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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내가 메뚜기 잡았어요."
 "우와! 내가 메뚜기 잡았어요."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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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달구지를 타고 코스모스 길을 돌아볼 수도 있다.
 소달구지를 타고 코스모스 길을 돌아볼 수도 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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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아, 진짜 좋다. 나는 작년에 애들이랑 신랑이랑 갔다 왔는데 진짜 좋더라야."
"그래, 근데 낮에 밥 먹고 오자. 나, 일이 밀려 있어."


친구 길림이가 애들 데리고 김제 벽골제에 가자고 했을 때는 특별한 재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거기는 2400년 전에 물을 저장해서 벼농사를 지었던 저수지가 있는 곳이다. 나는 벽골제를 생각하면 항상 머리통이 뜨거워진다. 터가 넓은 그 곳의 저수지 방죽에서 들판을 보고 있으면 햇빛은 강렬했다. 아이는 땀에 젖어서도 자꾸 뛰어다녔다.  

지난 3일 김제 지평선 축제가(10월 3~7일까지) 열리는 벽골제에 아침 일찍 갔지만 임시 주차장에는 차가 많았다. 일부러 놓은 다리를 건너자 낚시터가 나왔다. 거기의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은 30cm도 넘는 향어를 풀어놓았다고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낚시하는 아이들이 향어에 끌려가면 어쩌나, 만화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의 걱정은 오히려 우리에게는 미끼로 작용했다. 우리는 그의 통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지금, 낚시 할 수 있어요?"
"할 수는 있는데 지금은 준비가 안 됐어요. 돌아보고 이따가 오세요."


 용 두 마리,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용 두 마리,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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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참 배달을 직접 한다.
 새참 배달을 직접 한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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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 안에는 여기저기 기웃거릴 것이 많았다. 볏단으로 만든 원형 극장에 앉아보고, 생각보다 어려운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나서는 전국 학생 사물놀이 대회를 구경했다. 한 자리에 앉아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온 우리들은 그럴 처지가 못 됐다. 아이들은 본성대로 움직이고 뛰어다녔다. 바람을 따라서, 아이들을 따라서, 연날리기 하는 곳으로 갔다.

연은 2000원. 대나무로 살을 만든, 우리가 어릴 적 갖고 놀던 가오리연이었다. 축제마다 연날리기는 있다. 작년에 어떤 축제에서는 후진 연을 5000원에 샀지만 날릴 만한 곳이 없어서 그 다음 '액션'을 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든 연을 사면 그랬다. 결국 연은 차에 모셔두어야 한다. 집으로 가져와도 눈에 띄지 않는 아이 방 창고에 처박혀서 잊혀진 연이 서너 개쯤은 된다.

저수지 언덕에 서서 연을 날렸다. 아이들은 처음에 바람을 타고 연을 날릴 줄 몰라서 무조건 연을 들고 달렸다. 그래서 땅에 질질 끌려 다니는 연들은 자존심이 상해서인지 금방 하늘로 떠올라줬다. 어떤 연은 들판 저 멀리, 하늘 높이 떠올라서 우리는 고개를 젖히고 입을 벌린 채 감탄했다.

길림이의 작은 아들 준섭이는 줄을 끊은 연처럼, 우리가 연날리기에 정신을 판 사이에 풀밭을 실컷 굴러다녔다. 오랜 시간 연을 날린 아이들 얼굴은 달아올라 있었다. 

 터도 넓고, 바람도 적당해서 연 날리기에 좋았다.
 터도 넓고, 바람도 적당해서 연 날리기에 좋았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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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탔다. 얼음물을 파는 노점상들은 없었다. 대신 군데군데 물을 마실 수 있게 냉온수기가 있었다. 난장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에도 '축제 특별요금'이 붙지는 않았다.

밥도 그랬다. 밥 종류는 4000원, 도토리묵무침이나 해물파전은 3000원이었다. 축제를 주관한 김제시에서 가격을 정해주었다. 난장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도 '크게 한 몫 벌어보자'는 목적을 가진 이들이 아니었다. 김제시의 각 면 사람들이 직접 지은 농산물로 먹을거리들을 만들어서 팔았다. 우리는 길림이네 친정 동네가 있는, 김제시 진봉면 난장에서 먹었다.

사람들은 어떤 정자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 쉬고 있었다. 길림과 나는 아이들에게 정자 마루에서만 놀라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해 두었다.

우리는 돌아다니며 인삼을 갈아섞은 우유도 마시고, 가래떡도 받았다. 김제에서 재배하는 유기농 농산물들을 둘러보면서 배즙과 사과즙을 샀다. 젊은 농부들이 모여서 친환경으로 재배하는 먹을거리들을  파는 곳에서 꽤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만 두었던 정자에 잰 걸음으로 와 봤더니 보이지 않았다.

