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격을 배우는 소녀.
 사격을 배우는 소녀.
ⓒ Orange County NY Shoo

관련사진보기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 클리블랜드는 10월답지 않게 덥고 건조하더니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습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말씀드린 대로 미국의 언론과 대중매체에 대한 편지를 쓰던 중, 클리블랜드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국 신문에도 보도됐더군요. 그래서 미국의 총기 문화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현지시간으로 10월 10일 이른 오후, 클리블랜드 도심에 있는 성공기술학교(SuccessTech Academy)의 에이사 쿤(Asa Coon)이란 14세 학생이 학교에서 총을 난사해서 교사 두 명과 학생 두 명을 다치게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학교는 게이츠 재단의 후원으로 첨단 시설을 갖췄으며, 졸업률도 높고, 학생들의 수업태도도 훌륭한 대안학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다수 학생이 흑인이지만 에이사 쿤은 백인학생이었습니다. 에이사 쿤은 권총 두 자루, 탄약, 칼 세 자루를 가방에 넣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10년간 학교 총격 사건 60건 이상... 미 제국의 사회통제 기제에서 비롯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에서는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며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한국에는 콜럼바인 고등학교나 버지니아텍 같은 큰 사건들만 알려졌지만 지난 10년간 미국의 학교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은 무려 60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신문과 방송을 살펴보니 이번 총격사건 보도에서도 많이 들어본 분석과 담론이 재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에이사 쿤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어려서 학대를 당한 이력이 있다" "열두 살 때 어머니를 폭행한 혐의로 청소년심판소에서 재판받은 경험이 있다" "문제아였다" "수상한 징조가 있었는데 그걸 알아보지 못한 것이 문제다" 등이 보도됐고 그밖에 "우리 사회가 문제다" "총이 너무 흔한 게 문제다" "부모가 애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해서 그렇다" "학교가 학생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요즘 애들이 큰 문제다" 등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격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케이스웨스턴 대학과 버지니아텍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대중매체는 똑같은 언설과 분석을 풀어놓았었습니다. 한동안 이렇게 떠들썩하다가는 곧 잊히고, 그러다가 다시 큰 사건이 터지면 전과 비슷한 보도를 앞 다퉈 내는 것입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의 한 장면.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의 한 장면.


총기 관련 폭력은 미 제국의 사회통제 기제 자체와 관계있습니다. 에이사 쿤은 공포와 폭력이 주요 특징인 제국에서 어린 시민으로 살았습니다. 에이사 쿤은 폭력적 행동, 자기가 싫어하는 것에 대한 공격성, 물리적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 등에서 다른 제국 시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에이사 쿤이 여타 시민과 차이나는 것은 그가 저지른 행동이 미국 정부가 용인하지 않는 종류의 것이며, 그 대상이 미국 시민이었다는 점입니다.

미국 대중매체에서는 다루지 않는 더 큰 맥락을 살펴봐야만 학교 총기사건의 근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 제국 시민의 사회관과 총기에 대한 견해는 상존하는 공포와 따로 생각할 수 없으며, 미국역사에 얼룩진 폭력과 개인주의에 대한 신경증적인 믿음, 긴 세월에 걸친 총기류에 대한 애착을 생각해보면 에이사 쿤 사건은 조금도 놀라울 것이 없습니다.

콜럼바인 때도 버지니아텍 때도, 그리고 지금도

학교 총격 사건에 대한 미국 대중 담론은 테러 위험에 대한 담론과 비슷합니다.

첫째, 두 담론 모두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니 누구나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기본 메시지입니다. 언론과 미국 정부는 시민의 불안과 공포를 유발하는 데 총력을 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둘째, 두 담론 모두 근본 원인과 대책을 찾기보다는 단세포적 반응을 유도하는 틀에 박힌 분석에 그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범죄피해가 우려되면 누구랄 것도 없이 각자 총을 끼고 다니고, 공항과 공공건물과 학교에 금속 탐지기를 설치하고, 무장한 경찰과 경비원 숫자를 늘리자는 결론을 내립니다. 테러집단은 군대를 동원해 응징하고, 학교에서 말썽부리는 열네 살짜리 학생을 제압하는 데 특별기동대를 동원하고,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에게 수갑을 채우고, 감시용 카메라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구석구석 설치하는 것을 해법이라고 내놓습니다.

폭력을 더 증가시켜야 잠재적인 폭력을 막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과 막연하고도 전반적인 공포에 기초한 이런 대응책은 전부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입니다.

흔하게 널려있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총은 미국인에게는 생활의 일부입니다. 지난 편지에서 말씀드렸듯이 미국인들은 초군국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 이는 이른바 '서부개척시대'에 관한 국가적 미신과 상관있습니다.

