 11시 운명하셨다.

강주혜 사무처장은 “강 할머니는 2005년 ‘일제시대 강제동원과 피해자 진상조사’가 이루어졌을 때 신고하신 분이다. 그 이전에는 그같은 사실을 숨기고 사셨던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계속해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하늘나라로 가고 있다. 경남에만 올해 총 6명이 사망했다. 통영거제에서 지난 8월 2명, 산청에서 3명이 먼저 돌아가신 것.

경남에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총 13명이 생존해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110명(여성가족부 집계 111명)이 생존해 있다. 거제통영시민모임은 현재 85~90살인 4명의 할머니를 돌보고 있으며, 지난 5월 결성된 마창진시민모임은 7명의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양산과 김해에도 1명씩 있다.

강 사무처장은 “할머니들은 대개 쓸쓸하게 가신다. 울산의 한 할머니는 불러서 갔더니 장례비용을 맡기기도 하더라”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최근 사망하면 천안에 있는 ‘망향의 동산’에 묻힌다. 이곳은 정부에서 재외동포들을 위해 마련한 국립묘지로, 위안부 할머니는 20여명이 묻혀 있다.

고 강도아 할머니는 3일장으로 치루어졌는데, 25일 아침 발인제가 열렸다. 강 할머니의 시신은 마산 진동에 있는 화장장에서 화장한 뒤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장된다.

이경희 대표는 추도사 마지막에 말했다.

“어머니,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의연하셨던 강도아 어머니! 여자라고, 가난하다고, 힘없는 나라의 백성이라고 수탈하고 착취하고 마구 끌고가는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에서 비록 찢기고 짓밟혔지만 그 누구보다 고귀하고 정결한 몸과 마음 누이시고, 고이고이 잠드십시오.”

고 강도아 할머니의 빈소에는 장하진 장관과 권영길 의원, 황철곤 마산시장 등의 조화가 진열되어 있었다.
 고 강도아 할머니의 빈소에는 장하진 장관과 권영길 의원, 황철곤 마산시장 등의 조화가 진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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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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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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