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일 평양시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처음으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일 평양시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처음으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추석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이번 편지에서 미국의 대중매체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그 주제는 다음번으로 미루고 대신 오늘 시작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미국의 미디어는 어떻게 보도했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가 이 기사를 쓰기 시작한 시간은 미국 현지 시각 10월 1일 밤 9시경, 한국시간 2일 오전 10시경이었습니다.

조금 전에 저는 <오마이TV>로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께서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가는 감동적인 장면을 지켜보았습니다. 한복을 입은 북한 여성들이 환영 꽃다발을 드리며 맞았고 대통령 일행은 곧 차를 타고 평양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마이뉴스> 덕분에 저는 이 역사적인 장면을 실시간 잠시 후에 재방송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정상회담 기사에 '김정일 위원장 사진 태우는 한국인'

<오마이뉴스> 덕분이라고 한 이유는 제가 오늘(현지 시각, 1일) 아침부터 종일 유심히 살펴본 미국의 신문과 방송 중에서 이 사건을 다룬 매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에야 CNN 웹사이트에 이 뉴스가 "한국 대통령이 역사적인 발걸음을 떼다"라는 제목으로 떴지만 "어린이 강간범 여자친구의 증언" 등 미국의 몇몇 국내뉴스의 한참 아래에 실렸습니다.

CNN에 이 기사가 뜨기 전에 나온 것으로는, 포털 페이지인 야후에서 AP통신에서 나온 기사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기사를 링크한 것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서 대문에 실은 기사를 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기사는 하필이면 한 손에 든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는 한국인 아저씨의 사진을 크게 실었습니다. (한국은 의료 체제가 잘 되어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 아저씨는 당장에라도 팔에 화상을 입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기사는 이 사건을 보는 시각에 (대체 누구의 시각을 말하는 건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회의와 낙관"이 섞여있다고 했지만, 기사의 기본 논조는 사진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냉소적이고 부정적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다음이 기사의 주요 포인트였습니다.

▲ 노무현과 김정일은 "판돈을 크게 거는 투기꾼들(high stakes gamblers)"이다.
▲ 이번이 김정일로서는 "대규모 경제 원조를 얻어낼 마지막 기회"이다. (올해 말에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서 반북적인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을 거라는 뜻인가 봅니다.)
▲ 북한은 점점 더 중국의 경제적인 통제 아래 놓이고 있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경제적인 통제와 압력을 받는다는 사실은 물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 노무현은 정치적인 "업적을 남기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상 대부분 미국인들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을 찾아 읽기는커녕, 이 매체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이 뉴스를 접하는 포털 사이트들을 검색해보고 텔레비전 뉴스 채널들을 둘러보았습니다.

평양에서 만나서 실패라고? 미국 우익 엘리트의 뒤틀린 시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대문에 실린 남북정상회담 기사.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대문에 실린 남북정상회담 기사.
ⓒ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관련사진보기



CNN 홈페이지에 실린 기사에서는 보수 계열인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거가 쓴 '서울의 성급한 정상회담 결정'이라는 요지의 논설을 인용했는데, 이 논설은 정상회담을 개성에서 열도록 압력을 가하지 않고 평양에서 만나기로 합의한 것은 노무현의 "실패"라는 교만하기 짝이 없는 궤변을 내세웠습니다.

(북한과 협조하는 것은 뭐든 잘못하는 것이라는 것이 이른바 '싱크탱크'라는, 정부 고위관리들과 근친상간적으로 유착된 영리집단이 내놓는 분석의 수준입니다. 클링거 같은 사람은 미국 우익 엘리트 집단의 이익에 부합하는 글을 쓰는 것이 존재 기반이자 출세 수단인지라, 남북한 화해처럼 미 제국주의의 이익에 반하는 사건은 이들에게는 악몽인 셈입니다.)

