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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0월이 되어 노벨상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벨 의학상은 이미 수상자가 발표되었고, 물리학상(10월 9일) 화학상(10월 10일) 문학상(10월 11일) 평화상(10월 12일) 경제학상(10월 15일) 등의 수상자 발표가 남아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이 관심으로 다가오는 것은 고은 시인이 몇 해째 수상자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3년 째 그의 이름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데다, 영국의 유명 베팅회사인 ‘래드브록스’는 고은 시인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분류했다고 한다.

고은 시인이 제주에 있을 때 기거했던 절이다. 화북동에 있는 별도봉 자락에 있다.
▲ 원명선사 고은 시인이 제주에 있을 때 기거했던 절이다. 화북동에 있는 별도봉 자락에 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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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은 1963년에 제주에 와서 4년을 살다갔다. 그는 제주도에 죽으러 왔다가 개안(開眼)을 얻고 <해변의 운문집>과 <제주가집>이라는 2권의 시집을 냈다. 그가  불면증에  시달리던 4년간의 제주생활은 그의 시를 민족어사전으로 만들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사라봉 정상에 올라서면 제주항이 훤히 눈에 들어온다. 시인은 사라봉에 올라서서 자신이 제주로 들어왔던 항구를 내려다볼수 있었다.
▲ 사라봉에서 바라본 제주항 사라봉 정상에 올라서면 제주항이 훤히 눈에 들어온다. 시인은 사라봉에 올라서서 자신이 제주로 들어왔던 항구를 내려다볼수 있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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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1962년에 승려생활을 정리하고 환속하여 이듬해에 제주행 배를 탄 것은 자살할 목적에서였다고 한다. 자신을 물속에 수장시킬 큰 돌과 로프를 가방 속에 숨기고 제주행 배를 탔다가 술을 마시고 잠든 후 깨어보니 제주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의 세 번째 자살 실패였다.

제주도에서 그는 무덤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했다. 술에 취해 밤중에 밖으로 나가 무덤을 헤매다가 새벽녘에 괴상한 몰골로 방으로 돌아오곤 했다고 했다.

그가 '묘지송'이라는 시를 남긴 사라봉에 있는 무덤이다. 고은 시인은 밤마다 이곳을 배회하며 다녔다.
▲ 무덤 그가 '묘지송'이라는 시를 남긴 사라봉에 있는 무덤이다. 고은 시인은 밤마다 이곳을 배회하며 다녔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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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그대 자손은 차례차례로 오리라.
지난 밤 모든 벌레 울음 뒤에 하나만 남고 얼마나 밤을 어둡게 하였던가.
가을 아침 재보(財寶)인 이슬을 말리며 그대들은 잔다.
햇빛이 더 멀리서 내려와 잔디 끝은 희게 바래고
올 이른 봄 할미꽃 자리 가까이 며칠만의 산국화가 모여 피어 있구나.

그대들이 지켰던 것은 비슷비슷하게 사라지고 몇 군데의 묘비(墓碑)는 놀라면서 산다.
그대들이 살았던 이 세상에는 그대의 뼈가 까마귀 깃처럼 운다 하더라도
이 가을 진정한 슬픈 일은 아니리라.
오직 살아 있는 남자에게만
가을은 집 없는 산길을 헤매이게 한다.

그대들은 이 세상을 마치고 작은 제일(祭日) 하나를 남겼을 뿐
옛날은 이 세상에 없고 그대들이 옛날을 이루고 있다.
어쩌다, 잘못인지 노랑나비가 낮게 날아가며
이 가을 한 무덤 위에서 자꾸만 저 하늘에 뒤가 있다고 일러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그대들은 이 무덤에 있을 뿐 그대 자손은 곧 오리라
- 고은의 ‘묘지송(墓地頌)’


예로부터 제주사람들은 배수가 잘되고 양지바른 곳 어디든지 묘를 썼다. 조선 후기에는 탐관오리들의 극심한 횡포와 더불어 반복되는 흉년은 많은 백성을 굶어 죽게 했다. 게다가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일본군의 무덤이 이곳에 더해졌고, 4·3사건 당시에는 수만 명이 집단으로 학살되는 일까지 있었으니, 오름 중턱이나 들판 그 어디에서든 쉽게 무덤을 만날 수 있다. 고은은 사라봉 중턱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묘지송’이라는 시를 썼다.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만벵디 묘지다. 4.3 때 집단 사살된 자들의 시신이 묻혀있다. 무덤이란 산 자와 죽은자가 만나는 공간이다.
▲ 만벵디 묘지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만벵디 묘지다. 4.3 때 집단 사살된 자들의 시신이 묻혀있다. 무덤이란 산 자와 죽은자가 만나는 공간이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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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나는 새벽마다 무덤에 가야 한다.
나와 함께 삼나무 묘판(苗板)을 만들고
내 세수하는 물과 마실 물을 떠다 주고
기꺼이 먼 심부름도 해 준 애의 무덤에 가야 한다.

무덤은 질투(嫉妬)의 바다가 일어나는 언덕에 있고
어제 다친 발을 나는 거기 가서 벗어야 한다.
내 약속과 돌들이 살아 있기 때문에 새벽 돌길은 매우 험하다.

