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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비판적 지지론'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가 지난 9일자 <한겨레21>(제679호)에 기고한 '한국의 랠프 네이더는 필요 없다'에서 민주노동당과 범여권의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며 비판적 지지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10일자 <한겨레> 칼럼 '진보정치에 대한 예의'에서 이를 비판했다.

여기에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도 23일자 <한겨레21>(제681호)에 기고한 '악령 97, 02, 07'에서 이러한 비판에 힘을 실었다.

'비판적 지지론'의 시초는 1987년 대선

그는 '한국의 랠프 네이더는 필요 없다'는 글을 통해 비판적 지지론을 주장했다.
▲ <한겨레21>에 실린 김기원 교수의 글 그는 '한국의 랠프 네이더는 필요 없다'는 글을 통해 비판적 지지론을 주장했다.
ⓒ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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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비판적 지지론' 논란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비판적 지지론의 시초는 1987년 대선에서 나타났다. 이때부터 시작된 '비판적 지지론'은 이른바 운동권 내에서 특정 세력의 입장과 연관된 것이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이른바 민주화운동 세력은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 후보단일화론, 독자후보론 등으로 정치적 입장이 나뉘어졌다. 운동권 내에서 우파적 성향으로 분류되는 세력이 '비판적 지지론'을 설파했고, 좌파적 성향의 운동권은 독자후보론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 이후부터 운동권 좌파들은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약칭하여 '민독정'을 외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기존 보수정당들과 구분되는 독자 진보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92년 대선에서 과거 '비판적 지지론'의 입장을 계승했던 운동권 다수파 조직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은 당시 민주당 김대중 후보와의 정책연합을 추진하면서 또다시 '비판적 지지'를 선언했다. 훗날 YTN 사장을 역임한 장명국씨는 당시에 '당선 가능한 야당후보 지지론', 이른바 '당가야' 노선을 제출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비판적 지지론의 변형된 이름에 불과했다.

1992년 대선에서 좌파들은 비판적 지지론을 비판하며 독자후보 노선을 택해 백기완씨를 민중후보로 추대하고, 대선에 뛰어들었다. 이 때 백기완 후보는 일부의 극렬 비판적 지지론자들로부터 '미제의 간첩', 'CIA의 첩자'라는 소리까지 들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이들이 물리적으로 백기완 후보의 유세를 방해하기까지 했다.

1997년 대선에서도 비판적 지지론은 여전히 건재했다. 운동권 일부 인사들이 김대중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모태로 한 '국민승리21'은 권영길 후보를 내세워 대선을 독자적으로 돌파했다. 여기에는 과거 비판적 지지론의 입장에 가까웠던 세력들까지 참여했다.

그리고 국민승리21이 주도하여 1999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다. 과거 독자후보론, '민독정'을 외쳤던 사람들과 비판적 지지론의 입장에 섰던 사람들이 함께 독자적인 당을 결성함으로써 1997년 대선 이후 과거 운동권에서 통용되던 비판적 지지론 혹은 민독정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한편, 민주노동당 창당보다 앞서 국민승리21의 국민후보 노선을 비판한 좌파 청년들은 1998년 청년진보당(현재 한국사회당)을 창당했다.

양강 정치 구도 속에서 매번 작동하는 비판적 지지론

자신의 당이 있고 후보도 있는데, 다른 당의 후보를 비판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 이후 비판적 지지론이 움틀 둥지는 사라졌다.

따라서 대선 때마다 매번 등장하는 비판적 지지론은 어떤 특정 세력의 입장과 연결 짓기는 어렵고, 양강 정치 구도 속에서 항상 작동하는 고유한 논리 구조로 보면 된다. 이것은 '사표심리'와 '전략적 투표 행위'로 설명 가능하다. 사표심리란 내 표가 당선이 안 되는 후보에 감으로써 죽은 표가 된다는 의미고, 전략적투표(strategic voting)란 유권자가 가장 선호하는 후보자가 당선 가능성이 희박할 경우 차선의 후보를 선택한다는 것을 말한다.

