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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눈막고 귀막고 버텨" 5년차 직장인 친구의 충고

 핀란드 숲에 난 오솔길.
ⓒ 이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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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 태어난 것을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

몇 년 전, 어느 핀란드 친구가 한 말이다. 이 친구는 사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이 말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 선생님이 조국 핀란드에 대해 특별한 자부심을 느끼는 애국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에 다른 경로로 만난 핀란드 친구들도 초등학교 선생님에게서 들은 얘기라며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거다.

지금으로부터 20~30년 전의 핀란드는 가난한 나라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이런 집단 세뇌(?) 교육이 '피그말리온 효과'를 거두었는지, 오늘날 핀란드는 정말로 '로또 당첨'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나라로 발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핀란드'... 정말? 일부 핀란드인도 의문

최근, 이 '로또 당첨'론을 공식적으로 증명해주는 순위 발표가 있었다. 미국의 유명 월간지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핀란드를 선정한 것이다. '깨끗한 대기와 수질', '온실가스 방출량', '수질 오염/자연재해에 대한 철저한 보호책' 등에서 핀란드는 높은 점수를 따서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핀란드가 선진국이고 좋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세계에서 1위를 할 정도인가?' 좀 의아한 생각이 들어 기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미국의 세계적인 환경 경제학자 매튜 칸(Matthew Kahn)의 주도 아래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환경학자가 매긴 순위이니 아무래도 의식주 중 주와 관련된 환경에 더 비중을 둔 것 같았다. 

'환경만 좋다고 살기 좋은 나라 1위인가?' 나 외에도 <리더스 다이제스트> 순위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핀란드에 사는 미국인 필립 슈워츠만(Phillip Schwarzmann)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이번 순위에 대한 불만을 조목조목 적어놓았다.

"나는 사생활 보호, 국민의 구매력, 징병제, 이민제도, 외국인 배척과 인종차별 등이 이번 순위 선정에 고려되었는지 궁금합니다." (I wonder if things privacy, purchasing power, conscription, immigration, xenophobia and racism are factors in this survey.)

그런데 이 글에는 무려 87개의 댓글이 줄지어 달려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핀란드인들조차도 이 글에 동감하며 핀란드가 왜 살기 좋은 나라 1위가 될 수 없는지를 구구절절 적어놓았다. 학교에서는 핀란드에 태어난 것이 큰 행운이라고 열심히 가르쳤지만 그 말을 100% 신봉하지 않는 핀란드인들도 꽤 많음을 댓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자동차 안에서 본 눈 오는 날의 풍경.
ⓒ 이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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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이 넘도록 태양을 못 본 아이

많은 사람이 지적한 핀란드의 최대 단점은 날씨다. 핀란드는 일 년의 반 이상이 겨울인데, 이때 추위도 추위지만 어둠이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핀란드에 온 지 9년, 이곳 생활에 많이 적응됐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것이 바로 겨울의 어둠이다.

지금도 우리 첫째 아이가 두 살 무렵 했던 질문이 잊히지 않는다. 그때가 5월이었는데 바야흐로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던 무렵이다. 아이가 하늘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엄마 저게 뭐야?" 하며 태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애가 두 살이 넘도록 밤하늘에 떠있는 달만 봤지 태양을 본 기억이 없던 것이었다. 

춥고 어두운 겨울은 여러 면에서 핀란드인들을 괴롭힌다. 우울증, 자살, 과음, 노름 중독, 미성년의 흡연 그리고 창백한 얼굴까지.

한국에서는 얼굴이 하얄수록 미인 소리를 듣지만 핀란드에서는 누구나 하얗다 보니 오히려 적당히 그을린 피부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다. 이런 피부는 겨울철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돈 들여 몇 주간 긴 휴가를 보내고 온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올봄에 핀란드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세르비아 가수가 자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핀란드인들의 얼굴과 음식에 관한 발언을 했다가 핀란드에서 큰 파란을 일으켰다. 사람들이 너무 창백해서 다 아픈 것처럼 보이며 음식은 너무 맛없어 빵조각으로 연명했다고 지나치게 솔직한 발언을 한 것이다.

 한겨울 눈에 덮인 들판.
ⓒ 이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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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때까지 당근하고 감자 말고 먹어본 적 없어"... 건강엔 도움

핀란드 음식에 대한 얘기는 이미 여러 번 (안 좋은 쪽으로) 국제적인 화제에 오르내렸다. "핀란드 음식을 제외하면 영국 음식이 가장 형편없다"는 2005년 파리와 런던의 올림픽 개최 후보지 유치전이 한창이던 때,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영국을 조금이라도 깎아내리려다 보니 어쩌다 핀란드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 실언의 결과, 최종 투표에서 막판까지도 다소 우세하다고 전망되었던 파리는 런던에 4표 차로 지게 된다. 파리의 패배 뒤에는 핀란드 IOC 위원 2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라크의 음식 폄훼 발언에 자극받은 핀란드 위원들이 막판에 모두 런던에 표를 던졌다고 추정되었다. 양자 대결에서 2표가 어느 한 나라에 몰리는 것은 4표 차이를 의미한다. 그 당시 핀란드 IOC 위원의 2표가 승부를 결정했다는 기사는 핀란드 신문에서 대서특필된다. 그때 머리기사 제목은 "우리가 해냈다"였다. 그 후 시라크 대통령의 핀란드 음식 관련 발언은 역사상 가장 큰 말실수라고 불리게 되었다. 

