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MBC가 진주시로부터 예산 5000만원을 지원받아 오는 9일 저녁 진주성 특설무대에서 '남인수 가요제'를 강행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민족문제연구소가 남인수(본명 강문수, 1918.10.18∼1962.6.26)의 친일행적을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5년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를 발표하면서 남인수를 포함시켰다. 진주지역 시민단체로 구성된 '친일잔재청산을위한진주시민운동'은 친일파의 가요제를, 그것도 시민 혈세를 들여 열 수 없다며 반대해 왔다.
하지만 진주시와 진주MBC는 남인수가 '친일인명사전'에 최종적으로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며, 가요제 개최를 계속해 오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 담길 남인수의 주요 친일행적 자료를 7일 '친일잔재청산을위한진주시민운동'에 보냈다. 이 단체는 9일 가요제 때 이들 자료를 담은 유인물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 줄 예정이다.
진주 출신인 남인수는 진주제2공립보통학교를 졸업(1932)한 대중음악가(가수)였다. 그의 주요경력을 보면 1934년 '시에론'레코드사에 입사해 1936년 <눈물의 해협>으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오케(okeh)' 레코드사 직영 조선악극단 소속 가수로 활동하면서 남만주와 중국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가 부른 '친일 군국가요'는 많다. ▲<강남(江南)의 나팔수>(1942년 1월 오케 레코드, 작사 조명암, 작곡 김해송)와 ▲<남쪽의 달밤>(1942년 8월 오케레코드, 작사 조명암, 작․편곡 박시춘), ▲<낭자일기(娘子日記)>(1942년 9월 오케레코드, 작사 조명암, 작․편곡 박시춘), ▲<병원선(病院船)(1942년 4월 오케레코드, 작사 조명암, 작․편곡 박시춘), ▲<이천오백만 감격(二千五百萬 感激)>(1943년 11월 오케레코드, 조선징병제 실시 기념음반, 작사 조명암, 작․편곡 김해송), ▲<혈서지원(血書志願)>(1943년 11월 오케레코드, 작사 조명암, 작․편곡 박시춘).
<강남의 나팔수>는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활약을 찬양한 노래로, 가사의 내용으로 볼 때 일본군 돌격을 알리던 나팔수가 전사하자 이를 찬양한 것으로 보인다. <남쪽의 달밤>과 <낭자일기> <이천오백만 감격> 등은 징병제 실시를 축하 기념하는 노래다.
<혈서지원>은 1943년 징병제 실시를 축하하고 조선인들이 혈서를 써서 지원한다는 내용으로 되고 있다.
또 그는 내선일체를 주장한 영화 주제곡 <그대와 나>(1941년(?), 작사 조명암, 작곡 김해송)를 장세정과 불렀는데, 이 노래는 '조선군 보도국'에서 제작한 것이다. <그대와 나>는 허영이 감독한 대표적인 친일영화다.
해방 이후 남인수는 정훈국 문예중대 소속 군위문활동 참여(1950)와 대한레코드가수협회 회장(1958), 한국가수협회 회장(1961), 한국연예협회 부이사장(1961.12) 등을 지냈다.
"가수는 노래로 친일에 기여한 행위"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일부에서는 '가수가 노래 몇 곡 부른 것이 뭐가 죄냐?'고 하는데, 당시 일제의 통치 방식을 직역봉공(職役奉公)을 기본으로 하는 방식이었다. 직역봉공이란 자신의 직업을 충실히 하며서 친일을 하라는 방식으로 즉 화가는 그림으로 작가는 글로 가수는 노래로 친일에 기여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방 사무국장은 "총독부는 남인수에게 노래로써 친일하기를 요구한 것이지 수백만 군인 중에 한명으로 참전하도록 요구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런 변호 논리라면 이광수도 김기창도 그 어느 예술인도 친일의 죄를 물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기 가수 남인수가 친일노래를 불렀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며, 연구소에서 확정된 명단이 나오지 않아서 관계없다는 논리도 문제다. 이미 행위 자체가 명백하고 반복적이므로 진주시민의 역사 인식을 감안한다면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밀양의 '박시춘가요제'나 성주의 '백년설가요제'도 친일인명사전 명단 확정 전이었지만 관계자들이 민족문제연구소의 문제 제기를 수용한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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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잔재청산을위한진주시민운동’은 오는 9일 진주성 특설무대에서 열리는 남인수 가요제 때 남인수의 친일행적을 담은 유인물을 나눠 줄 예정이다. 사진은 지난 해 가요제 때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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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수가 부른 ‘친일 군국가요’의 가사
[강남의 나팔수] 동무야 잘 싸웠다 강남의 나팔수/총 끝에 번갯불을 번쩍거리며/여산(廬山)은 칠십 리를 쳐들어 간 밤/여산은 칠십 리를 쳐들어 간 밤/입술에 피 흘리고 너는 갔구나.