양강 정치 구도, 특히 대통령 선거라는 국면 속에서 이러한 논란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현재의 대통령제가 지속되는 한 제3후보 이하의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항상 있을 수밖에 없는 논란이다. 당선자를 한 명 뽑는 선거에서 사표심리가 발동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리고 당선가능성에 근접했거나 근접할 것으로 기대되는 후보 진영이 사표심리를 이용하여 전략적 투표 행위를 독촉하는 것도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부도덕한 정치공작이 개입된 것이 아니라면 이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도 없다. 현행 선거 제도에서 제3후보 이하는 비판적 지지론의 덫에 갇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때문에 지금 시급한 것은 유권자 선호 왜곡을 일으키는 '비판적 지지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선거 제도 개혁이다. 이렇게 시야를 확장해야만 비판적 지지론을 둘러싼 공허한 논쟁을 반복하지 않고 정치 발전에 기여하는 생산적 논의를 할 수 있다.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이 필요하다

비판적 지지론을 불식시킬 수 있는 대통령 선거 제도 개혁의 핵심은 단연 결선투표제 도입이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범여권 일부, 그리고 진보정치 세력까지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 이 제도다.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전략적 투표 행위에 의한 유권자 선호의 왜곡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즉, 아무런 복잡한 고려 없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소신껏 투표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결선투표에서는 차선을 택하도록 내몰릴 수 있지만, 적어도 자신의 지지의사를 1차 투표에서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는 또한 투표자 과반의 지지를 얻는 대통령을 선출하여 국민적 대표성을 높일 수 있고, 정당의 경우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선거연합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 제도의 도입은 정치권에서 전혀 관심 밖이다.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을 통해 어렵지 않게 이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원내 의석을 지닌 정당들이 구체적인 개정안 마련에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사회당은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과 비례대표제 확대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일부개정법률안'을 최초로 마련했고, 이것의 공론화와 입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선이 불과 얼마 남지 않았지만, 각 정당들이 눈앞의 승부 뿐 아니라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등 정치 구조 및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그는 칼럼을 통해 비판적 지지론을 비판했다
▲ <한겨레21> 칼럼란에 실린 김규항씨의 '악령 97,02,07' 그는 칼럼을 통해 비판적 지지론을 비판했다
ⓒ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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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지론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김기원 교수,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그리고 김규항씨 글 뿐 아니라 그 이전에도 매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논란이 많았다.

이번에 <한겨레21> 칼럼을 통해 다시 비판적 지지론을 비판한 김규항씨가 2004년 4월 '네 이념대로 찍어라'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한국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진지하게 바란다면 그저 가장 진보적인 후보를 찍어라. 진보에 외상은 없다"는 결론을 제시했던 그 글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정당 정치가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구축되지 못했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투표할 수 있는 정치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오직 자신의 소신대로만 투표하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 큰 욕심이다. 그럼에도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김규항씨의 이번 <한겨레21> 칼럼은 칼을 엉뚱하게 겨누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력 있는 대안 세력이 되어 지지자들을 붙잡아야

"비판적 지지? 당신의 아이가 교사에게 상습적으로 매를 맞고 있는데 '당장 구출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리고 좀 덜 때릴 것 같은 선생에게 맡기자고, 그게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한다면 동의하겠는가?"(김규항, '악령 97, 02, 07', <한겨레21> 10월 23일자)

김규항씨는 비판적 지지론을 비판하기 위해 위의 예를 끌어들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유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이 예는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이 '아이를 당장 구출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만 가능한데, 나는 그러한 전제가 부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민주노동당이 '아이를 당장 구출해야 한다'는 선언은 했다고 보지만, 그 방법은 구체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사회적인 동의를 획득하지 못했다고 본다. 민주노동당이 제시하고 있는 방법의 단초들에 대해서도 나는 비판적이다.

김규항씨가 민중의 삶을 옥죄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당이 민주노동당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진지하게 묻는다.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추상적 선언과 '아이의 구출'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격이 있지 않는가라고. 게다가 나는 IMF 위기 이후의 사회 양극화 심화로 점철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민주노동당 또한 크게 자유롭지 않다고 본다.