현재 많은 미국인, 특히 총기소지권을 옹호하는 미국인들은 '와일드 웨스트(The Wild West)'라고 흔히 부르는, 초기 미국사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미국적 정신과 문화의 아주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와일드 웨스트' 시대(18세기 말~19세기 초)에는 많은 사람이 농촌에서 농업과 수렵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들에겐 식생활과 치안을 위해 총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변방 백인의 생활이란 원주민공동체를 침략해 파괴하고 땅을 빼앗아 정착민 마을을 건설한 후, 들짐승을 잡아먹고 위험한 야생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변방에는 경찰이나 법질서라는 것이 미약했고, 잘해야 보안관 한 사람이 말을 타고 한 번 순찰하는 데 며칠 걸리는 광범한 지역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판사도 작은 동네를 순회하며 재판했습니다. 수렵용이나 원주민 살해용으로 뿐만 아니라, 1880년대 '와일드 웨스트'의 주민들은 안정적인 경찰력이 부재한 상태에서 잡도둑이나 가축도둑을 막는 데도 총이 필요했습니다.

총 한 자루에 담긴 '와일드 웨스트'의 판타지

총기박람회.
 총기박람회.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관련사진보기



그렇다고 해서 당시 변방 주민들이 할리우드 영화처럼 늘 총질을 해대면서 살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부분 주민들은 총이 아닌 소몰이나 타작하기 같은 고된 농사일이 삶의 중심이었고, 생존을 위해 공동경작을 해야 했으며, 대체로 안정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이러한 변방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졌지만 영웅적인 카우보이와 위험한 인디안, 용감한 변방 주민을 주제로 한 낭만적인 '와일드 웨스트' 이야기는 1880년대 도회지에서 발행되던 신문이나 소설책, 논픽션 등에서 아주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거기다가 할리우드가 양산한 서부영화들이 오늘날 많은 미국인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미국초기역사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총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미국 영화가 많지 않을 정도이고, 어린이들은 장난감 총을 갖고 놀며, 젊은이들은 서바이벌 게임인 페인트 볼 게임을 즐깁니다. 수렵이 생존에 필요한 것도 아닌데 스포츠 종목으로서 사냥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옛날식으로 원주민을 집단 학살하는 것도 아니고 경찰력이 부재한 지역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미국인은 왜 이렇게 총에 집착하는 걸까요?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모험적이고 낭만적이며 개인적인 자유의 상징인 '서부개척시대'를 직접적으로 물화(物化)한 것이 총이기 때문입니다.

좁아터진 집에 사는 가난한 공장노동자도 총을 지님으로써 답답한 현실을 잊고 마치 큰 권력이 있는 듯 착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와일드 웨스트'의 용감한 카우보이 판타지에 자신을 대입해 무력감을 해소하는 것이지요. '총은 나와 가족을 위험에서 보호하는 수단'이라고 정서적으로 합리화하면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총은 못 내놔"

NRA 컨벤션에서 "나를 죽이고 내 손에서 총을 빼가라"라고 일갈하는 찰튼 헤스턴.
 NRA 컨벤션에서 "나를 죽이고 내 손에서 총을 빼가라"라고 일갈하는 찰튼 헤스턴.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관련사진보기


총을 안전과 개인 자주성과 보호의 수단으로 해석하는 해괴한 미국 문화에 더해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습니다.

건국 이전부터 미국 땅에서는 총이 흔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많은 총이 다 어디서 났나?"는 질문은 아무도 하지 않으며, 이 나라에선 항상 총이 넘쳐났다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따라서 총을 불법화하는 것은 총기 소지가 법적 권리며 총이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권리의 박탈을 의미합니다.

총기소지권에 대한 집착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예로, 미국총기협회(NRA) 회장을 역임한 배우 찰튼 헤스턴의 "날 죽이고 내 손에서 빼가라(from my cold, dead hand)"라는 유명한 발언이 있습니다. 한국말로 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내놓는다"나 "배 째라"정도 된다고 할까요?

물론 모든 미국인이 총을 갖고 있는 것도, 총기 불법화에 반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올해 4월 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경찰이나 특수허가를 받은 직종을 제외하고는 총기소지를 전면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는 데 대해 미국인의 3분의 2가 반대했습니다.

더구나 NRA 같은 총기소지권 지지 집단은 전통적으로 여론몰이에 능하며 총기류에 대한 대중담론의 생성과 유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2007년 스위스 로잔대학에서 나온 보고서에 의하면 100명당 총기 숫자는 미국이 90으로 세계 최고입니다. 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가정의 49%, 그리고 성인 중 31%가 한 자루 이상의 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운전면허보다 훨씬 쉬운 총기 구입... 결과는?