[남쪽의 달밤]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동백꽃 피는 내 고향 떠나왔으니/사나이 내 목숨을 낸들 어이 알쏘냐/뻐꾹새 울지 마라 뻐꾹새 울지 마라 남쪽의 달밤//흘러를 간다 흘러를 간다/남쪽의 항구 쌍돛대 화륜선 위에/고향을 찾아가는 내 마음이 흐른다/어머니 불러 보는 어머니 불러 보는 진중(陣中)의 달밤//내일은 간다 내일은 간다/나라에 바친 한 가지 꽃을 안고서/험한 산 천리 황야 붉은 피를 묻히며/낙화로 가리로다 낙화로 가리로다 사나이 목숨.
[낭자일기] 낭자는 꽃이었소 아름다웠소/한 마음 붉게 피는 동백이었소/천만 산 넘고 넘어 싸움터로 가는/이 산천 젊은이의 아내이었소//낭자는 일꾼이오 씩씩하였소/먼 곳에 가신 님께 지지 않았소/두 몸은 남북으로 한별(恨別)이언만/충성을 맹세함은 한 가지였소//낭자는 꽃이었소 붉은 정성에/한 조각 떨어지는 낙화이었소/맘대로 못 다하는 생사일망정/떳떳이 죽는 것이 소원이었소.
[병원선] 정 들자 떠나가는 차이나 항구/병원선 뱃머리에 손을 흔들 때/붉은 불 푸른 불이 눈에 흐른다//군복을 벗어 놓고 흰옷을 입고/상처를 만지면서 흘러갈 적에/한 목숨 버린 동무 보고 싶구나//고향을 떠나온 지 몇 해 몇 천 리/죽어서 돌아가잔 맹세는 젖어/병원선 그늘 아래 달빛을 본다.
[이천오백만 감격] 역사 깊은 반도 산천 충성이 맺혀/영광의 날이 왔다 광명이 왔다/나라님 부르심을 함께 받들어/힘차게 나아가자 이천오백만/아 감격의 피 끓는 이천오백만/아 감격의 피 끓는 이천오백만//동쪽 하늘 우러러서 성수(聖壽)를 빌고/한 목숨 한 마음을 님께 바치고/미영(米英)의 묵은 원수 격멸의 마당/정의로 나아가자 이천오백만/아 감격의 피 끓는 이천오백만/아 감격의 피 끓는 이천오백만.
[혈서지원]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일장기(日章旗) 그려 놓고 성수만세(聖壽萬歲) 부르고/한 글자 쓰는 사연 두 글자 쓰는 사연/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해군의 지원병을 뽑는다는 이 소식/손꼽아 기다리던 이 소식은 꿈인가/감격에 못 이기어 손끝을 깨물어서/나라님의 병정 되기 지원합니다//나라님 허락하신 그 은혜를 잊으리/반도에 태어남을 자랑하여 울면서/바다로 가는 마음 물결에 뛰는 마음/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반도의 핏줄거리 빛나거라 한 핏줄/한 나라 지붕 아래 은혜 깊이 자란 몸/이 때를 놓칠쏜가 목숨을 아낄쏜가/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대동아(大東亞) 공영권(共榮圈)을 건설하는 새 아침/구름을 헤치고서 솟아 오는 저 햇발/기쁘고 반가워라 두 손을 합장하고/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그대와 나] 꽃피는 고개 너머 하늘에는 새날이 밝는다/영원한 길을 닦는 지평선에서/노래를 부르잔다 키미토보쿠/노래를 부르잔다 키미토보쿠//그대는 반도 남아 이내 몸은 야마토사쿠라/건설의 햇발 솟는 지평선에서/노래를 부릅시다 아이노우타/노래를 부릅시다 아이노우타//여기는 아세아다 우리들의 희망은 빛난다/따뜻이 손을 잡고 깃발 아래서/충성을 맹서 짓는 키미토보쿠/충성을 맹서 짓는 키미토보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