실언임은 분명하지만 시라크 대통령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나도 처음 핀란드 식품점에 갔을 때 많이 당황했기 때문이다. 사방팔방 봐도 이른바 '땡기는' 식품이 없었다. 채소와 과일 코너도 너무나 부실했다. 종류도 제한되어 있고, 신선하지도 않으며 게다가 가격까지 비쌌다.

20세가 되기 전에는 당근과 감자 이외의 다른 채소를 먹어 보지 못했다는 핀란드인을 만난 적도 있다. 핀란드 같은 냉대기후에서는 뿌리채소 이외의 다른 채소가 자라기 어렵다.
음식재료가 변변찮다 보니 조리법도 별로 발달하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맞춘 단순한 요리를 자꾸 먹다 보니 내 고질병이었던 만성 위염이 어느새 다 나았다. 미식이 건강에 나쁘다는 얘기도 있지만, 맛없는 음식이 때로는 건강에 도움을 줄 수도 있는 모양이다.

식생활 다음으로 핀란드 사람들의 의생활도 한 번 얘기해보자. 거리에 다니는 핀란드 사람들의 옷차림만 보면 핀란드가 1인당 GNP가 3만8000달러가 넘는 부자나라라는 것을 믿기 어렵다.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은 거의 없으며 지나치게 검소해서 남루하게까지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높은 세금과 물가 사이에서 허덕이다보니 좋은 옷을 살 여유가 없다는 것, 둘째는 치장하는 데 신경을 안 쓰는 실용적인 국민성 때문이다. 사람들은 벼룩시장이나 중고 의류점에서 옷을 많이 구입한다. 이런 의생활의 하향평준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 덩달아 나도 치장에 신경을 덜 쓰게 돼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돈도 절약되기 때문이다. 특히 백화점에 갈 때 '차려입지' 않아도 돼서 참 편하다.

살기보단 죽기 좋은 나라?... 그럼에도 핀란드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까닭

얼마 전 핀란드인 몇 명과 회식을 할 때 뼈있는 농담 하나를 들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 주제가 핀란드가 정말로 살기 좋은 나라인가에 대한 것으로 흘렀는데, 그 중 한 명이 재치 있게 말을 받아친 것이다. "핀란드는 실상은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죽기 좋은 나라라구. 정부는 국민이 건강하고 돈 잘 벌 때는 세금만 듬뿍 떼어가고 별 혜택을 주지 않다가 병들거나 직업을 잃게 되면 그때부터 보살펴 주거든. 그러니까 살기보단 죽기 좋은 나라지." 

'살기 좋은 나라?' '살기 안 좋은 나라?' '죽기 좋은 나라?' 정작 나도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싫지만 그 가운데 좋은 것이 있고, 좋지만 또 그 속에 싫은 것이 있으니 말이다. 그 순간 문득, 며칠 전 참석했던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이 떠올랐다.

교장 선생님이 전교 학부모를 다 초청한 행사였다. 학교 강당에 모인 100여 명 정도 되는 학부모 앞에서 생각보다 너무 젊은 교장 선생님(30대 중반 정도)이 학교 소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이 학교 교육 목표가 신선하고 또 인상적이었다. '인재를 키운다'가 아니라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교육 목표였다. 주변 환경이 안전하고 왕따가 없고 아이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학교를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프레젠테이션의 마지막이 또 하이라이트였다. 학생 숫자와 선생 숫자만을 보여주는 단순한 슬라이드였다.

학생-153명, 선생님-12명, 보조 선생님-9명.
     
보조 선생님까지 합하면, 선생님 당 학생 비율이 7명이 좀 넘는다. 교장 선생님은 한 술 더 떠, 선생님을 충원해서 선생님 당 학생비율을 낮추겠다고 하신다.

 핀란드 초등학교 학예회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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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정부가 그 많은 세금을 걷어서 뭐하는가 했더니 바로 이곳,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어마어마한 돈을 재투자하고 있었다. 불과 150명밖에 안 다니는 학교인데 학교 시설은 또 얼마나 잘 꾸며 놓았는지…. 또 연필, 색연필, 공책 등 학업에 필요한 용품은 학교에서 다 주고 물론 점심도 무료다. 중학생부터는 다달이 정부에서 용돈도 준다.

이런 물질적인 면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매일 부모에게 자필로 써 보내주시는 선생님도 너무나 믿음직스럽다. 교장선생님이 얘기했던 '안심할 수 있는 학교' 범위가 부모에게까지도 해당함을 알았다.

공교육이 살아있는 나라,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한 나라, 이런 교육제도 아래서 교육받는 핀란드 학생들은 PISA 테스트(OECD 주관 학업성취도 조사)에서 몇 년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아낌없이 투자해주고 열등생, 우등생 상관없이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 부모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음식은 맛없고 날씨는 칙칙하고 이 밖에도 불만거리는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핀란드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핀란드, 그대는 정녕 살기 좋은 나라라오."

 핀란드의 어느 초등학교 전경.
ⓒ 이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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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해외에 사는 교포입니다. 핀란드에 살고 있습니다. 핀란드와 관련된 얘기들, 그리고 그 외에도 제가 사는 얘기들을 자분자분 해보고 싶답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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