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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내기 절차인 지붕잇기

 

지금은 급격한 전통 생활 양식의 파괴로 말미암아 민속촌에나 가야 겨우 구경할 수 있는 풍물이 되었지만 내게 고향을 상징하는 아이콘은 여전히 초가집이다.

 

할머니를 닮은 늙은 호박과 순박한 누이를 닮은 하얀 박 덩어리가 아무런 시샘없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풍경이 연출되는 초가지붕. 그 2가지 오브제가 없다면 아마도 초가지붕의 아름다움은 반감되고 말 것이다.

 

늙은 호박은 죽도 끓여먹고 여러가지로 쓰임새가 많다. 그에 못지않게 박 또한 쓸모가 많다. 속은 긁어내어 조물조물 나물로 무쳐먹으면 담백한 맛이 그만이다. 그리고 박껍질은 물 뜨는 바가지로 쓴다.

 

이윽고 지붕위에 허옇게 서리가 내려 앉기 시작하면 한 해의 끝내기 절차인 지붕잇기가 시작된다. 먼저 지붕 위로 올라가서 썩은새를 걷어내야 한다. 걷어낸 썩은새에서 하얀 굼벵이가 기어 다니는 광경은 어린 내겐 무척이나 징그러운 느낌을 안겨주었다.

 

마당에 덜 푸덕 주저앉은 일꾼들은 마름을 엮어 지붕위로 올린다. 그것을 멍석을 깔듯 켜켜이 덮어 씌우고 나서 이엉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가로 세로로 단단하게 새끼줄을 맨다(이걸 '고사매기'라 한다). 지붕 꼭대기인 용마루에 용마름을 얹고나면 지붕잇기 작업은 대미를 장식한다.

 

겨울엔 참새들이 초가지붕의 처마 끝에다 구멍을 뚫고 거기 들어가 살았다. 우리 꼬마들은 겨울밤이면 참새잡이에 나서곤 했다. 지붕에 살그머니 사다리를 걸치고 나서 구멍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더듬더듬 참새를 잡는다. 그렇게 잡힌 참새들은 불에 구워진 다음 우리의 허기진 위장으로 직행했다.  

 

간혹 손수 만든 새장에다 참새를 가두어 사육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헛일이었다. 참새는 몹시 성질이 급하다. 쉼 없이 탈출을 시도하다가 지쳐 제풀에 죽고 마는 것이다. 예로부터 새는 자유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그러고 보면 '참새'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게 우연이 아닐는지 모른다. 혹 옛사람들이 참새의 그러한 자유의지를 높이 평가해서 새 중의 새라 해서 '참새'라 이름지었는지 누가 아는가.

 

한 때, 머리가 텅빈 사람을 일러 '새대가리'라 한 적이 있다. 나중엔 한술 더 떠 "나 오늘 물먹었어"란 표현을 대신 해서 "나, 오늘 새 됐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자유를 상징하는 새가 자조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해 버린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 정말 물먹어 버리고 새된 건 우리의 옛 생활 양식이며 전통이다. 창조와 계승이라는 전통의 2가지 명제를 적용하기엔 초가집이란 주거 환경이 정말 낡고 쓸모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효용성이란 측면에서 견주어 봤을 때 전혀 가치없는, 버려야 할 지난 시대의 유물에 불과한 것일까.

 

사람들은 전통의 따스함을 너무 쉽게 잊어 버리지만, 시인은 망각의 늪에서 조심스럽게 초가집이 가졌던 기능과 따스함을 건져 올린다. 김용택 시인이 쓴  '초가집'이란 시가 떠오르지만 너무 짧아 싱겁다. 그렇다면 김영남 시인이 쓴 '초가집이 보인다'라는 시를 읽어보면 어떨까.

 

숨 쉬는 집을 그리워 하며

 

그 집에는 문이 따로 없다.
그 집에 들어가려면
아무데나 밀면 되고, 또한
아무거나 잡아당기면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유별난 문이 따로 있는 것 같으면서도 
출입문이 따로 없는 집.
야, 이런 집이 아직도 있을 수 있나?
지붕 위론 박넝쿨이 올라가고 있고,
울타리엔 개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집.
방에는 거미가 수없이 세들었지만
아직 향기로운 술독이 익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아랫목에까지 둥지를 틀어올 무렵이면
휘파람으로 달빛을 불러들이고
한 접시의 밤하늘을
술안주로 차려오는 집.
그를 열면, 그런 집이 보인다.

- 김영남 시 '초가집이 보인다' 전문  


김영남은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서 '정동진역'으로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시인이다. 데뷔작이 그대로 첫시집의 표제가 돼버렸다. '커브가 아름다운 여자' 등 재미 있는 제목들이 많이 들어 있는 시집이다.

 

그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오브제를 즐겨 시의 소재로 등장 시킨다. 그는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시를 읽는 이의 마음을 정갈하게 씻겨주는 시의 사제이다.

 

시 '초가집이 보인다'는 특별히 설명을 덧붙일 게 없다. 그냥 읽으면서 느끼면 된다. 난 단지 "방에는 거미가 수없이 세들었지만/ 아직 향기로운 술독이 익고 있다"라는 한 구절만을 주워든다.

 

내가 어렸을 적엔 개인이 술을 담는 행위는 불법이었다. 1909년 일제가 자가양조를 금지하는 주세법을 공포하면서부터였다. 희한하게도 산림 벌채를 감시하던 산감(山監)이 밀주 단속까지 겸했다. 밀주를 담갔다가 행여 산감에게 들키기라도 하는 날이면 집이 거덜날 정도로 큰 벌금을 물어야 했다. 그래도 농사철이면 어른들은 몰래 술을 담갔다. 고두밥에 누룩을 뿌려 술을 안친 항아리를 이불을 덮어서 아랫목에 놓아두면 술이 익었다.

 

사나흘 지나면 방안에 술 익는 냄새가 진동했다. "한 접시의 밤하늘을/ 술안주로 차려오는" 밤이면 할아버지께선 살포시 항아리를 덮은 이불을 젖히고 나서 대접으로 가만히 술을 떠 맛보셨다. 아마도 술이 잘 익었는지 시음하신 것이리라. 그 순간의 술맛은 얼마나 짜릿했을까.

 

이제 그런 모든 추억은 무정한 세월이 몽땅 데리고 가버렸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끝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초가삼간에서 비좁게 살던 그때, 오히려 형제간의 우애가 마음 속 깊이까지 흐를 정도로 돈독했다는 것, 옹기종기 모여 살던 남루하고 비루한 삶이 이웃 간에 둥글고 둥근 정을 나누게 했다는 것을. 비록 초가집이 오늘 우리가 사는 첨단의 시대에 걸맞지 않은 주거형태라 할지라도 그 아름다운 공동체 정신만은 계승할 수 없는 것일까.

 

크기만 오사게 컸지 도통 정이 흘러가고 흘러오지 않는 도회의 집들. 시멘트로 꽉 막힌 아파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숨 쉬는 집이되고 싶다. 우리도 초가집 같은 따뜻한 정이 흐르는 집이 되고 싶다"라고.


태그:#초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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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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