 예절을 아는 학동들이 된 아이들
 예절을 아는 학동들이 된 아이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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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식은땀이 나고 멍했다. 정자 마루에 앉아서 쉬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 버리고, 거기에는 옛날 서당처럼 훈장님이 계시고 학동들이 있었다.

나는 숱한 사람들 속에서 아이들을 못 찾을까봐 겁이 났다. 다행히도 길림이 아이들을 알아봤다. 맨 앞자리에 점잖게 앉아있는 학동들이 우리 아이들이었다. 전통적인 인사법을 배우는 아이들이 낯설고 대견스러우면서도 재밌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학동 옷을 벗자마자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펄펄 뛰며 메뚜기를 잡으러 갔다.

아이들은 메뚜기 채와 함을 들고 폼을 잡으며 논으로 들어갔다. 벼 이삭에 앉은 메뚜기는 맨손으로 잡는 게 더 낫다는 걸 알아챘다. 그러나 숨소리를 죽이고, 메뚜기가 벼 이삭에 앉는 순간까지 진득하게 기다리지는 못했다. 논바닥을 훑으면서 옮겨 다닐 뿐이었다. 소리가 우렁차고 팔짝팔짝 튀는 아이들은 메뚜기 떼 같았다.

소가 끄는 달구지도 탔다. 소가 힘든 게 보였다. 어릴 때 학교 끝나면 소에게 풀 뜯기러 다닌 적이 있는 나는 소만 보면 뭔가 해주고 싶다. 길림은 김제는 오직 너른 들판뿐이어서 소를 밖에 매어 두지는 않는다고 했다. 언덕이 있는 산골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나는 소달구지에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소한테 옛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막걸리라도 사먹이고 싶었다. 오래 전 내 꿈 중에 하나는 소를 갖는 것이었나 생각해 보기도 했다.

 벼 베고 훑고 탈곡한다.
 벼 베고 훑고 탈곡한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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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밥 먹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벌써 오후였다. 맨 손으로 매기를 잡는 데도 있었고, 도자기를 만드는 곳도 있었다. 돌아보면 놀다 갈 곳이 수두룩했지만 우리는 벼를 베서 홀 테에 훑고, 탈곡기에 넣고, 나락을 절구질해서 빻고, 떡을 만드는 곳에 갔다.

어릴 때는 사는 일이 그 모든 과정에 속해 있었다. 이제 그런 일들은 먼먼 옛날의 일처럼, 이런 곳에서만 볼 수 있게 됐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아이들이 지나간 삶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우리 아이들이 연 날리기 다음으로 좋아한 것은 새총이었다. 엄청나게 큰 새총은 어른용이었다. 중년의 아저씨들과 70대의 할아버지들이 서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들었다.

100개의 연을 한꺼번에 날리는 '천재소년'도 만났다. 경남 사천에서 부모님과 연을 날리러 온 중학생이었다. 한 자리에 서서 연을 날리는 소년이 예뻐 보이기만 했다. 축제가 열리는 닷새 동안 그 아이가 총 40시간 이상 바라볼 들판과 하늘을, 나는 다시 한 번 봤다.

 새총으로 날아가는 독수리도 잡겠다는 아이들.
 새총으로 날아가는 독수리도 잡겠다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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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 큰 새총, 새총 알은 볏짚을 둥글게 말아놓았다.
 엄청 큰 새총, 새총 알은 볏짚을 둥글게 말아놓았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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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주차장으로 오면서 낚시터를 지나쳤다. 아침에 못한 낚시를 할 수 있을까 다시 물었다. 정말로 30㎝ 향어는 낚싯대를 잡고 있는 어린이를 물속으로 끌고 가 버린 적이 있는지, 어린이는 위험해서 안 된다고 했다. 서운하지 않았다. 길림이 김제 쌀로 만든 도넛과 김제 땅에서 자란 군고구마를 사러 간 사이에도 아이들은 먼지가 펄펄 이는 주차장에서 여전히 팔팔했다.

오후 5시, 벽골제에서 김제 시내까지 빠져나오는 길은 느렸다. 코스모스 길 사이로 차를 포기하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3년 연속 대한민국 최우수 문화관광 축제, 김제 지평선 축제는 괜한 너스레가 아니었다. 지난 옛 시절, 우리 부모님들의 일이 있었고, 우리들의 놀이가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농사가 생명이던 시절을 기억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대도 괜찮다. 길림과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내년에 또 오자고 약속했다.

 경남 사천에서 부모님과 함께 연을 날리러 온 중학생, 그는 축제 기간 내내 연을 날릴 거라고 했다.
 경남 사천에서 부모님과 함께 연을 날리러 온 중학생, 그는 축제 기간 내내 연을 날릴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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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동네서점>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내 꿈은 조퇴> <소년의 레시피> <우리, 독립청춘>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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