또한 같은 기사는 미국 보수계의 평소 견해를 재차 강조하려는 듯 한국에도 반북한 여론이 있음을 굳이 지적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을 폄훼하고 북한을 심하게 적대시하는 언어로 지면을 채웠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 "은둔자 같은 북한 지도자", "수수께끼 같은 독재자 김정일"
 이는 김정일 위원장을 무조건 위험인물로만 몰아가려는 수식이지요.
▲ "방탄처리가 되어있는 검은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 

 세계 어느 나라 국가원수든지, 심지어는 교황님도 이런 승용차를 타는 것은 다 마찬가지인데도 마치 이것이 특별한 일인 듯이 조롱조로 썼습니다.
▲ "중무장이 된 비무장지대" 

 모순된 표현이지만 북한을 위험하게 묘사하려는 의도에서 쓴 듯합니다. 미국이 한반도의 비무장 지대 등을 염두에 두고 국제적인 지뢰 사용 금지 움직임에 집요하게 반대해온 사실은 물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 "북한의 핵실험이 동북아의 안전을 위협" 

 미국이 북한을 보는 유일한 시각은 "위험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북한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위험하다고 합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수십 차례의 핵공격 협박이나 수천기의 핵무기는 전혀 동북아 안보에 대한 위협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 "스캔들에 시달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다음번 대선에서 여당에 힘을 실어주려는 정치적인 계산" 

 미국 정부와 보수집단은 처음부터 미국을 등에 업은 후보가 아니었던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서는 "우방국"에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괴뢰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훨씬 편하니까요. "스캔들"이라는 것도 부시 정권의 끊임없는 스캔들과 광범한 부패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만큼 미약한 것 아닙니까?

내일이나 모레의 논조? 전 기대하지 않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보도한 <CNN> 기사.
 남북정상회담을 보도한 <CNN> 기사.
ⓒ CNN

관련사진보기


텔레비전 뉴스는 어떤가하고 CNN과 그 자매 채널인 <헤드라인 뉴스(Headline News)>, CNBC·MSMBC 등의 뉴스 채널을 번갈아가며 저녁 8시 30분부터 한 시간 가량 주시하였으나, 남북한 정상회담 뉴스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채널의 뉴스가 팝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양육권을 박탈당한 이야기와 세 살짜리 어린이 강간 사건으로 도배되고 있었고, CNBC는 맥도날드의 주방 시설과 음식 메뉴가 많이 개선되었다는 장편 특집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미국의 텔레비전 뉴스가 파렴치하게 편파적이고 선정적인 것은 물론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이에 비하면 AP통신의 기사는 상대적으로 균형이 잡혀있었고 논평보다 사실 보도에 치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기사들은 싣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많이 넣은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오늘 미국의 대중매체들은 남북정상회담 관련 보도를 전혀 하지 않거나 아주 작게 다루었으며, 다룬 경우에는 그 보도를 접한 소수의 시민들이 미국인들이 경사스럽게 받아들일 일이 결코 아니란 점을 확실하게 알도록 노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일이나 모레는 관련 기사가 좀 더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저는 논조와 시각이 오늘과 크게 다른 기사나 해설이 나오기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노 대통령의 방북 첫 걸음은 어쨌든 미국 미디어에서는 찬밥 대접을 받은 셈입니다.

다음번 편지에서는 지난번에 약속한 대로 좀 더 심도 있게 대중매체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야후에 실린 <AP통신> 기사.
 야후에 실린 <AP통신> 기사.
ⓒ 야후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현지 시각 10월 1일 저녁 인터넷 <뉴욕타임스>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나 <워싱턴포스트>에는 하단에 남북정상회담 기사가 하나 링크되어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웹사이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http://iht.com/articles/2007/10/01/news/korea.php
http://www.cnn.com/2007/WORLD/asiapcf/10/01/koreas.summit/index.html
http://news.yahoo.com/s/ap/20071001/ap_on_re_as/koreas_summit



태그:#남북정상회담, #미국 미디어,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CNN, #브루스 클링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