그 무덤가에서 벌써 연인(戀人)은 기다린다.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 냥
새벽 바다에서 온 바람을 치마에 받고 있다.
오오 그렇게도 단정한 연인(戀人)아. - 고은의 ‘새벽 밀회(密會)’ 중에서  


무덤이란 죽은 자의 유골을  살아있는 것처럼 파란 풀로 포장하는 곳이고, 산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는 곳이다. 한편, 죽음이란 고통의 끝을 의미하기에 무덤은 죽은 자가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산 자를 위로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무덤은 삶과 죽음이 서로 만나서 서로 기억하고 위로하는 공간이다. 죽기 위해 제주도에 왔던 고은은 무덤을 통해 위로받고 새로운 삶을 얻었다.

그가 제주에서 주로 생활했던 별도봉 사라봉 산지포구는 바다를 시원히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고은은 무덤과 더불어 바다를 무척이나 동경하며 살았다.

만조가 되면 어김없이 포구에 배가 들어온다.
▲ 포구 만조가 되면 어김없이 포구에 배가 들어온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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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만조(濟州滿潮)여, 그대는 떠나는 배를
조금만 늦게 떠나게 하고어제 밤 배들을 돌아오게 한다.
어떻게 지킬 약속을 실어오는지,
한 척의 거룻배도 삐걱거리며 돌아오게 한다.

그러나 만조(滿潮)여, 그대는 한 물새가 조상(弔喪)할 것을 조상(弔喪)하게 한다.
돛받이에 다친 어부는 키 잡은 손을 풀고
온갖 그물코에 별들을 걸어야 한다.
잠깐이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여인이 낳을 것이다.
오늘까지 살아온 자는 그대 앞에 있고,
언젠가 오랜 땅보다도 오랜 바다를 소망하리라.

만조(滿潮)여, 누군들 그대 앞에 한낱 어린 길손이리라.
그러나 만조(滿潮)여,
그대가 이 마을을 가득하게 할 때
산지포(山地浦) 노인의 지는 숨은 빨리 지고
새 갓난애와 별똥이 탄생한다.
이 세상을 떠나는 자도 오는 자도
그대가 이 마을을 가득하게 할 때인지라
먼 곳으로부터 썰물 때는 서두를 수 없으리라.
저 북쪽 바다에는 동정녀(童貞女)의 어화(漁火)를 수놓게 하고
한 물결만큼 바람을 쉬게 해도 물결은 찬란한 살로 일렁인다.
만조(滿潮)여, 고기떼는 좀 남아서 자지 않을 것이고,
여러 물새들은 제 날개를 재워야 한다. - 고은의 ‘이 만조(滿潮)에 노래하다’ 중에서

가까운 곳에서 포구와 연결된다. 고은은 이 근처에서도 생활했다.
▲ 산지천 가까운 곳에서 포구와 연결된다. 고은은 이 근처에서도 생활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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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출항하거나 입항하기 위해서는 '물때'가 맞아야 한다. 즉 바다가 만조가 될 때 배가 충분한 수심을 확보하여 안전하게 포구로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만조는 약 13시간 간격으로 어김없이 하루 두 번 포구로 찾아온다.

사멸은 곧 새로운 생성을 의미한다.
▲ 낙조 사멸은 곧 새로운 생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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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은 자연이 만들어낸 이 질서를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떠날 배도 조금 늦게 떠나게 하고 밤배들도 '약속을 싣고' 어김없이 되돌아오게 한다. 만조가 가까워오면 바다에는 어부들을 향한 여인들의 간절한 기다림이 있다.

하지만 바다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니 불의의 사고를 당해 배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제주도 해안의 봉우리마다 여인의 한이 서린 전설이 남아있는 것과 저 남쪽 바다 끝에 이어도의 전설이 어부들을 위로하는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시신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는 물새들의 조상(弔喪)이라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년 천년학이라는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제주를 방문했을 때, 임권택 감독은 제주는 어디를 카메라에 잡든 화면이 잘 잡힌다는 말을 했다. 제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뒤에 감춰진 설음에서 힘을 얻고, 이를 원동력으로 삼고 삶을 지탱하는 곳이다. 무덤마다 감춰진 사연과  포구마다 깊이 서려있는 '한'이 슬픔의 미학으로 승화하는 섬이다. ‘한’을 원동력으로 예술을 얻으려는 예술가에게 제주만한 곳이  또 있을까?

그의 시에는 종증 말이 등장한다.
▲ 제주 말 그의 시에는 종증 말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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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고은 시인이 좌우익의 대립, 전쟁의 폐허 뒤에 간직한 절망을 품고 제주에 왔다가 새 삶을 얻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비극을 체험한 땅만이 아픈 자를 위로하고 그에게 따뜻한 생명의 온기를 불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급한 마음에 노벨재단 홈페이지(nobelprize.org)를 방문해보니 수상자가 될 사람에게 궁금한 점을 묻는 코너가 있었다. 질문 내용이 수상자에게 전해지기도 하고 BBC방송에 나올 수도 있다고 하니 참여해보는 것도 좋겠다. 고은 시인이 들으면 좋을만한 질문이 뭐가 있을까?


태그:#고은, #제주, #무덤,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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