제가 사는 오하이오에서는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따는 것이 총을 사는 것보다 훨씬 까다롭습니다. 운전면허증을 따려면 관련 법률을 공부해야 하고, 몇 달간 운전 연습을 해야 하며, 필기시험 합격 후 도로주행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며칠 전 아침, 저는 오하이오에서 총을 사는 데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알아보려고 스포츠용품 가게에 갔습니다. 점원에게 장총이나 산탄총을 사려한다고 했더니, 오하이오에서 90일 이상 거주했고 오하이오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둘 다 문제없다고 했더니 "전화로 범죄경력을 체크한 후 바로 사실 수 있어요, 한 15분이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범죄경력이란 강도 같은 폭력범죄의 전과 여부를 말합니다.)

점원은 "우리 오하이오주는 원래 총 사기가 아주 쉬운 곳이에요, 캘리포니아 같은 곳은 까다롭거든요"라고 자랑스럽게 덧붙였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저는 총을 사오지 않았습니다. 이 편지를 쓰려고 현장조사를 나간 것뿐입니다.)

스포츠용품 가게에 비치되어 있는 총기 브로슈어.
 스포츠용품 가게에 비치되어 있는 총기 브로슈어.
ⓒ Dick's Sporting Good

관련사진보기


에이사 쿤은 열네 살이었습니다. 오아이오에서 합법적으로 총을 소유할 수 있는 나이는 만 열여덟 살입니다. 미성년자는 총을 소유할 수 없다 뿐이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클리블랜드 시내학교 통계를 보면 어린이가 총을 손에 넣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클리블랜드에서만 학생이 총·칼 등의 무기류를 학교로 가지고 온 사건이 304건이나 발생했습니다.

클리블랜드 지역신문인 <플레인 딜러>에 따르면 경찰은 10월 3일부터 10일에 이르는 약 1주일 동안에만 6mm 권총 하나, 5mm 권총 하나, 망원초점렌즈가 달린 반자동 장총과 탄약 43발, 고성능 반자동 소총 하나, 그리고 10mm 권총 한 자루를 클리블랜드의 여러 학교에서 압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 사진에 나오는 광고 전단이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네요.

교회 입구의 '무기 반입 금지' 푯말

총기소지와 총기사용은 또한 폭넓은 경제·정치적 이해관계와 얽혀있습니다. 2005년 한 해 동안 미국 내 소매점에서만 총기류 470만 자루가 팔렸다고 합니다. 판촉을 위한 박람회도 심심찮게 열립니다.

총 박람회는 호텔·쇼핑몰·옛날 무기창고·스포츠 경기장 등 대중적인 시설에서 개최되며 누구나 입장할 수 있습니다. 이 중 대부분이 450여 업소에서 참여하고 수천 명이 입장하는 대규모 박람회입니다. 오하이오 북동부에서만도 이런 박람회가 2008년 한 해 동안 12회나 예정되어 있습니다.

총이 모든 사람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미국인(특히 NRA 지지자)들의 주장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궤변으로 들리겠지만, 실제로 여기서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매년 3만명이 총에 맞아 죽는데도 이런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9·11 직후 총기류 판매가 급격히 늘어났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총기 면허증이 있고 12시간의 훈련만 받으면 공공장소에서 총기를 드러나지 않게 소지할 수 있습니다. 총을 저고리 안주머니에 넣은 채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피자배달을 하는 등의 활동을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기 소지가 어찌나 흔한지, 교회나 체육관 같은 곳 입구에 "무기류 반입 금지"라는 푯말이 붙어있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오하이오를 비롯한 48개주가 무기 소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사를 무장시키는 게 총격 사건 대책?

에이사 쿤 사건이 터진 10일 저녁, 저는 <플레인 딜러> 인터넷판에서 관련 기사들을 읽어보았습니다. 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기사에 총기, 폭력, 교육 문제 등에 대해 80개 정도의 댓글이 달려있었습니다. 그 중 총기소유권 지지론자들이 흔히 내세우는 언설을 그대로 반복한 댓글도 꽤 많았습니다.

"내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이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교사들이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교사들이 무장돼 있었다면 콜럼바인·버지니아텍·케이스웨스턴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겠는가? 희생자 유족에게 물어보라. 교사들(물론 책임감 있게 행동하도록 훈련되고 사전에 허가증을 소지한)이 무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50년 전에는 총을 구하기가 훨씬 쉬웠고 금속탐지기도 별로 없었지만, 학교 총기난사 사건은 거의 없었지 않은가?"

