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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1일 서해북방한계선(NLL)은 영토선이라는 주장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말한 뒤 논란이 뜨겁다.

 

한나라당은 "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라고 반발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NLL은 영토개념이 아니라는 발언은 그 사람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확인해 주고도 남는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사실 한나라당이나 YS는 NLL에 관해서는 별 할 말이 없다.

 

YS가 집권하고 있을 때인 1996년 7월 16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의 시간에 당시 이양호 국방부 장관은 "북괴 함정이 서해(NLL)를 넘어온 것은 정전 협정 위반이 아니다"라면서 "NLL은 우리 어선이 북쪽에 너무 가깝게 가면 잡혀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넘어가지 말라고

공해상에 우리가 그어 놓은 선"이라고 답했다.

 

현재 한나라당이 문제삼고 있는 노 대통령의 발언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YS 정권 "NLL 넘어와도 상관없다"더니

 

당시 천용택 국민회의 의원 등 야당의원들이 "NLL은 지난 50년간 한미간에 인정한 통제선이다, 장관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하냐"며 비난했고, 화가 난 이 장관은 "엄밀히 말하면 그것(NLL)은 공해상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선"이라며 "이것은 정전협정하고 상관없다, 넘어와도 상관없는 것"이라고 되풀이 말했다.

 

국회 의사당이 소란스러웠을 정도로 여야 사이의 감정 싸움으로 진행된 것은 다른 배경이 있다.

 

그 해 4월 5일 북한군 1개 중대가 61㎜ 박격포와 대전차 로켓인 RPG-7 등을 휴대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 들어와 진지 점령 훈련을 벌인 뒤 2시간 30분만에 철수했다. 북한군은 6일과 7일에도 비슷한 행동을 했다.

 

공동경비구역 안에는 권총만 휴대 가능하다. 따라서 북한군은 정전협정을 위반했다. 당시 국방부는 이 사실을 바로 기자실에 브리핑했다.

 

북한이 4월 4일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지위가 유명무실해졌다, 정전협정에 따른 비무장지대의 유지·관리와 관련한 임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맞물리면서 언론들이 대서특필했고 '북풍'이 몰아쳤다.

 

YS는 "북한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경우 강력히 대응하겠다"며 '안보 위기론'을 부채질 했다. 당시 4월 11일 15대 총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엉청난 북풍이 부면서 여당인 신한국당은 139석을 차지해 압승했고, 국민회의 76석, 자민련 50석, 민주당은 15석을 얻는 데 그쳤다.

 

국민회의는 이에 분개했다. 국민회의 시각에서 보면 판문점에 북한군이 중화기를 휴대하고 나타난 것은 사실 정전협정 위반 사항일 뿐이다. 그러나 정부가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면서 북풍이 불도록 조장하면서 정작 영토선이나 다름없는 NLL을 북한 함정이 5㎞나 넘어 온 사례는 꼭꼭 숨겼다는 것이다.

 

이양호 국방부 장관은 자기 나름대로 화가 났다. 북한군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중화기를 휴대한 것은 정전협정 위반사항이어서 '사실'만을 기자들에게 알렸을 뿐인데 언론이 대서특필했다는 것이다. 또 북한 함정의 NLL 월선은 애초부터 NLL 자체가 정전 협정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 정전 협정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정동영 "NLL 포기망언 공식 사과하라더니"

 

이 장관의 발언 파문은 며칠간 계속됐다. 여당인 신한국당이 방어하는 입장이었고 야당인 국민회의는 공격하는 입장이었다.

 

당시 국민회의 대변인이 정동영 의원이었다. 정동영 대변인은 "정부는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한 국방장관의 망언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장관을 즉각 해임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런데 당시 7월 17일 <조선일보>는 '합의된 선 없어 논란 무의미'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NLL은 연합사가 1953년 8월 30일 임의로 설정한 것으로 이 국방장관이 NLL 침범이 정전협정 위반사항은 아니다라는 답변은 맞는 것"이라고 썼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53년 휴전협정 때 육상 경계선은 명확하게 확정됐는데 해상경계선은 모호했다. 같은 해 8월 30일 마크 클라크 유엔사령관이 남한 선박이 북쪽으로 너무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해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의 5개 섬 북단과 북한 측에서 관할하는 옹진반도 사이에 중간선을 그었는데 이게 NLL이다.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NLL인데 현재 여야의 입장은 정반대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내년부터 NLL논쟁은 어떻게 전개될까?

 

YS 정권 때의 모습이 반복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일단 한나라당이 집권당이 될 경우 북한 함정이 NLL을 넘어온다고 매번 전쟁을 벌일 수는 없을 것이다.

 

서해교전이나 연평해전 같은 일이 해마다 반복된다면 정권 자체에 엄청난 부담이다. 무엇보다 국제법적으로나 정전협정상 별 근거가 없다는 것은 그들이 집권하고 있던 시절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던 사실이다.

 

이명박씨가 집권할 경우 야당이 될 지금의 여당은 어떤 태도일까? 공교롭게도 민주 신당의 대통령 후보가 정동영씨다. 그들 역시 정략적 차원에서 NLL을 문제삼게 된다면 희대의 코미디가 반복되는 것이다.

 

헌법조항 들먹이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

 

이런 식으로는 해답이 없다.

 

<조선일보>는 15일 A6면에 '북, 2001년 이후 135차례 NLL 침범'이라는 제목을 달아 14일 국방부가 진 영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남북간 신뢰 구축실패 사례'를 대서 특필했다. 제목만 보면 마치 2001년 이후 NLL침범이 이뤄진 것 같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는 수십 년된 일이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일부에서는 NLL이 영토선이 아니라는 것을 반박하는 논리로 헌법 조항을 내세운다. 대한민국 헌법에 우리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되어있는데 NLL이 무슨 영토선이냐는 것이다.

 

노 대통령도 11일 비슷한 논리의 발언을 했다. NLL이 영토선이 아니라는 근거는 대단히 많다. 그런데 하필이면 헌법 조항을 들먹이는 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누워서 침뱉기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한 것부터가 헌법 위반이다. 현재의 남북 대화도 문제가 된다. 대한민국 영토 일부를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김정일 집단과 무슨 대화란 말인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 남북 대화 반대 논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헌법 조항이다.  


태그:#N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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