단적인 예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제대로 보듬어 안지 못하는 민주노총의 한계는 곧 민주노동당의 한계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모태라는 사실 때문에 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민노당을 지지하지만 아직은 세가 적어서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진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세가 적어서 지지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당신마저 지지하지 않아서 세가 적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김규항, 위의 글)

김규항씨는 위와 같이 말했다. 그렇지만 이런 발언은 정치적으로 부적절하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심정적) 지지자들을 향해 왜 투표소에서 끝까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려 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그 지지자들을 붙잡는 진정한 호소가 되지 못한다.  당신들이 지지하지 않아서 세가 적다고 생각하라고? 이건 주장을 넘어 억지에 가깝지 않을까?

동요하고 있는 심정적 혹은 잠재적 지지층을 끝까지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것이 다른 요인들에 의해 간섭받지 않는 정치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구체적으로는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통한 선거 제도 개혁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 매력 있는 대안세력이 되는 것이다. 특히,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동요하는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더욱 미래지향적이고 대안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미래를 향한 투자라는 확신을 심어주어 당선 가능성이라는 잣대를 넘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권영길 vs 문국현

문국현 후보가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 문국현 후보 문국현 후보가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 문국현 후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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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개혁 세력의 지지를 얻고 있는 문국현 후보는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지난 9일자 <한겨레21> 여론조사는 이런 현실을 아직은 직접적으로 반영하지는 않는 것 같다.  민주노동당의 지지 및 호감층 가운데 4.8%만이 문국현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경계가 작동하는 것은 권영길 후보와 비교하여 문국현 후보의 잠재력이 높이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권영길 후보 측 박용진 대변인이 9월 28일 논평에서 "문 전 사장은 이명박 후보의 유한킴벌리 버전일 뿐"이라고 비판한 것은 이러한 경계 의식을 성급하게 드러낸 것이다. 비판적 지지의 대상으로 문국현 후보가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에서 이를 견제하는 흐름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을 단지 비판적 지지론자들의 준동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아니다. 권영길 후보가 문국현 후보를 압도할 만큼의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못한 탓도 있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일단 나부터 그렇게 생각한다. 권영길 후보의 '코리아연방공화국'에 살고 싶다는 소망보다는 문국현 후보의 '사람중심 진짜 경제'가 실현되었으면 하고, 그것이 더 진보적으로 보인다. 코리아연방공화국에는 통일에 대한 가치 부여 말고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공화국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공화국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찾을 수 없다.

왜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변이 먼저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지난 9월 28일 임진각에서 코리아연방공화국 5대 평화프로젝트를 발표했다.
▲ 코리아연방공화국 5대 평화프로젝트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지난 9월 28일 임진각에서 코리아연방공화국 5대 평화프로젝트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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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지지자는 많은데, 비판적 지지론 탓에 그것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논리는 언론이 민주노동당을 홀대해서, 또는 우리 사회가 원체 보수적이어서 등등의 이유로 자당의 지지율이 높지 않다는 논리하고 똑같다. 모든 사태에는 외인과 내인이 있는데, 어느 하나만 탓하는 것은 문제다.

사표심리를 막아야 한다는 것은 수세적 대응에 불과하다. 제3후보 이하 진영의 정당들은 외부 환경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결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내부 채비를 갖추는 것이 먼저다. 양강 구도로 짜여진 대선판에서 특히 제2후보 측은 당연히 사표심리를 선동해 전략적 투표 행위를 유도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선동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하려면, 확고한 비전 제시를 통한 지지층의 견고한 결집 외에는 답이 없다. 남 탓할 시간은 별로 없다.

민주노동당 옹호론자들의 비판적 지지론 비판은 자칫하면 민주노동당에 대한 '묻지마 지지' 강요로 읽힐 수 있다. 진보적 부동층을 향해 '왜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 있고 설득력 있는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 먼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최광은 기자는 한국사회당 대변인이며, 현재 금민 한국사회당 대통령 후보 선거운동본부 대변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문국현 , #권영길 , #비판적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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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정치학 박사.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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