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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프라골라의 고속철도역 계획안
▲ 고속철도역사 계획안(이탈리아) 이탈리아 아프라골라의 고속철도역 계획안
ⓒ 자하 하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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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은 피곤하다.
숨이 막힐듯한 오염된 공기와 어딜가도 좁은 인도와 차도. 살인적인 물가와 집값. 그뿐인가 도시는 어디 한구석 조용한데가 없다. 공공장소인 지하철에서도 뭔가를 팔기 위해 또는 뭔가를 전하기 위해 떠드는 사람들과 주택가에 파고 드는 잡상인들의 확성기, 자동차 소리에 한시라도 편안한 구석이 없다.

이런한 측면에서 보면 현 여권의 유력한 정치인이자 유명 건축가인 김진애 기자의 최신 연재물 '[김진애의 공간정치 읽기 5탄] 오세훈 시장, 명품을 벗어라'는 많은 논란거리를 던져 준다.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사회적 또는 공공적 시각에서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존재하기에 반론을 제기해 본다.

김진애 기자는 이라크 출신 여성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운동장 공원화사업 계획안'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첫번째로 비싸다는 점이고, 두번쨰는 별로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세번째는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성, 장소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하 하디드 계획안에 대한 비판

첫번째로 제기한 자하 하디드의 계획안이 비싸다는 것은 건축가로서 적절치 못한 지적이다. 구조에 방점을 두는 근대의 건축디자인은 구조가 곧 디자인으로 환언되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포스트모던으로 일컬어지는 건축물들은 어떠한가. 종로2가 보신각과 마주하고 있는 옛 국세청빌딩(삼성타워-편집자주)은 가운데가 뻥 뚤려있다. 전혀 구조적이지 않다. 흉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포스트모던적인 건물이 흉물이라면 현대인이 매일 접하는 대다수의 '자연과 동떨어진' 물건들은 모두 흉물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디자이너와 미학자들의 도움으로 자동차와 컴퓨터, 지하철의 열차와 일용할 모든 사물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예쁘거나 매력적인 디자인을 적용하지 않는가?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굳이 가격과 실용성만 따지자면 뭐하러 자동차는 1년이 멀다하고 새디자인이 나오고 아파트는 작년 모델과 올해 모델이 다르며 컴퓨터는 나날이 작아지고 텔레비젼은 나날이 커지는가? 이 모든 것은 인간의 미학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비싼 대가다.

따라서 단지 비싸기 때문에 자하 하디드의 계획안을 비판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두번째로 김진애 기자는 자하 하디드의 계획안이 '독창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 근거로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계획안과 세계적 흐름을 예로 들고 있다. 독창적인지 아닌지는 보는 사람의 심미관에 따라 매우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자하 하디드는 수십년전부터 이런 형태의 작업을 해왔다. 자하 하디드가 '세계적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자하 하디드의 스타일에 김진애 기자가 예를 든 우리 건축가와 세계 건축계가 동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독창적이지 않다는 딱지를 붙이려면 자하 하디드 스타일을 모방하는 건축가들에게 붙여야지 '페이퍼 건축가'로 수십년간 유동적 형태의 건축스타일을 고집해온 자하 하디드에게 붙이는 건 디자이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세번째로 김진애 기자가 비판하는 것은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성과 장소성'이다. 김진애 기자가 평화시장 일대를 기행하고 조선일보에 기고한 "뜨는 동내를 찾아서" 에서 기자는 이렇게 마무리를 짓고 있다.

"유럽 명품 브랜드가 아니면 어떻고, 미국 대중 브랜드가 아니면 어떠랴. 중국, 러시아, 일본에서 통하면 되고 베트남, 몽골에서 동대문 스타일이 통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월드 클래스 동대문시장의 힘 아닐까. 동대문 스타일을 이을 사람들이여, 번성하라! 솜씨 좋은 봉제사 후예, 디자인에 승부를 걸 젊은 디자이너, ‘짜가’와 ‘짝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긍지 높은 장사꾼, 동대문 스타일을 몸으로 입으로 전할 감각적인 신세대 소비자들. 동대문시장이여, 잠들지 말라!"