"정신상태가 이런 사람들(기자 주 : 총기를 난사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폭력뿐이다. 재수 없게도 이런 사람들을 만났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나같이 책임감 있게 훈련받은 사람들은 오로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만 총을 사용할 줄 안다. (기자 주 : 총기사건을 일으킨 이들은 본질적으로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자기네 같이 선량하고 이성적인 사람들이 총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꼭 중·고등학교 교사들을 무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사들이 무장하더라도 학생들이 학교에 총을 가져오거나 학교에서 총을 쏘는 것을 막지 못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교사가 학생을 죽여도 되냐고 댓글 단 사람, 참 어이없다. 학생이 총을 꺼냈다가는 자기가 먼저 총에 맞아 죽을 테니 아예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고, 설혹 학생이 총에 맞았다 해도 그건 먼저 그 학생이 무기를 꺼내들고 위협했기 때문이니 그런 놈은 총 맞아도 싸다. 나라면 내 자식과 다른 아이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 학생을 쏘아죽인 선생에게 깊이 감사하겠다."

"안전하게 살고 싶으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교사와 교장들은 무장해야 한다. 총을 불법화하면 범죄자들만 총을 가지고 다니고 우리는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

미국 학교 버스.
 미국 학교 버스.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관련사진보기



강력한 로비집단인 NRA와 미국총기소유자협회(GOA) 구성원들은 이와 아주 비슷한 주장을 반복합니다. 그 덕분에 미국은 전 세계에서 총기류 소지에 대한 제한이 가장 미약합니다. 상·하원의원들도 아주 미미하게라도 총기통제를 주장한다면 NRA와 GOA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반격하며 다음 선거에서 꼭 낙선시키려 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 NRA와 GOA는 협조해서 대규모의 물적 지원을 하기도 합니다. NRA만 해도 1997~2003년 사이에 정부 관료를 상대로 로비하는 데 1100만불(약 100억원)을 들였고, GOA는 그보다 더 많은 1800만불(약 165억원)을 들였습니다. 이에 비해, 총기폭력 방지를 위한 브래디 캠페인은 같은 기간 동안 200만불(약 18억3천만원)을 썼으며 총기폭력 종식을 위한 연대(Coalition to Stop Gun Violence)에서는 58만불(약 5억3000만원)을 썼다고 합니다.

미국정부는 다른 국가들을 잠정적인 적으로 규정하고 테러에 대한 공포를 유포했으며, 따라서 미국인의 일상생활엔 공포심리가 널리 퍼져있습니다. 집에 있을 때도 현관문을 걸어 잠근다든지, 최루가스 스프레이를 들고 다닌다든지, 총을 장만한다든지 하는 것이 모두 광범한 공포에 대한 반응입니다.

공포와 비이성 부추기는 미디어

공포심리 유발과 유포에는 대중매체가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늘 써먹는 수법도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충격적인 뉴스를 많이 보도하는 것입니다. 에이사 쿤의 총기난사 사건에 관해서도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들은 하나같이 극적 언어와 자극적 표현을 동원했습니다.

지방방송 한 곳에서는 "학교에서 광란(school rampage)"이란 제목 아래 완전무장을 한 경찰들이 학교 주변을 순찰하는 모습과 부상자가 구급차에 실리는 모습을 되풀이해 보여주면서 "피해자들이 끊임없이 실려 나오고 있다"고 묘사했습니다.

신문 하나는 "총기난사 사건으로 학생들은 겁에 질렸고 학부모들은 공포에 휩싸였다"며 학생들이 울부짖으며 대피하는 사진을 실었습니다. 또 다른 신문기사는 "학교가 이렇게 안전하지 못한데 학교버스라고 안전할까?"라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학교버스에서 총격이 벌어진 적은 없었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모든 학부모가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학교버스 주차장도 단속해야 하고 누군가가 밤사이에 버스 안에 잠입할 수도 있으니 감시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제가 이런 보도에서 불편하게 느끼는 점은 오로지 시청자와 독자 사이에 공포를 확산하는 방식으로만 에이사 쿤 사건에 접근했다는 것입니다.

학교버스의 잠정적 위험에 관한 기사엔 막연한 공포유발 외에 다른 어떤 기능도 없습니다. 신문을 보는 독자 중 누가 일부러 학교버스 주차장에 찾아가 단속을 잘했는지 확인할 것이며, 값비싼 감시카메라 장치는 누가 어떻게 설치할 것이며, 설혹 설치하더라도 학부모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관리할지 아무런 대책도 없습니다.

