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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과 철학인가? 아니면 기회주의적 줄대기인가?


2007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언론인과 교수의 정치참여가 전례없이 활발하다. 각 당 후보 경선과정에서부터 특정 후보에 대한 교수들의 지지선언이 잇따르고 언론인 출신으로 매머드급 공보팀을 꾸리는 것이 추세가 됐다. 폴리페서(politics+professor)와 폴리널리스트(politics+journalist)라는 다소 부정적인 단어가 유행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소속 김동철 의원에 따르면 각 정당 대선주자 캠프에 자문교수단으로 참여하고 있는 폴리페서는 무려 538명.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이 있기 전인 지난 9월 9일에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캠프에 약 1000명의 교수가, 손학규 정동영 후보 캠프 교수 규모 역시 각각 350여 명과 1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대선 시즌, 언론인-교수 앞다퉈 여의도행


바야흐로 '시즌'이다. 정치를 위해 기자들은 붓을 꺾고, 교수들은 책을 놓고 있다. 어제까지 이들의 생존 이유요, 업(業)의 대상이었던 독자들, 제자들은 이제 이들에게 '유권자'일 뿐이다. 국장, 부국장, 정치부장, 심지어 해외에 특파원으로 나가있던 기자들까지 노트북을 반납하고 여의도행을 택하고 있으며 연구를 목적으로 상아탑을 지키던 교수들도 유력 후보 주위에 빼곡하다.


기자와 교수들의 정치참여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고유의 역할과 사명을 망각한 행위라는 의견과, 전문가 집단의 현실 정치 참여는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어려운 문제다. 해묵은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냥 그들의 선택에만 맡기고 관망하기에는 우리사회에서 이들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이 너무나 크다.


 

새언론포럼이 24일 오후 4시 프레스센터 18층에서 '2007 대선 언론인과 교수의 정치참여, 어떻게 볼 것인가'는 토론회를 연 까닭도 여기에 있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가 발제하고 CBS 변상욱 대기자가 사회를 본 이날 토론회에는 주제에 걸맞은 이해당사자들이 고루 참석했다. 함영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언론특보는 조선일보 사회부장 출신이고, 권만학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캠프에서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교수는 폴리페서와 폴리널리스트가 늘어나는 이유를 설명하며 '노무현 학습효과' 주장을 폈다. 2002년 대선에서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소수의 교수그룹이 권부의 핵심에 진입하는 것을 보고 대선주자캠프에 줄서는 교수들이 대거 늘어났다는 것이다.


김창룡 교수 "노무현 학습효과 있다"

 

김 교수는 노무현 학습효과의 범주에 언론도 포함시켰다.


"주류 언론에 포함된 적이 없었거나 언론외곽 조직에서 맴돌던 노무현 후보 주변 언론인들이 대거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정부의 요직, 공기업 사장, 감사 자리는 이런 언론인 출신들이 낙하산으로 차지하는 것을 언론계 후배, 동료들이 너무나 자세하게 목격했다"


그렇다면 폴리페서, 폴리널리스트는 부정적 측면만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정치를 정치인이나 정치꾼에게만 맡기지 않고 각계 전문가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정치권 스펙트럼을 다양화했다는 점, 전문성을 행정과 정책에 직접 적용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 지방자치제의 본격적 도입 등으로 선거가 잦아진 만큼 선출직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으며 이런 수요를 메워줄 우수 인재집단의 정치계 유입은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런 긍정적인 요소들을 경계했다. "추상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부정적 요소는 매우 구체적이며 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긍정적 요소가 개인별 양식과 정치적 소양에 따른 편차가 심하다면 부정적 요소는 개인편차와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학계, 언론계 전반에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폴리널리스트는 상호 감시, 견제의 구조를 허물어버리게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비약될 소지가 있다…. 폴리페서의 등장은 학문연구풍토를 저해하고 학계의 권력지상주의를 부추기게 될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웬만한 교수치고 직간접적으로 캠프에 관계를 맺지 않은 교수가 이상하게 보일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언론에 드러난 폴리페서나 폴리널리스트보다 드러나지 않은 채 특정당과 특정후보를 돕는 것이 폐해가 더 심각하다…. 이것은 페어플레이를 막고 유권자들의 올바른 판단을 방해한다는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적이다."


이명박·정동영 캠프 참모-현직 기자들 '견해 차이'


김 교수의 발제에 이어 함 특보, 권 교수가 발언에 나섰다. 이들은 대체로 김 교수 견해에 동의했지만 몇몇 부분은 지적하고 넘어갔다. 함 특보는 "언론인 출신으로 캠프행을 택한 사람을 모두 폴리널리스트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여의도 정치에 익숙하지 않고 일 중심적인 사람들의 역할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고, 권 교수는 "정치와 언론의 결합은 원칙적으로 문제가 없다. 폴리페서는 폴리틱스와 프로페서의 겹쳐놓은 것일 수도 있지만 폴리시(정책)과 프로페서의 합성어라고 할 수도 있다"며 긍정론을 폈다.