자본주의와 최신 동대문 스타일에 대한 예찬이다. 물론 기자의 생각을 이 몇줄로만 재단할 생각은 없다. 동대문운동장과 인접한 '뜨는 동네, 평화시장일대' 역시 기존 상인들의 몰락과 상권의 변동, 끊임없는 재개발로 이뤄진 상권이라는 것에 비춰보면 장소성과 역사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희박한 근거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1990년대 초반에 계획한 비트라 소방서
▲ 비트라 소방서 1990년대 초반에 계획한 비트라 소방서
ⓒ 자하 하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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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건축이 대안은 아니다

자하 하디드의 계획안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건축가들이 걱정해야 할 부분은 그것이 장소성이 있다 없다를 지적할 것이 아니라 장소성과 역사성을 어떻게 삽입할 것인지 고민할 문제다.

서울의 건축은 극히 일부분의 공공건축을 제외하고는 거의 주택이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비를 평당 200만원에 지어 적게는 평당 1천만원, 많게는 평당 3천만원까지 분양하는 이런 행태를 가진 도시에서 평당 1500만원짜리 공원은 그다지 비싸 보이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평당 1500만원이냐, 평당 8백만원이냐가 아니다. 도시는 새로운 피를 수혈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보다 새롭고 참신한 문화를 제기하지 못하는 도시는 생명력을 잃는다. 도시의 매력 중 큰 매력은 건축물에 있다.

서울에 가보고 싶은 건축물이 몇이나 되는가? 오피스와 아파트 일색인 도심에 단순히 나무 몇그루 심는다고 서울도심에 걸맞는 공원이 되는가? 도시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를 제시해야 한다.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

현대 서울시민의 삶은 겉보기에는 매우 포스트모던하다. 서울은 세계 최대의 IT분야의 '얼리 어답터'(최신제품을 가장 빨리 테스트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천국이며 젊은이들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텔레비전을 보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웬만한 도심에서는 가지고 있는 IT기기로 웹서핑까지 가능한 도시가 서울이다.

서민들의 삶은 굳이 김진애 기자의 글에서 나오는 철거의 위협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위협을 받는다. 웬만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자메시지로 해고를 통보 받는 세상이다.

들고 있는 전화기가 말한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다. "이번달 말 귀하와의 고용계약을 해지합니다."

이 얼마나 포스트모던한 삶이란 말인가. 포스트모던 도시에 걸맞는 포스트모던한 건축물은 있어야 한다. 이건 당위성이다. 자하 하디드라는 건축가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처상을 탔다느니 하는 건 허울일 뿐이다. 자하 하디드가 본질적으로 제안하는 포스트 모던한 계획안에 서울시민이 동의를 할 것이냐 거부를 할 것이냐를 결정하면 된다.

수백명에 달하는 상인들과 협상하는 서울시대표단은 서울시민들이 뽑은 사람들이다. 오세훈 시장이 한나라당에서 공천을 받았다는 것은 투표를 안한 사람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것이 포스트모던의 삶이다.

서울시민은 정치를 통해 건축을 향유한다. 서울시에 존재하는 유수한 건축물들이 그런 결과물이다. 심지어 전통양반의 갓을 닮았다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황포돛배를 닮았다는 상암월드컵경기장까지 있지 않았던가.

광복절 행사로 중앙청의 모가지를 날려버리거나, 허접한 기념비적 건축물을 졸속으로 추진한 대통령들만 봐왔던 일반 시민, 국민들도 평당 1500만원 또는 명품이라 불리우는 포스트모던한 건축물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

콘크리트더미 속에 뭐가 볼게 있는지 한줄기 물을 찾아 서울시민들은 주말이면 청계천을 찾는다. 이게 포스트모던한 서울시민의 모습이다. 제대로 된 포스트모던 자하 하디드의 공원을 향유하기를 기대한다.


태그:#김진애, #오세훈, #동대문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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