미디어의 이같은 접근 방식은 학교 폭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같은 날 클리블랜드 근처에서 발생한, 열차 탈선으로 인한 화재 보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응하겠습니까"라고 묻는 것으로 뉴스는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날씨채널도 공포유발이 주된 업무인 듯이 허구한 날 허리케인에 집이 무너지고, 토네이도에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폭우에 집이 떠내려가고, 폭설에 사람이 탄 자동차가 갇히는 동영상을 틀어줍니다. 날씨채널 홈페이지에 커다랗게 실린 헤드라인 세 가지는 '폭우나 폭설에 대처하는 요령' '공짜로 가족대피계획을 만들어보세요' '동영상 : 홍수와 벼락을 피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무섭다, 우린 무장해야 한다'

블랙스버그 경찰들이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버지니아텍 노리스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블랙스버그 경찰들이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버지니아텍 노리스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 AP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미디어의 집요한 공포유발 효과는 다음에 인용한 <플레인 딜러>의 댓글에서 잘 나타납니다. 학교 총격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공포와 그로 인한 비이성적인 반응이지, 놀라움이나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위험은 항상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으며 사고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고 기정사실화하는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열네 살짜리가 학교에 총을 들고 가는 일이 다 벌어지는가? 해결책이 뭔가? 금속 탐지기를 설치해야 되나? 애들을 몸수색해야 하나?"

"콜럼바인 사건과 버지니아텍 사건 이후 학교마다 금속 탐지기를 들여놔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학교든 직장이든 꼭 무슨 큰 사고가 나야 정신들을 차린다. 앉아서 기다릴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예방책을 마련하라. 대통령은 뭐하고 있나? 시장들은 뭐하고 있나? 이런 사고는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감옥을 더 많이 짓도록 내 돈이라도 보태고 싶다. 어디로 돈을 보내면 되나? 범죄자들을 죄다 가둬버려야 한다. 이런 짐승 같은 것들은 철창 속에 처넣어야지 밖에 돌아다니게 두면 안 된다."


"불행히도 클리블랜드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이런 폭력적인 사건이 없는 도시는 하나도 없다.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 학교 안에 주 방위군이라도 동원해야 하나?"

공포를 느낄 때 사람들의 일차적인 반응은 물리적 힘에 기대는 것입니다. 테러위협, 대량살상무기, 이른바 '불량국가'에 대해 미국 정부가 끊임없이 공포감을 조성하는 이유는 그럴수록 시민들이 초군국화를 당연시하며 군대에 대한 투자를 지지하고 전쟁을 정당화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회, 근본적인 해결책 찾을 수 있을까

저는 편지 앞머리에서 앞으로도 학교 총격 사건은 계속될 거라고 말씀드렸고 무기소지가 "개인의 권리"로 자리잡은 역사를 설명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그러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무엇인가" 물으실 것입니다. 불행히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습니다.

클리블랜드나 버지니아텍 같은 총격사건이 아무리 많이 일어나도 미국인들은 오히려 스스로 무장을 할 필요성을 더 느낄 뿐입니다. 국가가 다수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든 총기를 불법화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해결책이지만, 지금까지 미국 정부와 의회가 보여준 행동방식으로 보아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돈 많은 단체가 로비하는 대로, 돈이 흘러가는 방향대로 정책이 정해집니다.

상·하원 의원들도 결국 같은 문화 속에서 자라고 살아온 미국시민입니다. 그들 역시 미국의 많은 국민이 믿는 건국신화와 '서부개척시대' 신화를 믿으며 끝없이 공포를 부채질하는 담론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선 그들 자신이 총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왜 총기금지 법안을 만들겠습니까?

편지가 많이 길어졌습니다만, 위에 언급한 <플레인 딜러>의 독자의견에 올라온 좀 다른 댓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숫자로는 소수이지만, 미국 내에 이렇게 진지하고 솔직한 목소리도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미화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날마다 시청하고 수많은 시간을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에 몰두하는 우리 문화가 총기난사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저것 남을 탓하며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는 척하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 말고는 아무도 탓할 사람이 없다."


길고 좀 어두운 내용의 편지를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다음 편지를 기약하며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소재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에서 32명이 숨지는 사상 최악의 교내 총격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전쟁 기념관앞에서 학생들이 촛불 집회를 위해 촛불에 불을 켜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소재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에서 32명이 숨지는 사상 최악의 교내 총격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전쟁 기념관앞에서 학생들이 촛불 집회를 위해 촛불에 불을 켜고 있다.
ⓒ AP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태그:#총기난사, #석세스텍, #콜럼바인, #와일드웨스트, #미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