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여자지만, 행복해도 될까요?
[取중眞담] 밤길에서 노동시장에서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여성
07.10.08 09:10 ㅣ최종 업데이트 07.10.08 10:07 이민정 (wieimmer98)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사)문화미래 이프는 지난 5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여성전용파티 '시청앞 밤마실'을 열었다. 행사장에 설치된 '내가 꿈꾸는 밤길'이라는 주제의 대형 낙서장에는 "평화로운 세상, 범죄없는 세상이 되길", "밤마다 미친듯이 놀고싶다"는 등 여성들의 염원이 적혀 있었다.
ⓒ 이민정
이프

 

"여자라서 행복해요."

 

한 유명 냉장고의 광고 문구다. 냉장고 하나 가졌다고 금세 행복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않다. 

 

택시를 탈 때마다 혹시 생길지 모를 불상사에 두려워하게 되고, 직장에서는 불평등과 성희롱의 벽을 넘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으로 홀대받는 여성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희한하게도 기자는 지난 한주동안 여성들의 행복하지 않은 삶의 현장을 '메들리'로 찾아가게 됐다. 

 

[장면1] 여자들이 몸을 함부로 굴려서 그렇다니...

 

지난 5일 오후 6시 반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사)문화미래 '이프' 주최로 여성전용파티가 열었다. '시청 앞 밤마실'이라는 부제를 단 이날 행사는 올해 네 번째 열리는 것으로, 선유도공원에서 서울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엄을순 이사장은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여자들이 몸을 함부로 굴려서 그랬다'고 한 말 기억하시죠, 우리 오늘 몸 한 번 굴려보자고요"라며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실제로 여성전용파티는 '유영철 사건' 이후 여성들의 밤길 되찾기 연장선에서 2004년부터 매년 열렸다.

 

그러고 보니, 밤늦게 택시를 탈 때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안전하게 집 앞에 도착하면, 지인들에게 '집에 잘 도착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남기며 중요한 시험 하나를 끝낸 것처럼 안도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이 두려움을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대 앞에서 실종된 2명의 여성들, 미군에 의한 성폭행, 여기자 납치 사건 등 기억하기 싫어질수록 더욱 또렷한 사건들이다.

 

하지만 더욱 어이없는 것은 "여자가 왜 밤늦게 돌아다니느냐, 당해도 싸다"는 비난이다. '미니스커트가 성폭행을 유발한다'는 허탈한 주장처럼, 손가락질 하는 검지 하나가 가해 남성을 가리키고 있을 때 나머지 네 손가락은 여성들을 지칭했다.

 

여성전용파티는 여기에 반기를 든 것. 이날 행사는 이번 달부터 서울시가 도입할 예정인 '여성전용콜택시' 제도를 환영하고, 여성들의 안전한 밤길 되찾기를 위해 열렸다. 100여명의 참가자들은 저녁 9시가 훌쩍 넘은 시각까지 귀가의 두려움은 잠시 잊은 채 '밤마실'을 즐겼다.

 

[장면2] 또다른 생존의 위협... 여성 비정규직

 

  
'비정규직투쟁사업장공동행동'은 3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옆 소공원에서 공동집회를 열었다. 참가자 150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 이민정
비정규직투쟁사업장공동행동

하지만 또 다른 생존의 위협 앞에 밤길 택시에 대한 두려움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3일 세종문화회관 공원에서 열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에는 노동시장에서 홀대받는 비정규직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교육이나 고용에서 남성에게 밀린 이들이다.

 

이날 행사 참가자 150여명 중 절반 이상은 여성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중 70% 가량이 여성인 현실을 반영하는 듯했다.

 

이은진 새마을호 승무원 대표는 "승무원들의 투쟁이 열 달이 넘었다"며  "단지 '승무원으로서 현장에 돌아가겠다'는 일념밖에 없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시련이 닥쳤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여승무원들뿐만 아니라 800일 넘게 회사와 맞선 기륭전자 여성 근로자들, 매번 경찰에 끌려나오면서도 매장 점거 투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내보려는 홈에버-뉴코아의 중년 여성 비정규직 등 일할 곳을 찾기 위한 그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지난 1일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직장 내 성희롱 대응운동, 금지조항을 넘어서'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는 지난 1993년 '서울대 여조교 희롱사건'부터 시작된 성희롱 이슈에 대한 전문가들의 토론이 열렸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이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로 사업장에 갔다가, 한 남성이 손을 들어서 '소방교육 등 받아야 할 교육이 많은데, 이런 교육까지 해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를 했다"는 우스개를 털어놓을 때는 웃음과 함께 한숨이 섞여 나왔다. 

 

'억울'한 남자들, 입장바꿔 생각해봅시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1일 서울 정동 배제학술당에서'직장 내 성희롱 대응운동, 금지조항을 넘어서'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다
ⓒ 이민정
한국여성민우회

남성이라고 어찌 억울한 심정이 없겠나.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생하고 있는데, '성희롱'이니 '밤길 안전'이니 하며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세우고 있으니 적잖이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입장 바꿔 생각해보시라. 밤 늦게 들어갈 때마다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면 혹은 똑같은 교육을 받고도 비정규직으로 차별받아야 한다면, 사람답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성의 권익이 많이 신장됐다는 얘기가 들려오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아직도 천박한 수준이라는 것을 최근 사례들이 역설적으로 말해주지 않는가.

 

남성들이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여성을 존중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밤늦게 돌아다니는 여자는 함부로 다뤄도 된다고 여긴 적은 없는지, 혹은 열차 승무원이나 대형 마트의 계산업무는 여성 비정규직으로 둬도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그 질문에 분명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남성이 많아질수록, 밤길뿐만 아니라 가정과 학교, 직장 등에서 여성의 삶은 '행복' 쪽으로 기울 것이다.  묻고 싶은 것이 또 생겼다.

 

여자지만, 행복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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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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