대체로 무난하게 진행되던 토론회 분위기는 현직 기자들에게 마이크가 넘어가면서 달라졌다. 동료들이 줄줄이 정치권으로 떠나는 것을 봐온 이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엄연히 달랐던 것이다.

 

박래부 한국일보 논설실장은 '원칙론'을 폈다. '난장판' '보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박 위원은 그동안 꽤 많은 논설위원실 동료들을 정치판으로 보냈다고 했다.


"논설위원실에서 일한 지 10여 년 됐는데 그 동안 5명이 '폴리널리스트'로 갔다. 언론과 권력이 구분 안 된다. 놀라운 속도로, 또 놀라운 수가 옮겨가고 있다. 기자들의 자기 영역이 있다. 그러면서 결국 원칙없는 사회로 가고 있고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든 교수든 자기 직업에 대한 긍지를 높이고 스스로 장치를 만들 필요도 있는데, 현재로선 견제장치가 전혀 없지 않나."

 

 

<경향> 이재국 "현직기자, 특정 후보 캠프 회의에 참석하기도"


마지막 토론자 순서. 그동안 다른 토론자들의 원론적 얘기를 듣고만 있던 이재국 경향신문 국제부 차장이 용기를 냈다. 폴리페서와 폴리널리스트의 저급한 행위, 기본적인 '선'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차장이 그 선을 그었다. 실명 비판이었다.


이 차장은 우선 김성이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예로 들었다. 김 교수는 지난 17일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회의에 사회복지 분야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참석해 "복지는 국민을 편하게 해주는 건데 '2대8'이라며 국민을 불안하고 분열시키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겨냥한 것이다.

 

그 김성이 교수가 이튿날 <국민일보>에 '신뢰와 효율의 사회복지'라는 제목으로 논단을 썼다. 신문에는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직함을 달았다. 논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얼마전 모 정당에서 대통령 후보로 뽑힌 사람이 '20대 80'의 양극화 현상을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의 편가르기 풍조를 또다시 조장하고 나선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특정 후보 선거캠프 핵심 당직자가 신문 논설에서는 그 직함을 똑 떼고 다시 교수로 둔갑하며 주관을 객관으로 바꿔치기 하는 이런 행태, '반칙'이라는 것이 이 차장의 주장이다. 이 차장의 실명비판은 언론계로 이어졌다.


"문화일보 사례를 보자. 윤창중 문화일보 논설위원. 세계일보 정치부장 출신으로 1997년 이회창 당시 대선후보 언론담당이었다. 그런데 대선 패배 이후 복귀했다. 특정 정당을 대표하며 활동했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민병두 정치부장이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옮겨갔을 때도 내부에서 큰 문제제기 없었다. 이런 불감증, 신정아 사건에서 보였던 보도행태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지난 2004년 한나라당 공천약속을 받고 사표를 냈다가 반려요청을 했던 김두우 <중앙일보> 논설위원도 이 기자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김 위원은 당시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어떤 글을 써도 오해를 살만한 상황이니만큼 칼럼을 계속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지만 최근까지도 기명칼럼을 쓰고 있다).


현직 기자가 회사를 떠나지도 않은 채 특정캠프의 선거참모회의에 참석했다는 충격적 증언도 이어졌다. 다름 아닌 얼마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이 차장의 직속 선배였다.

 

"박흥신 전 경향 부국장은 <경향신문>이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문제 등 후보검증 보도를 하고 있을 때, 경향에 몸을 담고 있는 신분으로 후보캠프 대책위에 참석했다. 당시 회의 마치고 나오다가 현역 정치부 후배기자들에게 들켜 후배들이 파면을 요구한 사태가 발생했다. 지금은 이명박 후보측 공보상황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말 악질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그냥 '원 케이스'라고 처리했다."


이 차장은 "이런 온정주의가 사태를 키운다"며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다시 "언론인들의 반성"이었다.


"언론인이나 교수가 워낙 정치권으로 많이 옮기는 상황에서 이제 이런 토론 자체가 의미없다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와 언론, 정치인과 교수집단 사이의 건강한 거리두기, 이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이와 관련한 윤리강령이 있는 언론사조차 거의 없다. 경향신문 중앙일보 문화일보… 사건은 계속 터지고 있는데 언론사 안팎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은 한번도 없다. 언론인들이 고민해야 한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언론인들의 엄정한 반성이 우선이다."

 

이재국 기자의 문제제기에 대해 박흥신 이명박 후보캠프 공보상황실장은 오늘(24일) 오후 다음과 같이 밝혀왔다.

 

"기자로 재직할 당시에는 후보캠프의 어떤 회의도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 7월 8일(일요일) 캠프 사무실에 갔던 것은 캠프에서 일을 맡아달라는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현직기자의 신분으로 바로 결정할 수 없어 '시간을 달라'고 말한 뒤 사무실에서 나오다가 정치부 후배 기자들을 만난 것은 맞다. 그리고 바로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찾아가 사의를 표명하고 다음날 아침 사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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